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비트 CPU `헥터의 승부'에 매료
임베디드 CPU사업 선봉
"우리 세대는 참으로 축복 받은 행운의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진공관으로 시작해 트랜지스터를 거쳐 IC(집적회로)에 이르는 엄청난 기술의 변화를 직접 보고, 느끼고, 즐겨오고 있으니까요."
최근 AMD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한 박용진(49) AMD코리아 사장은 고교시절부터 직접 납땜을 해가며 진공관 라디오 송수신기를 만들며 밤을 새우던 것을 비롯, 어떤 기계나 전자제품이든 직접 써보고 뜯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기술 마니아다. 대한민국 얼리어답터 1세대라 할 그에게, 64비트 컴퓨팅 선도업체 AMD의 국내법인 사령탑이라는 자리는 새삼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지금도 중학생 때 전자전람회에서 처음 본 외제 컬러TV와 복사기가 눈에 선하다는 박 사장은, 경복고등학교 재학시절 교내 물리반 아마추어무선클럽활동에 푹 빠져들었던 것이 이공계로 진로를 결정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물론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햄(HAM; 아마추어무선)을 통해 내 방 안에서 해외 수십 개국의 정보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지금의 인터넷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까요."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도 막을 수 없었던 단파라디오로 VOA(미국의 소리)ㆍBBCㆍNHK 영어방송 등을 통해 김대중 납치ㆍ판문점 도끼만행ㆍ박동선 코리아게이트 등 굵직한 뉴스들을 접하면서 세상 넓은 것을 배웠고, 덤으로 탄탄한 영어실력도 갖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박 사장은 한양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1982년 삼성전자에 입사, 본격적으로 IT산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삼성전자에서 그가 맡은 일은 해외본부에서 PCㆍ메인프레임 단말기를 수출하는 업무로, 이 때부터 박 사장은 PC산업과의 긴 인연을 맺게 된다.
1988년 레이켐코리아로 옮기면서 글로벌 다국적기업에 입문한 그는, 1996년 세계적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전문업체 퀀텀의 국내법인 퀀텀코리아의 지사장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내 PC산업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박 사장은 2002년에는 그래픽칩셋 전문업체 엔비디아코리아 지사장으로 부임, 엔씨소프트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리니지2'마케팅을 추진해 주력 `지포스 FX'그래픽칩셋으로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바탕을 마련하기도 했다.
박용진 사장과 AMD와의 인연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엔비디아에 있던 2002년, 라스베이거스 컴덱스를 관람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비즈니스위크지 커버스토리로 실린 `Hector's Bet'(헥터의 승부)이란 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당시 위기에 몰렸던 AMD의 헥터 루이즈 회장이 X86기반 64비트 CPU로 승부수를 던졌다는 내용이었죠." 상당히 비판적인 논조였음에도 불구하고, 박 사장은 이 기사에서 `이건 반드시 성공한다'는 강렬한 확신을 얻게 된다. "그럼 나도 `헥터의 승부'에 한 번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2003년 5월 AMD코리아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박 사장의 직관적인 통찰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AMD는 X86기반으로 32비트ㆍ64비트를 모두 지원하는 `AMD64' 아키텍처를 통해 서버용 `옵테론'ㆍPC용 `애슬론64' CPU를 차례로 출시,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AMD는 64비트 CPU제품군 출시를 계기로 완전히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2ㆍ4분기 AMD의 프로세서 사업은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제가 합류하던 때 5달러 선이던 주가도 이제는 21달러까지 올랐습니다." 매출ㆍ이익이 늘면서 생긴 여력을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추가로 매출을 늘려 가는 선순환 구조에 안착했다는 설명이다.
