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디지털 산책] 그리스 경제위기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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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배추가 풍년이면 값이 폭락하여 농부들의 시름이 깊어진다. 비료값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 년 내내 들인 노동의 가치가 온데간데 없다.농부가 밭에서 열심히 땀을 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팔아 제값을 받는 행위는 참으로 신성한 행위다.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대가이다. 하지만 얄궂게도 항상 그렇게 작동되지 않는 것이 현실의 시장경제다. 풍년이면 값이 폭락하고 흉년이면 값이 비정상적으로 오른다. 소위 수요와 공급 원리가 작동한다. 때로는 투기수요와 복잡한 유통구조가 결부되어 정상적인 시장 기능을 교란시키기까지 한다. 농산물을 산출하기까지의 과정이 의미 없게 되는 순간이다.

시장경제가 진화할수록 땀의 가치보다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 나아가 자본의 원리가 점점 득세해간다. 그러나 묘하게도 세상은 그런 상황이 마냥 지속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한 번씩 제동을 건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최근의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의 경제위기 등과 같이 충격을 주어 기본이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최근 막대한 재정적자로 인한 그리스의 경제위기 현상은 기본적으로 생산보다는 소비에 치중된 국가 경제구조에 기인한다. 재화의 생산을 증대시키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행위보다는 국민들의 사회보장에 지출을 과도하게 한 나머지 경제파탄을 불러 온 것이다. 투자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향유하고 나누는데 치중함으로써 경제행위의 기본에서 벗어나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경제위기도 기본에서 끝없이 멀어져간 금융질서에서 비롯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제조업은 인간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고, 금융은 재화나 서비스의 거래에 수반되는 거래수단에 기본적으로 관계된다. 즉 태생적으로 제조업과 금융은 주(主)와 보(補)의 관계이다. 그러나 경제행위가 점점 복잡하게 되면서 보가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보는 어디까지나 주와 더불어 의미를 지니는데, 주로부터 너무 멀리 진화함으로써 주와 보간 기본적인 관계에 조그만 문제가 생길 경우 보는 걷잡을 수 없이 환란에 휩싸이게 된다.

시장경제는 이 두 세계가 서로 수수, 반복하면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진화하면 할수록 두 세계가 단절되어 고착화되어 간다. 인간이 힘들게 노력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그 과정과 노력의 진실성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가진 힘에 의해 작동되어가고, 급기야 그 세계가 더 지배적으로 작동될 때 세상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점점 불안정해져 간다. 노동의 가치는 주어진 세계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세계에 있으며, 향유와 모방이 아닌 혁신의 근본이 된다. 정직한 노동의 가치가 근간이 되지 못하고 노동의 결과에 안주하고 그것이 가치의 중심이 되는 것은 경계되어야 마땅하다.

정보화는 편리하고 온갖 비효율성을 제거해주나 시간의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정직한 내력적 가치보다는 찰나적, 관계적 가치에 편승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디지털화는 자본주의의 비정직성과 몰인정한 속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쪽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다. 또 수확체감원리보다는 수확체증원리를 강하게 만들어 한편으로 불안정성과 불균등성을 심화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주의 깊은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본에 더 충실함으로써 정보가 거침없이 소통되는 어지러운 디지털 사회가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모할 의무를 지닌다. 아무리 융합시대라 하지만 융합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기본 요소에 충실하지 않으면 융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 애플의 아이폰은 기존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땀의 신성한 가치가 기본이 됨을 일깨워준다. 시간이 끝내 이를 증명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좀처럼 눈치 채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