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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프로파간다

 

이지성 기자 ezscape@dt.co.kr | 입력: 2009-07-16 21:02
[2009년 07월 17일자 16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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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공존 펴냄/275쪽/1만5000원

우리는 물건을 사거나 영화를 볼 때 혹은 대통령을 뽑을 때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기존에 유포된 정보를 바탕으로 무의식적으로 대중심리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광고와 홍보물을 보고 요리조리 의심을 하면서도 속아넘어가는 것이다.

선전(propaganda)이란 원래 `잘 설명해서 널리 알린다'란 의미의 중립적인 단어였다.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저자는 자신을 PR전문가보다는 `선전가'로 불리길 원했다. 그는 선전을 통해 일반 대중이 선량한 엘리트 집단의 안내를 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선전의 의미는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의 역사에서 선전은 피바람을 부르기 위한 일종의 물밑 작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나치정권과 그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였다. 괴벨스의 선동을 발판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고 잇단 전쟁을 치른 독일은 혈육과 이웃사촌을 잃은 뒤로는 더 이상 선전을 신뢰하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전 세계인들 역시 이 부분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버네이스의 이상은 현실 세계와 달라도 한참이 달랐던 셈이다.

이런 인식이 발달하면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쉽게 정권의 선전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 예로 195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각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정권 홍보물인 `대한뉴스'를 틀었다. 독재 정권의 서슬 퍼런 통제 아래 사람들은 얌전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영화가 끝나면 술자리 안줏감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소극적인 저항이었지만 어두운 시대에 대중이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행동이었다. 민주화를 거친 오늘날의 사람들은 정권의 홍보를 꼼꼼히 분석하는 것에서 나아가 비판에 있어서도 훨씬 적극적이다.

그렇다면 선전은 현대사회에서 더는 유효하지 않는 걸까. 이에 대해 버네이스는 선전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확언한다. 아무리 까다롭고 냉소적으로 일관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반응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특히 선전의 일부인 기업 광고가 넘치는 세상에서 선전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더욱 교묘하고 절대적이다. 음식을 필요로 하고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지도자를 따르려는 인간의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선전의 효과는 유효하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에 대해 `권력이 자행하는 여론 조작에 대해 긍정적 변론을 하고 있다'며 일침을 놓았다. 선전의 현실을 무시한 채 선전이 지도자의 선한 지배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생각을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선전의 메커니즘과 역사의 사례 등을 통해 독자가 판단할 몫은 책에 충분히 남아 있다. 조종하려는 자와 조종당하지 않으려는 자 모두에게 유용한 책이다.

이지성기자 ez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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