AMD코리아도 AMD의 이같은 성공에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교적 강세를 보여온 유통시장 점유율은 40%대로 올라섰고, 브랜드PC시장에서도 저가 노트북PC 열풍의 한 축을 담당함은 물론 최근에는 국내 최대 PC업체 삼성전자를 다시금 고객으로 끌어들여 TV홈쇼핑ㆍ양판점 등 신유통용 데스크톱PC 모델에 AMD CPU를 탑재시켰다. 서버 영역에서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용 서버 3500여대에 옵테론 CPU가 대거 채택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박 사장에게는 이 모든 성과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디지털 유목민, 유비쿼터스의 최신 트렌드에 있어 한국시장이 파워하우스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월 CES에서 한국업체들이 계속 약진함에 따라 일본에서 한국으로의 `디지털 파워시프트'가 진행중이라는 견해가 더욱 힘을 받고 있습니다." 지사장 부임 초기부터 한국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해 한국을 AMD의 세계 7개 지역(region) 중 하나로 격상시켰던 박 사장은, 이제 휴대폰ㆍ모바일기기의 테스트베드인 한국에서 AMD 임베디드 CPU사업의 선봉장을 자임하고 있다. "임베디드 CPU 사업을 위한 디자인센터 설립을 강력히 건의, 최근 헥터 회장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AMD 한국 디자인센터는 조만간 20여명 규모로 출범, 휴대폰ㆍ와이브로ㆍ휴대형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ㆍIP셋톱박스ㆍ디지털TV 등 다양한 디지털 휴대정보기기ㆍ정보가전기기 분야에서 국내업체들과 본격적인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 사장은 이를 통해 AMD코리아의 성장은 물론 국내업체들의 세계시장 경쟁력 강화에도 큰 몫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국내고객들의 가치를 위해, 한국 기업들의 국제무대 경쟁력을 위해 일한다는 확신과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박사장은 요즘의 취미를 묻는 질문에, "집에서 IP셋톱박스를 갖고 노는 데 빠져있으며, 가끔은 모형항공기를 날리기도 한다"고 답했다. 진공관 라디오가 IP셋톱박스로 바뀌기는 했지만 얼리어답터의 본성만은 여전한 모양이다. 그가 AMD코리아를 통해 다음 세대의 젊은 얼리어답터들에게 선물할 `장난감'들은 어떤 제품이 될까.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주범수기자@디지털타임스
임베디드 CPU사업 선봉
"우리 세대는 참으로 축복 받은 행운의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진공관으로 시작해 트랜지스터를 거쳐 IC(집적회로)에 이르는 엄청난 기술의 변화를 직접 보고, 느끼고, 즐겨오고 있으니까요."
최근 AMD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한 박용진(49) AMD코리아 사장은 고교시절부터 직접 납땜을 해가며 진공관 라디오 송수신기를 만들며 밤을 새우던 것을 비롯, 어떤 기계나 전자제품이든 직접 써보고 뜯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기술 마니아다. 대한민국 얼리어답터 1세대라 할 그에게, 64비트 컴퓨팅 선도업체 AMD의 국내법인 사령탑이라는 자리는 새삼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지금도 중학생 때 전자전람회에서 처음 본 외제 컬러TV와 복사기가 눈에 선하다는 박 사장은, 경복고등학교 재학시절 교내 물리반 아마추어무선클럽활동에 푹 빠져들었던 것이 이공계로 진로를 결정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물론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햄(HAM; 아마추어무선)을 통해 내 방 안에서 해외 수십 개국의 정보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지금의 인터넷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까요."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도 막을 수 없었던 단파라디오로 VOA(미국의 소리)ㆍBBCㆍNHK 영어방송 등을 통해 김대중 납치ㆍ판문점 도끼만행ㆍ박동선 코리아게이트 등 굵직한 뉴스들을 접하면서 세상 넓은 것을 배웠고, 덤으로 탄탄한 영어실력도 갖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박 사장은 한양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1982년 삼성전자에 입사, 본격적으로 IT산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삼성전자에서 그가 맡은 일은 해외본부에서 PCㆍ메인프레임 단말기를 수출하는 업무로, 이 때부터 박 사장은 PC산업과의 긴 인연을 맺게 된다.
