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이 장악…토종업체 점유율 `미미`
시스코 등 글로벌 업체가 과점
핵심부품ㆍSW 역량 확보 과제
LTE 전국망이 구축되는 등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강국. 우리나라가 통신강국이 되기까지 이끈 주역을 꼽아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성전자, LG전자 등 단말기회사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연구기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 등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단말기 제조사가 휴대폰, 태블릿PC를 만들고, 이동통신사가 관련 통신요금제 등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이 통신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조사가 단말기를 만들고, 이통사가 유무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통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시설이 조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단말기와 서비스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통신강국의 주역, 네트워크 장비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네트워크 장비는 가입자 간의 디바이스와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통신기기를 말합니다. 유선 네트워크는 가정 또는 사무실에서 전화국까지를 연결하는 가입자 장비, 전화국에 위치한 교환장비, 그리고 전화국을 연결하는 전송장비로 구성됩니다. 무선 네트워크에서는 가입자 장비가 무선 기지국으로 대체되고 교환기에 일부 기능이 추가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선네트워크 장비와 같은 구조로 구성됩니다.
네트워크 장비시장은 수 년째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무선 시장은 2G에서 3G, 4G로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고, 유선 시장은 전화망에서 인터넷망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경쟁상황에서 네트워크 제조업체는 지난 몇 년간 노텔, 지멘스, 루슨트 등 쟁쟁한 기업들이 인수ㆍ합병되면서 시스코, 화웨이 등 몇몇 글로벌 장비업체들을 중심으로 과점화된 시장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네트워크 업체들의 승패는 얼마나 통신 환경의 변화에 잘 준비가 됐느냐에 따라 엇갈리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국내 네트워크 장비 업체는 일부 무선 장비, 가입자망 장비, 중계기 등을 제외하고는 시스코, 에릭슨 등 해외 글로벌 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이 미미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정보통신의 진흥에 관한 연차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 기업들의 네트워크 장비 생산액은 3조5000억원 수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의 3%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실시한 장비업체, 통신사업자, 유선방송사업자 등 54사의 `2008∼2012년 네트워크 장비 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국내 네트워크 장비 업체의 판매금액은 2008년 7806억원에서 2012년 7264억원으로 연평균 1.8% 감소했습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송 장비 판매금액은 2010년까지 연평균 25.1% 감소하다 2011년부터 연평균 18.4% 증가했습니다. 전송장비는 수요처가 대부분 통신사업자로 제한되어 있어 수출비중은 평균 10.4%로 미미한 상황입니다.
교환장비 시장은 성숙시장으로 2009년 이후 판매금액이 감소하다 2012년에 1326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라우터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은 취약한 형국입니다.
가입자망 장비도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010년 2044억원을 기록한 가입자망 장비는 수년간 판매가 감소돼 2012년 980억원의 장비가 판매됐습니다. 이동통신 장비 판매금액은 격년을 주기로 증가와 감소를 반복해, 2011년 2594억, 2012년에는 3539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국내 네트워크 산업이 침체된 이유 중의 하나는 네트워크 장비 구매자들의 의사 결정이 보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네트워크 장비 구매는 한 번에 적어도 수백 억, 많게는 수천억 원의 의사결정이 필요하고, 한번 구입하면 3∼5년간 사용됩니다. 대부분의 장비 구매자들은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장비를 썼다가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기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기존에 거래하던 외산 네트워크 장비업체의 제품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내 네트워크 장비 기술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기존 관행에 얽매여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화웨이, ZTE 등 중국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은 기술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비용 효율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로 평가돼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은 기술력이 떨어지는 데도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해 이제는 더 이상 저가 장비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부가가치 높은 프리미엄 장비시장에 진출해 성공적인 기업으로 부상했습니다.
국내 장비 업체들도 중국 장비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내수를 기반으로 한 성장과 국내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선순환을 이뤄야 합니다. 특히 자금난 때문에 막대한 투자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개발도상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 벤더 파이낸싱 등의 지원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국내 장비 업체들이 개발도상국에 좋은 조건으로 할부 금융을 제공함으로써 마케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신 전 SK브로드밴드 사장은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과 무선 네트워크서비스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기에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장비라면 외국에서도 팔수 있다"며 "국내 장비시장 규모는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정도는 되기 때문에 조그마한 장비부터 집중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차근차근 국산화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특히 국내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은 완성품 자체를 만드는데 급급하지 말고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역량을 확보해 잘 짜여진 장비 포트폴리오를 갖춘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김나리기자 narinal@
참고자료 = 대한민국 IT인사이트(중앙Book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