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흔적 분석 범인색출… 통신기록 등도 주요 단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찾아내 엄중한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민주 경찰의 가장 막중한 책임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다그칠 수는 없다. 국민의 인권을 지켜주는 것도 경찰의 중요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결국 범인이 현장에 남겨놓은 흔적을 모두 찾아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목적에 필요한 것이 바로 현대 과학과 기술을 총동원한 `과학수사'다.
과학수사는 범행 현장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없는 경우에 힘을 발휘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의 모든 행위가 현장에 흔적을 남긴다는 에드몽 로카르드의 `교환법칙'이 과학수사의 출발점이다. 범인의 손가락이 닿으면 지문(指紋)이 남고, 손바닥이 닿으면 장문(掌紋)이 남는다. 입술이 닿으면 입술흔적(脣紋)이 남고, 신발이나 타이어 흔적도 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범인이 흘린 희미한 핏자국이나 옷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섬유 조각까지도 유용하다.
범인이 남기는 흔적이 언제나 뚜렷한 것은 아니다. 맨눈으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현대 과학적 기술이다. 화학적 기술이 가장 유용하게 활용된다. 아이오다인(요오드), 난하이드린, 질산은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지문을 찾아내고, 루미놀을 이용해서 희미한 사람의 핏자국을 찾아낸다.
현장에서 찾아낸 흔적을 분석하는 일이 더 어렵다. 흔히 `유전자 감식'으로 알려진 현대 생명과학적 기술이 유용하다. 혈액, 침, 정액, 머리카락 등에 들어있는 DNA를 이용한다. 범인의 DNA의 수를 엄청난 수준으로 증폭시켜주는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술과 긴 DNA 사슬을 일정한 방법으로 절단해주는 `제한효소'를 이용하는 생명공학적 기술이 동원된다.
인체에 대한 생리학적 지식도 과학수사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피해자의 몸에 남아있는 상처나 시신의 부검을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다. 정확한 범행 시각과 사인(死因)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법의학과 법곤충학을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다.
영상 자료를 이용한 수사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상충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수사에서 폐쇄회로 카메라(CCTV)의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해상도가 낮은 영상에서 범인의 고유한 특징을 찾아내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사이버 세상에 남겨진 흔적을 찾아내는 일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사이버 세상의 익명성과 광역성이 범죄 수사를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통신기록이나 컴퓨터의 로그 파일로부터 실제 세상에서 일어난 범죄의 해결에 필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역할은 이밖에도 많다. 범죄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로부터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잠재적 범죄자에 대한 지문, 혈액형, DNA 등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데이터베이스(DB)가 필요하다. DB의 제작과 운영에는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그런 자료가 유출되거나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일도 쉽지 않다.
과학수사를 위해서는 값비싼 장비도 갖춰야 하고, 그런 장비를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필요하다. 과학수사의 결과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법 제도도 정비를 해야 한다. 과학수사의 전문성과 함께 공정성과 독립성도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수사가 범죄 현장에서의 초동 수사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한다고 해서 과학수사가 만능일 수는 없다. 특히 오류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 있더라도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실수는 절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과학수사에도 적용된다.
이덕환(서강대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