[디지털인문학] 속성의 공학서 숙성의 미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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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11-0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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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그는 언제부터인가 디지털 문화의 창조주로 우상화되었다. 그런 그가 인문학에게도 구세주가 되었다. 돈벌이가 안되는 학문으로 천대받으며 사회의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인문학.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런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돈벌이가 잘되는 첨단 기업들로부터 확산되고 있다. 대략 3년 전부터 이 기이한 현상이 시작되었다. 그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선언했다.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한다고. 그 후 애플의 혁신과 성장세는 거침이 없었고, 많은 사람들은 혁신과 성장의 비밀이 인문학에 있다는 의혹(?)을 품어왔다. 이제 인문학을 제품화하는 기업은 애플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대가 부풀며, 그러나 이상한 기류가 감돈다. 인문학자와 기술자가 만나 융합을 하면 금방이라도 애플을 능가하는 혁신제품이 나올 듯, 그래서 곳곳에서 융합을 숨 가쁜 속도로 서두르며, 사방에서 융합관련 이벤트가 열린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인문학은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 인문학은 사물의 내재적 본질을 성찰하며 그 내재적 가치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역사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학문이라는 것. 사실 인문학은 속성의 공학이 아니라 숙성의 미학이다.

그런데 속성의 공학과 숙성의 미학은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는 와인을 예로 들면 밝혀진다. 화공학을 동원하면 속성으로 와인 빛을 내며 알코올 성분을 함유한 물질을 제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와인은 그런 화학주가 아니다. 와인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 땅에 스며들어 그 땅에서 포도가 영글고 또 그 포도가 발효의 시간을 누려야 탄생한다. 와인은 하늘과 땅 그리고 포도의 가치가 기다림을 통해 무르익는 숙성의 미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인문학은 이렇게 사물이 그것으로 가치를 발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미학적 진리를 사색을 통해 성찰한다. 만일 이제 첨단기업들이 인문학과 함께 무엇인가를 창조해나가려면, 숙성의 미학에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 지혜는 사물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탐구를 통해 무르익는 것이다.

사실 애플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거친 지혜의 숙성 역사가 있었다. 애플은 1990년대 제록스 파크 연구소에서 마크 와이저 이끌던 연구팀이 상당 기간을 거쳐 이루어낸 성과를 충실히 계승한 기업이다. 그런데 와이저는 특히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 전문용어로 HCI라는 분야에 있어서 철학, 특히 현상학적 지혜를 잘 적용시킨 기술자이다. 그는 이미 대학에서 철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HCI분야가 전문가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철학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그도 또 그에게 철학의 지혜를 전수한 선배가 있다. 그는 70년대 MIT 미디어 랩에서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책으로 파란을 일으킨 허버트 드레이퓨스라는 철학자이다. 당시 모두가 컴퓨터에 열광하고 있을 때, 그래서 인간의 인지능력마저 컴퓨터와 똑 같은 것으로 보려하는 인지과학이 대세가 되어갈 무렵, 대세를 거스르는 저서를 출간한 것이다. 그리고 드레이퓨스 역시 20세기 초반 철학사에 격변을 일으킨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철학을 오랜 세월 연구하며 지혜를 얻었다. 이렇게 보면 애플의 혁신은 적어도 20세기 초엽 시작된 인문학적 성찰의 역사가 거의 100년의 시간을 거쳐 여러 매개 과정을 거쳐 숙성된 결과이다.

우리는 그간 속성의 공학으로 산업화와 정보화를 이루어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산업화와 정보화를 이룬 기업들이 진정 인문학과 융합하려 한다면, 숙성의 미학에 숨겨진 창조의 지혜를 체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화학적 융합(convergence)이 아니라 미학적 융화(harmonizing)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이제 이 새로운 융화의 역사가 진지하게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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