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망하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냥 앉아서 망하느냐, 모험하다가 망하느냐. 차이는 그것뿐이었죠."
지난달 25일 창립 70주년을 맞는 금호전기의 박명구 사장(51). 그는 지난 1998년 부도직전의 금호전기를 맡았을 때의 어려웠던 상황을 이같이 회고했다.
박 사장이 이 회사에 합류한 것은 7년 전. 이 회사의 70년 역사에 비하면 박 사장의 지난 7년은 그야말로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기간 벌어졌던 일들은 과거 60여 년의 그 어떤 시기보다도 피를 말리게 하는 험난한 도정이었다.
금호전기는 지난 1935년 청엽제작소로 출발해 1945년 대한금속계기로 사명을 바꾸고, 1963년 한국 최초로 백열전구의 KS(한국산업규격) 표시규격을 획득하면서 조명사업에 전념해온 회사다. 1967년에 사명을 마포산업으로, 1978년에는 현재의 금호전기로 바꾸며 IMF 이전까지는 일반조명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금호전기는 치열한 가격경쟁이 펼쳐지는 일반 조명시장의 상황에서 IMF 한파까지 겹쳐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고, 급기야 1998년에는 186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부도 일보직전까지 내몰렸다.
박 사장은 이 때부터 구원투수로 금호전기 부사장에 취임, `소방수' 역할을 수행했다. 박 사장이 했던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부 구조조정을 포함한 재무구조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신사업의 창출. 둘다 회사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했던 것들이다.
60년 이상의 기업역사를 가진 금호전기의 위기 국면에서 구원투수로 투입될 당시, 박 사장은 "선친이 창업한 회사 간판을 내 손으로 내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회생 방안을 찾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우선 문턱이 닳도록 은행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외국계 구조조정 펀드인 로스차일드가 1998년부터 시작한 금호전기의 냉음극형광램프(CCFL) 등의 신규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자금지원 의사를 내보이면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는 물꼬를 트게 되었다.
그는 "당초 로스차일드에 50억원 정도의 자금을 빌리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아 액수를 약간 높여 100억 정도를 지원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는 단기차입금의 상환 등만을 고려하더라도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며, 1999년에 499억원을 빌려줘 돈 걱정을 덜고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당시 로스차일드는 박 사장의 열정에 매료돼 썩 많지 않은 담보인 양도성 담보채권, 공장제품 재고와 금호전기의 트레이드 마크인 `번개표'에 대한 상표권을 담보로 잡았다. 그런데 로스차일드가 자금을 집행하기 전에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다. 박 사장이 금호전기의 등기 이사로 등재돼 있지 않아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 사장이 부사장직을 맡으면서도 등재 이사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이랬다. 박 사장은 금호전기에 합류하면서 "생산직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회사를 그만 두겠다. 회사를 제대로 살릴 때까지 나는 한푼의 월급도 가져가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으니 회사 명의의 소득세가 없는 임원이 되었고, 그 때문에 등기 임원 명단에서 빠진 것이었는데, 이것이 엉뚱하게도 자금조달의 걸림돌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는 어렵게 로스차일드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후 일반 조명이 아닌 IT 조명 등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판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한때 1000여명에 달했던 인력을 대폭 줄이는 한편 자산매각 등을 통해 몸집 줄이기에 나섰고, 첨단 IT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신규 사업으로 CCFL(냉음극 형광램프) 사업에 매진했다. 그 덕에 국내 최초로 CCFL을 국산화할 수 있었고, 이것이 국내 TFT LCD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금호전기의 회생에 밑거름이 됐다.
그 결과 1998년부터 4년 연속 적자에 허덕이던 금호전기는 2002년 흑자로 전환하며 안정적인 성장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고, 지난해는 1830억원 매출에 24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견실한 기업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사실 박 사장은 그 누구보다도 조명 분야의 해박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금호전기에 합류하기 전인 지난 1981년에 엘바산업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박 사장은 금호그룹 창업자인 고 박인천 명예회장의 조카이자, 금호전기 박동복 창업자의 5형제 중 막내로, 소위 말하는 `로열 패밀리'였지만 금호전기가 잘 나갈 때는 이 회사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엘바산업만 이끌어왔다.
엘바산업을 설립하기 전에는 1977년 `금파전자연구소'를 설립,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자식 택시요금미터기'를 국내 처음으로 개발했고, 1979년에는 `전자식 안정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박 사장이 개발한 `엘바 안정기'는 형광등을 켤 때 몇 번씩 깜박거리다 켜지는 것을 단번에 켜지도록 하는 전자부품으로, 일본과 미국 등 세계적인 조명업체들도 시제품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 발명품으로 박 사장은 이듬해인 198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9회 국제발명대회에서 대상과 금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높이 인정받았다. 그의 나이 26살 때 발명한 이 엘바안정기는 26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 세계 표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가 금호전기에 몸담은 직후 60년 이상 이끌어온 일반 조명 대신 차세대 조명사업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그의 이력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구조조정기금 499억원 중 약 200억원을 CCFL 제조기술 및 설비도입에 투자했고, 이를 발판으로 지금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안정을 되찾았다. IMF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조명산업의 역사를 이끌어온 금호전기와 박 사장이 창립 100주년 경에는 어떤 모습으로 거듭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지난달 25일 창립 70주년을 맞는 금호전기의 박명구 사장(51). 그는 지난 1998년 부도직전의 금호전기를 맡았을 때의 어려웠던 상황을 이같이 회고했다.