1988년 레이켐코리아로 옮기면서 글로벌 다국적기업에 입문한 그는, 1996년 세계적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전문업체 퀀텀의 국내법인 퀀텀코리아의 지사장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내 PC산업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박 사장은 2002년에는 그래픽칩셋 전문업체 엔비디아코리아 지사장으로 부임, 엔씨소프트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리니지2'마케팅을 추진해 주력 `지포스 FX'그래픽칩셋으로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바탕을 마련하기도 했다.
박용진 사장과 AMD와의 인연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엔비디아에 있던 2002년, 라스베이거스 컴덱스를 관람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비즈니스위크지 커버스토리로 실린 `Hector's Bet'(헥터의 승부)이란 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당시 위기에 몰렸던 AMD의 헥터 루이즈 회장이 X86기반 64비트 CPU로 승부수를 던졌다는 내용이었죠." 상당히 비판적인 논조였음에도 불구하고, 박 사장은 이 기사에서 `이건 반드시 성공한다'는 강렬한 확신을 얻게 된다. "그럼 나도 `헥터의 승부'에 한 번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결국 2003년 5월 AMD코리아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박 사장의 직관적인 통찰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AMD는 X86기반으로 32비트ㆍ64비트를 모두 지원하는 `AMD64' 아키텍처를 통해 서버용 `옵테론'ㆍPC용 `애슬론64' CPU를 차례로 출시,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AMD는 64비트 CPU제품군 출시를 계기로 완전히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지난 2ㆍ4분기 AMD의 프로세서 사업은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제가 합류하던 때 5달러 선이던 주가도 이제는 21달러까지 올랐습니다." 매출ㆍ이익이 늘면서 생긴 여력을 연구개발과 마케팅에 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추가로 매출을 늘려 가는 선순환 구조에 안착했다는 설명이다.
AMD코리아도 AMD의 이같은 성공에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교적 강세를 보여온 유통시장 점유율은 40%대로 올라섰고, 브랜드PC시장에서도 저가 노트북PC 열풍의 한 축을 담당함은 물론 최근에는 국내 최대 PC업체 삼성전자를 다시금 고객으로 끌어들여 TV홈쇼핑ㆍ양판점 등 신유통용 데스크톱PC 모델에 AMD CPU를 탑재시켰다. 서버 영역에서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용 서버 3500여대에 옵테론 CPU가 대거 채택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박 사장에게는 이 모든 성과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디지털 유목민, 유비쿼터스의 최신 트렌드에 있어 한국시장이 파워하우스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월 CES에서 한국업체들이 계속 약진함에 따라 일본에서 한국으로의 `디지털 파워시프트'가 진행중이라는 견해가 더욱 힘을 받고 있습니다." 지사장 부임 초기부터 한국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해 한국을 AMD의 세계 7개 지역(region) 중 하나로 격상시켰던 박 사장은, 이제 휴대폰ㆍ모바일기기의 테스트베드인 한국에서 AMD 임베디드 CPU사업의 선봉장을 자임하고 있다. "임베디드 CPU 사업을 위한 디자인센터 설립을 강력히 건의, 최근 헥터 회장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AMD 한국 디자인센터는 조만간 20여명 규모로 출범, 휴대폰ㆍ와이브로ㆍ휴대형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ㆍIP셋톱박스ㆍ디지털TV 등 다양한 디지털 휴대정보기기ㆍ정보가전기기 분야에서 국내업체들과 본격적인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 사장은 이를 통해 AMD코리아의 성장은 물론 국내업체들의 세계시장 경쟁력 강화에도 큰 몫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국내고객들의 가치를 위해, 한국 기업들의 국제무대 경쟁력을 위해 일한다는 확신과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박사장은 요즘의 취미를 묻는 질문에, "집에서 IP셋톱박스를 갖고 노는 데 빠져있으며, 가끔은 모형항공기를 날리기도 한다"고 답했다. 진공관 라디오가 IP셋톱박스로 바뀌기는 했지만 얼리어답터의 본성만은 여전한 모양이다. 그가 AMD코리아를 통해 다음 세대의 젊은 얼리어답터들에게 선물할 `장난감'들은 어떤 제품이 될까.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주범수기자@디지털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