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응열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
1913년 6월4일 런던교외, 영국 왕실이 주최하는 경마대회 엡섬더비(Epsom Derby)가 열리고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여권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은 왕실 소유의 명마 앤머가 막판 스퍼트를 내며 자신이 서있는 앞쪽의 레인으로 달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앤머가 자신의 앞을 지날 즈음 에밀리는 그 앞으로 몸을 날린다. 순간 놀란 앤머의 상체는 위로 솟구치듯 튀어 오르고, 결국 에밀리는 말발굽에 치어 나뒹군다.
에밀리가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하는 말 앞으로 뛰어든 것은 여성 참정권의 정당함을 알리기 위한 데몬스트레이션이었다. 그의 살신성인으로 영국은 여성의 참정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고, 엡섬더비 사건 15년 뒤인 1928년 드디어 영국의 성인은 남녀불문하고 모두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얻게 된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의 행사에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정 나이에 이른 모든 국민의 한 표 행사가 당연시된 것은 불과 100년도 안 된다.
여성보다 앞서 참정권을 얻었던 남성 시민, 노동자, 농민의 참정권 획득 역시 기나긴 투쟁의 산물이었다. 18세기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유럽은 강력한 중상주의 정책으로 이른바 `부르조아'로 불리는 유산 시민계급들을 배출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커진 힘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했다. 바로 이들 시민계급과 절대왕정간의 정치적 주도권 다툼을 놓고 벌인 시민혁명이 근대 민주주의의 길을 연 초석이었다.
하지만 시민혁명이후에도 여전히 농민, 노동자, 여성 등 소외 계층의 정치 참여는 배제됐다. 이들 소외 계층들이 참정권을 얻기까지는 살벌한 투쟁과 탄압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서구 민주주의와는 달리 노동자와 농민 등 무산계급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정치체계도 만들어 졌다. 1913년 6월4일 있었던 에밀리의 살신성인은 지구상 마지막 정치적 소외집단이었던 여성들의 참정권을 현실화시킨 단초였던 것이다.
한국의 참정권 역사도 서구와는 그 궤적이 다르지만 드라마틱하긴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이 형식적으로 참정권을 갖게 된 때는 1948년 해방이후 근대적 보통선거제 도입을 통해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면서부터다. 이후 우리는 4.19혁명, 5.16쿠데타, 유신투쟁, 군사독재저항, 5.18항쟁, 6월항쟁 등을 거치면서 내용면에서도 참정권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주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다시 뽑게 된 것은 불과 20여년전 6월항쟁의 목소리가 전국을 뒤덮고 나서부터다. 한국이든 서구든 참정권의 획득과 확대는 목숨을 건 도전의 역사였다.
지난 9일 끝난 제18대 총선의 투표율이 46%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명 연예인들까지 동원하면서 투표를 호소했지만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외면했다. 이유야 어떻든 투표율 46%로 `민심'(民心)을 논하기는 어딘가 어색하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잊혀진다고 했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참정권은 결코 쉽게 얻어진 권리가 아니다.
에밀리 데이비슨의 묘비에 새겨져있다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Deeds, not words)이란 말이 머리를 스친다.
김응열기자 uykim@
1913년 6월4일 런던교외, 영국 왕실이 주최하는 경마대회 엡섬더비(Epsom Derby)가 열리고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여권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은 왕실 소유의 명마 앤머가 막판 스퍼트를 내며 자신이 서있는 앞쪽의 레인으로 달려오기만을 기다렸다. 앤머가 자신의 앞을 지날 즈음 에밀리는 그 앞으로 몸을 날린다. 순간 놀란 앤머의 상체는 위로 솟구치듯 튀어 오르고, 결국 에밀리는 말발굽에 치어 나뒹군다.
에밀리가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하는 말 앞으로 뛰어든 것은 여성 참정권의 정당함을 알리기 위한 데몬스트레이션이었다. 그의 살신성인으로 영국은 여성의 참정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고, 엡섬더비 사건 15년 뒤인 1928년 드디어 영국의 성인은 남녀불문하고 모두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얻게 된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의 행사에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정 나이에 이른 모든 국민의 한 표 행사가 당연시된 것은 불과 100년도 안 된다.
여성보다 앞서 참정권을 얻었던 남성 시민, 노동자, 농민의 참정권 획득 역시 기나긴 투쟁의 산물이었다. 18세기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유럽은 강력한 중상주의 정책으로 이른바 `부르조아'로 불리는 유산 시민계급들을 배출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커진 힘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했다. 바로 이들 시민계급과 절대왕정간의 정치적 주도권 다툼을 놓고 벌인 시민혁명이 근대 민주주의의 길을 연 초석이었다.
하지만 시민혁명이후에도 여전히 농민, 노동자, 여성 등 소외 계층의 정치 참여는 배제됐다. 이들 소외 계층들이 참정권을 얻기까지는 살벌한 투쟁과 탄압이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서구 민주주의와는 달리 노동자와 농민 등 무산계급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정치체계도 만들어 졌다. 1913년 6월4일 있었던 에밀리의 살신성인은 지구상 마지막 정치적 소외집단이었던 여성들의 참정권을 현실화시킨 단초였던 것이다.
한국의 참정권 역사도 서구와는 그 궤적이 다르지만 드라마틱하긴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이 형식적으로 참정권을 갖게 된 때는 1948년 해방이후 근대적 보통선거제 도입을 통해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면서부터다. 이후 우리는 4.19혁명, 5.16쿠데타, 유신투쟁, 군사독재저항, 5.18항쟁, 6월항쟁 등을 거치면서 내용면에서도 참정권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주를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지만,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다시 뽑게 된 것은 불과 20여년전 6월항쟁의 목소리가 전국을 뒤덮고 나서부터다. 한국이든 서구든 참정권의 획득과 확대는 목숨을 건 도전의 역사였다.
지난 9일 끝난 제18대 총선의 투표율이 46%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명 연예인들까지 동원하면서 투표를 호소했지만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외면했다. 이유야 어떻든 투표율 46%로 `민심'(民心)을 논하기는 어딘가 어색하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잊혀진다고 했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참정권은 결코 쉽게 얻어진 권리가 아니다.
에밀리 데이비슨의 묘비에 새겨져있다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Deeds, not words)이란 말이 머리를 스친다.
김응열기자 uyki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