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IT 파이오니어 인물 탐구 85> 권오현 비트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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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제작사인 비트윈의 권오현 사장(41)은 DVD의 출현부터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권사장이 삼성전자 동경주재원으로 근무했던 93년 당시 일본 열도는 DVD 포맷의 세계 표준을 놓고 도시바와 소니의 열띤 경쟁으로 뜨거웠던 시기였다. 그곳에서 세계 기술 동향을 국내에 전하는 일을 하면서 DVD와의 길고 긴 인연이 시작됐다. 근 8년간의 인연때문일까. DVD에 대한 권사장의 애정은 다른 DVD 사업자보다 각별할 수밖에 없다.

국내 DVD 시장이 싹트기 시작한 99년. 그 해 2월에 권사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DVD 제작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회사를 차렸다. 많은 영상업체들이 눈치를 보며 선뜻 시장에 나서지 않았을 때 그는 척박한 땅에 고단한 물대기를 자청했다.

영화를 보는 안목보다는 기술적 안목이 더 깊었던 탓에 지금은 물을 대어 옥토를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후 ’DVD 원년’이라는 올해가 되어서야 그의 물대기에 대한 결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올해 전체 시장은 작년보다 3배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회사 매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25억원에 불과하던 회사 매출은 1·4분기에 이미 30억원을 넘어섰고, 연말까지 100억원 매출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체적인 국내 DVD 시장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하지만, 권사장과 직원들의 노력과 인내 없이는 불가능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국내 제작 기술의 한계에 부딪치기도 하고, 시장 성장의 더딤을 탓하기도 했지만, 직원들은 권사장의 장기적 안목을 믿고 따라 주었다. 특히 권사장을 비롯한 사내 창립멤버들이 다 같이 삼성영상사업단 출신이라는 것도 어려움속에서도 분열없이 회사를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권오현사장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삼성전자 신규사업부문 동경주재원으로 근무했다. 89년 당시 DVD 시장은 하드웨어는 일본 주도로, 소프트웨어는 미국 워너브라더스 주도로 형성되고 있었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특히 소니와 도시바가 핵심기술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삼성전자는 도시바와 협력관계를 맺으며 DVD 기술을 신규사업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DVD가 차세대 미디어가 될 것이라는 신념이 확고했습니다. 97년 초반부터 세계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IMF만 없었으면 국내 시장도 일본과 미국처럼 성숙했을 것입니다”

그는 97년 귀국해 삼성영상사업단의 전략기획팀에 배치될 때만해도 국내 시장이 이렇게 처질 줄 몰랐다. 삼성영상사업단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DVD 제작시스템을 도입하고, 한국영화 ’쉬리’를 DVD로 제작하는 등 소프트웨어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 한파는 450명으로 구성된 영상사업단을 해체시켰다. 일부는 삼성 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고, 일부는 다른 회사로 매각됐다. 스타맥스, 캐치원, Q채널 등이 그 때 생겨났다. 권오현사장과 신규사업팀의 일부는 영상사업단이 보유하던 제작시스템을 사들여 DVD 제작사로 분사해 나왔다.

“대안이 없었습니다. DVD 소프트웨어 분야는 삼성만이 연구하던 것이어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고, 그렇다고해서 다른 계열사로 들어가 DVD와 무관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권사장이 처음 비트윈을 설립했을 때 DVD를 아는 일반인은 거의 없었다. 삼성영상사업단이 보유한 영화 판권이 있었지만, 이제 시작단계인 국내 기술로 DVD를 만든다는 것은 요원했다. 기술을 보완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됐다. 직원들과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는 일도 허다했다. 미개척분야라서 투자 유치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단 한명의 일탈없이 인원을 보강해, ’쉬리’ ’간첩리철진’ ’여고괴담’ 등 국내 영화를 처음으로 DVD로 내놓았다. ’네고시에이터’ ’LA 컨피덴셜’ 등 외국영화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120편을 출시해 국내 업체로는 최대의 작품 라인업을 갖추었다.

지난해 12월에는 폭스 DVD를 독점 유통하면서 유통 전문사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기존 용산 중심의 단순유통을 깨고, 까르푸 등의 할인점과 음반유통 등 유통채널을 다변화해 전국 500여점의 직유통 체제를 구축했다.

또 ERP/ B2B와 연계한 전자유통 시스템도 구축했다. 어두운 분위기 일변도의 기존 비디오 방과는 다른 DVD방 프랜차이즈 ’마기클럽’도 구상해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개봉을 막 마친 좋은 영화들을 비디오로 출시 전 VOD 서비스하는 새로운 영화 배급 방식을 시도했다. 이것은 좋은 영화지만 개봉관에서 상영하지 않아 보지 못한 지방 영화애호가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미국 DTS사로부터 DTS(디지털극장사운드) 제작 시스템의 한국내 유통에 대한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 DTS 지원 타이틀을 제작하는 등 제작 사업도 소홀치 않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업 성과들에는 권오현 사장의 인간적인 면모와 가치관이 숨어있다. 권사장의 사업철칙은 “정직한 경영”이다. 시장 참여자가 이익을 동등하게 배분하고,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지 않고 원칙대로 사업하는 것. “지킬 것은 지킨다”는 상도덕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것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는 단호하다.

권사장은 ’충무로 사람들’처럼 부풀리지 않는다. 현 시장에 맞게 판매하고, 시장 가격에 맞게 판권을 구매한다. 국내 다른 회사와 경쟁하며 “제살 깍기”식의 판권 구매는 사양한다. 이런 현실적인 면 때문에 권사장은 “너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콘텐츠 사업은 기본적으로 리스크가 큽니다. 비싼 판권으로 인해 ’대박’ 아니면 ’쪽박’이 되기 쉽습니다. 비트윈은 콘텐츠보다는 유통에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볼때 유통을 체계화해야만 콘텐츠가 유통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유통이 되지 않으면 콘텐츠는 살 수 없습니다”

권사장의 승부처가 판가름 날 시기는 아직 멀었다. DVD 시장이 이제 막 봉우리를 틔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통시장에서 ’사업 잘한다’는 호평을 들으며 회사 이미지를 좋게 굳히고 있어 유통망을 넓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때가 되면 콘텐츠 업자가 영화를 강력한 유통망에 싣기 위해 비트윈을 먼저 찾아올 지도 모를 일이다.

<한지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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