박 사장이 이 회사에 합류한 것은 7년 전. 이 회사의 70년 역사에 비하면 박 사장의 지난 7년은 그야말로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기간 벌어졌던 일들은 과거 60여 년의 그 어떤 시기보다도 피를 말리게 하는 험난한 도정이었다.
금호전기는 지난 1935년 청엽제작소로 출발해 1945년 대한금속계기로 사명을 바꾸고, 1963년 한국 최초로 백열전구의 KS(한국산업규격) 표시규격을 획득하면서 조명사업에 전념해온 회사다. 1967년에 사명을 마포산업으로, 1978년에는 현재의 금호전기로 바꾸며 IMF 이전까지는 일반조명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금호전기는 치열한 가격경쟁이 펼쳐지는 일반 조명시장의 상황에서 IMF 한파까지 겹쳐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고, 급기야 1998년에는 186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부도 일보직전까지 내몰렸다.
박 사장은 이 때부터 구원투수로 금호전기 부사장에 취임, `소방수' 역할을 수행했다. 박 사장이 했던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부 구조조정을 포함한 재무구조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신사업의 창출. 둘다 회사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했던 것들이다.
60년 이상의 기업역사를 가진 금호전기의 위기 국면에서 구원투수로 투입될 당시, 박 사장은 "선친이 창업한 회사 간판을 내 손으로 내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회생 방안을 찾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우선 문턱이 닳도록 은행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외국계 구조조정 펀드인 로스차일드가 1998년부터 시작한 금호전기의 냉음극형광램프(CCFL) 등의 신규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자금지원 의사를 내보이면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는 물꼬를 트게 되었다.
그는 "당초 로스차일드에 50억원 정도의 자금을 빌리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아 액수를 약간 높여 100억 정도를 지원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는 단기차입금의 상환 등만을 고려하더라도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며, 1999년에 499억원을 빌려줘 돈 걱정을 덜고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당시 로스차일드는 박 사장의 열정에 매료돼 썩 많지 않은 담보인 양도성 담보채권, 공장제품 재고와 금호전기의 트레이드 마크인 `번개표'에 대한 상표권을 담보로 잡았다. 그런데 로스차일드가 자금을 집행하기 전에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다. 박 사장이 금호전기의 등기 이사로 등재돼 있지 않아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 사장이 부사장직을 맡으면서도 등재 이사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이랬다. 박 사장은 금호전기에 합류하면서 "생산직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회사를 그만 두겠다. 회사를 제대로 살릴 때까지 나는 한푼의 월급도 가져가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으니 회사 명의의 소득세가 없는 임원이 되었고, 그 때문에 등기 임원 명단에서 빠진 것이었는데, 이것이 엉뚱하게도 자금조달의 걸림돌이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는 어렵게 로스차일드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후 일반 조명이 아닌 IT 조명 등에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판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한때 1000여명에 달했던 인력을 대폭 줄이는 한편 자산매각 등을 통해 몸집 줄이기에 나섰고, 첨단 IT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신규 사업으로 CCFL(냉음극 형광램프) 사업에 매진했다. 그 덕에 국내 최초로 CCFL을 국산화할 수 있었고, 이것이 국내 TFT LCD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금호전기의 회생에 밑거름이 됐다.
그 결과 1998년부터 4년 연속 적자에 허덕이던 금호전기는 2002년 흑자로 전환하며 안정적인 성장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었고, 지난해는 1830억원 매출에 24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견실한 기업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사실 박 사장은 그 누구보다도 조명 분야의 해박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금호전기에 합류하기 전인 지난 1981년에 엘바산업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박 사장은 금호그룹 창업자인 고 박인천 명예회장의 조카이자, 금호전기 박동복 창업자의 5형제 중 막내로, 소위 말하는 `로열 패밀리'였지만 금호전기가 잘 나갈 때는 이 회사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엘바산업만 이끌어왔다.
엘바산업을 설립하기 전에는 1977년 `금파전자연구소'를 설립,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자식 택시요금미터기'를 국내 처음으로 개발했고, 1979년에는 `전자식 안정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박 사장이 개발한 `엘바 안정기'는 형광등을 켤 때 몇 번씩 깜박거리다 켜지는 것을 단번에 켜지도록 하는 전자부품으로, 일본과 미국 등 세계적인 조명업체들도 시제품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이 발명품으로 박 사장은 이듬해인 198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9회 국제발명대회에서 대상과 금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높이 인정받았다. 그의 나이 26살 때 발명한 이 엘바안정기는 26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 세계 표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가 금호전기에 몸담은 직후 60년 이상 이끌어온 일반 조명 대신 차세대 조명사업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그의 이력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구조조정기금 499억원 중 약 200억원을 CCFL 제조기술 및 설비도입에 투자했고, 이를 발판으로 지금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안정을 되찾았다. IMF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조명산업의 역사를 이끌어온 금호전기와 박 사장이 창립 100주년 경에는 어떤 모습으로 거듭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