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에 애절함 더하면…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그 재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난관의 극복이 주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임이 이것에만 의존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극복해야 할 난관이 없어도, 때로는 그 난관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우리는 게임을 할 이유를 발견한다. 그리고 많은 명작 게임들이 실제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자리에 이른다. 소녀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소년의 두근거리는 마음에서 한 숨에 엔딩까지 가야했던 `이코'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제 플레이스테이션2로 발매된 `완다와 거상' 그리고 `범피 트롯' 역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려 한다.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게이머를 매료시키려는 걸까.
아련한 그리움의 액션, `완다와 거상'
`완다와 거상'은 `이코' 팀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의 구조는 요즘 게임답지 않게 단순하다. 거상이라는 미지의 존재와 싸워 물리치는 스테이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퍼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헤어져서는 안 되는 소녀가 나사처럼 얽혀 있던 `이코'의 짜임새를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너무 무미건조할 정도의 구조다. 오히려 게임은 거상 하나 하나와의 싸움에 더 많은 비중이 놓이게 된다. 물리치기 위한 전략 자체가 다양하다는 사실은 게임의 지속성을 보장하지만 게임은 거기에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완다와 거상'이 제작팀 원래의 스타일을 모두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게이머도 거상과의 대결이 주는 재미만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이머가 거상에게 달려가는 건 눈앞에 영혼을 잃어버린 소녀가 놓여 있고 그 소녀를 살려내기 위해선 거상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스타일이 `이코'처럼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전작에서도 소년이 소녀를 구해야 할 당위성은 설명되지 않는다. 새장에 갇힌 소녀를 구해야 한다는 건 그 체가 당위고, 그 소녀에 대한 사랑은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손을 놓아야 하고 손을 놓으면 괴물이 달려오는 이 시스템적 제약의 산물이다.
그러나 `완다와 거상'에서 영혼을 잃어버린 소녀에 대한 완다의 감정을 게이머가 경험할 시스템적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소녀에게로 돌아가는 완다지만 거기서 완다가 계속 싸움을 해나가야 할 감정적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결말이 예측되는 연출이 반복되면서도 그 위험을 왜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절박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전작부터 이어져 내려온 몽환적 배경과 아련한 분위기만이 이런 절박함을 대신한다. 그러나 이 절박함은 뒷받침이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표면적일 뿐이다. 비록 엔딩이 이런 절박함과 애절함을 극대화시키더라도 이것은 그런 의미에서 공허함일 뿐이다.
`완다와 거상'은 액션을 아련한 애절함에 푹 적셔서 게이머에게 주려던 게임이다. 그러나 액션과 애절함 사이에는 안타깝게도 기름막이 쳐져있어 게이머에게 남는 건 각기 따로 도는 두 가지의 감정일 뿐이다.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범피 트롯'
롤 플레잉 게임에서 게이머는 다양한 곳으로부터 감동을 얻어낸다. 게임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아무 힘도 없던 주인공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적을 물리친다는 과정 자체가 커다란 장애물 넘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하나의 난관을 해결하겠다는 일념으로 몇 십 시간씩 게이머를 붙잡아 두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채워주는 건 수많은 사건들과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피 트롯'의 경우 그것을 메워주는 건 게이머가 움직이는 캐릭터가 살아가야 하는 세계 그 자체다.
게임은 꽤나 낡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과 우연히 그와 만난 어떤 숨겨진 기억을 가지고 있는 소녀. 그리고 활기차지만 심부름거리로 가득한 마을까지. 너무 오래된 스타일이라서, 그다지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3D 그래픽과 함께 게임에 대한 첫인상이 좋기는 어렵다. 그래도 게임을 붙잡게 되는 건 처음부터 시작되는 운송용 로봇 `트롯 비클'의 커스터마이즈.
정비소에서 다양한 장비를 붙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플레이트를 만들 수도 있고, 도색을 바꿀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게임 세계의 탐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 집을 사고, 꾸미고, 악단과 함께 공연을 하고, 악기를 연습하고. 이 모든 일들을 수행하면서, 시간에 지나면 배가 고파지고, 저녁이 오고 또 아침이 오는 과정을 게임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이제 오래되고 낡은 시스템은 게임이 제공하는 풍부한 세계의 모습에 묻혀버리게 된다.
게이머가 이 게임에서 누릴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유 그 자체다. 다양한 일이 주어지고, 다양한 삶이 펼쳐진다. 여기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지만, 이 과제 풀기는 이 세계에서 펼쳐진 복잡다난한 일 중에 하나인 셈이다. 빨리 감동적 이야기 한 편을 읽고 싶은 사람, 어려운 난관을 풀며 성취를 이루고 싶은 사람한테야 이런 느긋한 자유가 지겨울 수 있지만, 이것은 사실 너무나 큰 매력이다.
