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창조의 주요 수단으로 융합이 강조되고 있다. 융합이란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잘 합쳐서 발전시키면 새로운 획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최근 정보기술(IT)과 다른 과학기술분야의 결합에서 더 나아가 인문학, 예술분야까지 아우르는 폭 넓은 개념으로 확산됐다. 융합이 알려진 것을 잘 찾아서(발견, Discovery) 이들을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창조의 기본적 수단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의형 연구개발, 즉 발명(Invention)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수준은 이제 세계적이다. 국가연구개발예산 규모도 세계 최상위권이며, 연구자의 숫자도 그렇고, 논문과 특허 건수로만 따지면 남부러울 것 없다. 우리나라 주요대학 이공계 교수의 1인당 연구비는 세계 최고 수준 대학을 능가한다.그러나 창의적 연구결과의 지표인 영향력, 피인용도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왜 그럴까. 안전하게 매년 논문 몇 편을 발표하려는 연구개발에 대부분의 연구자가 시간과 노력을 쏟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창의적이고 탁월한 연구결과를 얻기 어렵다. 정량적 교수채용 및 승진 심사기준 , 박사학위수여에 필요한 논문 편수, 정량적 연구업적평가, 세밀한 연구비 감사 등 많은 이유가 있으리라.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매년 반복되다 보니 연구자들, 특히 신진연구자들은 창의형 연구개발을 하는 법을 서서히 잊어버리고 나아가 글로벌 수준에 못 미치며 논문만 생산하는 연구개발에 조급하게 매달리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연구 문화와 환경을 혁신할 것인가 ? 먼저 연구비를 제공하는 쪽에서 여유를 가지고 창의형 연구개발을 유도하여야 하겠다. 논문편수, 세계 랭킹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의연하게 꾸준히 창의성 높은 연구를 장려하여야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연구자 개개인의 자세가 달라질 때에 가장 큰 효과가 날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신진 연구자들은 어떻게 하면 창의형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가 묻는다.연구개발에 지름길은 없다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반드시 존재한다. 몇 대학에서 시도하여 좋은 성과를 얻고 있는 창의형 연구개발을 위한 4단계 전략을 소개한다.
창의형 연구개발은 훌륭한 연구주제의 선정에서 시작된다. 비슷한 관심을 가진 연구자 여러명이 자주 모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주제를 발굴하는 첫 번째 지름길이다. 좋은 사례로 국내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모여서 발표하고 토론하여 연구제안서를 작성해 보는 교수팀에 대하여 실비를 지원하고 있다. 집담회, 연구기획과제, 연구교류회 등의 교내연구비가 이에 속한다.
창의적 제안은 모험적 연구이기 쉽다. 제안자조차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파일럿 과제로 소규모로 성공가능성을 테스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 지름길인 실행가능성 검증은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일이년이 걸리곤 한다. 여기에 필요한 연구비가 국내에는 아주 부족하다. 교내연구비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므로 공공, 민간의 연구비 지원을 창의성 검증단계에 크게 배당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더구나 창의적 주제는 해결하려는 접근 방법이 여러 가지일 수 있으므로 검증은 경쟁적으로 여러 팀에서 수행하는 것이 권장된다고 하겠다.
창의형 연구개발 세 번째 단계는 글로벌 검증을 받는 것이다. 파일럿 과제에서 얻은 초기 결과를 글로벌 연구개발 커뮤니티에 제시하고 전문가의 지적, 조언과 비판을 받는 것으로 창의성의 확인과 개선에 필수적 단계이다. 더불어 글로벌 리더들과 네트워킹도 할 수 있어서 한국 연구자의 위상을 높일 수도 있겠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글로벌 연구 포럼을 개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본격개발에 돌입하는 것이다. 앞의 세 단계를 거치면서 연구자는 창의적 연구과제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자신감도 확보되었으므로 충분히 국가나 민간을 상대로 연구비를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연구수행 과정에서도 초심을 잃지 말고 주위의 연구자, 글로벌 전문가와 끊임없이 교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 연구비 관리기관은 연구의 성과를 논문, 특허, 표준 등 숫자로 세지 말고 연구가 성공하도록 어떻게 연구자를 지원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하겠다. 현장방문을 통한 애로 확인 및 해결, 전문가와의 교류 알선 등 방법은 많다.
위의 네 단계를 필자는 수년전에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과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시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으며 현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에 일부 적용하고 있다.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ㆍ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