장르들이 안정화되면서 게임의 재미라는 것도 정형화된다. 특히 영화와의 경쟁 속에서 게임은 쉽게 영화의 무언가를 따라 하고자 한다. `범피 트롯'의 매력은,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을 위해서 좋은 일은 오래된, 그래서 잊혀져 가는 게임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되살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게임평론가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그 재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난관의 극복이 주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임이 이것에만 의존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극복해야 할 난관이 없어도, 때로는 그 난관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우리는 게임을 할 이유를 발견한다. 그리고 많은 명작 게임들이 실제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자리에 이른다. 소녀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소년의 두근거리는 마음에서 한 숨에 엔딩까지 가야했던 `이코'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제 플레이스테이션2로 발매된 `완다와 거상' 그리고 `범피 트롯' 역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려 한다.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게이머를 매료시키려는 걸까.
아련한 그리움의 액션, `완다와 거상'
`완다와 거상'은 `이코' 팀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의 구조는 요즘 게임답지 않게 단순하다. 거상이라는 미지의 존재와 싸워 물리치는 스테이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퍼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헤어져서는 안 되는 소녀가 나사처럼 얽혀 있던 `이코'의 짜임새를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너무 무미건조할 정도의 구조다. 오히려 게임은 거상 하나 하나와의 싸움에 더 많은 비중이 놓이게 된다. 물리치기 위한 전략 자체가 다양하다는 사실은 게임의 지속성을 보장하지만 게임은 거기에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완다와 거상'이 제작팀 원래의 스타일을 모두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게이머도 거상과의 대결이 주는 재미만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이머가 거상에게 달려가는 건 눈앞에 영혼을 잃어버린 소녀가 놓여 있고 그 소녀를 살려내기 위해선 거상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스타일이 `이코'처럼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전작에서도 소년이 소녀를 구해야 할 당위성은 설명되지 않는다. 새장에 갇힌 소녀를 구해야 한다는 건 그 체가 당위고, 그 소녀에 대한 사랑은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손을 놓아야 하고 손을 놓으면 괴물이 달려오는 이 시스템적 제약의 산물이다.
그러나 `완다와 거상'에서 영혼을 잃어버린 소녀에 대한 완다의 감정을 게이머가 경험할 시스템적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소녀에게로 돌아가는 완다지만 거기서 완다가 계속 싸움을 해나가야 할 감정적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결말이 예측되는 연출이 반복되면서도 그 위험을 왜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절박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전작부터 이어져 내려온 몽환적 배경과 아련한 분위기만이 이런 절박함을 대신한다. 그러나 이 절박함은 뒷받침이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표면적일 뿐이다. 비록 엔딩이 이런 절박함과 애절함을 극대화시키더라도 이것은 그런 의미에서 공허함일 뿐이다.
`완다와 거상'은 액션을 아련한 애절함에 푹 적셔서 게이머에게 주려던 게임이다. 그러나 액션과 애절함 사이에는 안타깝게도 기름막이 쳐져있어 게이머에게 남는 건 각기 따로 도는 두 가지의 감정일 뿐이다.
넓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범피 트롯'
롤 플레잉 게임에서 게이머는 다양한 곳으로부터 감동을 얻어낸다. 게임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아무 힘도 없던 주인공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적을 물리친다는 과정 자체가 커다란 장애물 넘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하나의 난관을 해결하겠다는 일념으로 몇 십 시간씩 게이머를 붙잡아 두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채워주는 건 수많은 사건들과 이야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피 트롯'의 경우 그것을 메워주는 건 게이머가 움직이는 캐릭터가 살아가야 하는 세계 그 자체다.
게임은 꽤나 낡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과 우연히 그와 만난 어떤 숨겨진 기억을 가지고 있는 소녀. 그리고 활기차지만 심부름거리로 가득한 마을까지. 너무 오래된 스타일이라서, 그다지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3D 그래픽과 함께 게임에 대한 첫인상이 좋기는 어렵다. 그래도 게임을 붙잡게 되는 건 처음부터 시작되는 운송용 로봇 `트롯 비클'의 커스터마이즈.
정비소에서 다양한 장비를 붙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플레이트를 만들 수도 있고, 도색을 바꿀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게임 세계의 탐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 집을 사고, 꾸미고, 악단과 함께 공연을 하고, 악기를 연습하고. 이 모든 일들을 수행하면서, 시간에 지나면 배가 고파지고, 저녁이 오고 또 아침이 오는 과정을 게임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이제 오래되고 낡은 시스템은 게임이 제공하는 풍부한 세계의 모습에 묻혀버리게 된다.
게이머가 이 게임에서 누릴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유 그 자체다. 다양한 일이 주어지고, 다양한 삶이 펼쳐진다. 여기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지만, 이 과제 풀기는 이 세계에서 펼쳐진 복잡다난한 일 중에 하나인 셈이다. 빨리 감동적 이야기 한 편을 읽고 싶은 사람, 어려운 난관을 풀며 성취를 이루고 싶은 사람한테야 이런 느긋한 자유가 지겨울 수 있지만, 이것은 사실 너무나 큰 매력이다.
장르들이 안정화되면서 게임의 재미라는 것도 정형화된다. 특히 영화와의 경쟁 속에서 게임은 쉽게 영화의 무언가를 따라 하고자 한다. `범피 트롯'의 매력은, 그리고 무엇보다 게임을 위해서 좋은 일은 오래된, 그래서 잊혀져 가는 게임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되살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게임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