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행장 사퇴압박에 임기보장 맞서
금감원 제재 내용 공개에 김승유 전 회장 강한 반발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거취를 놓고 금융감독원과 하나금융지주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김 행장에 중징계를 내리며 사실상 사퇴를 압박했다. 하지만 하나금융은 김 행장의 내년 3월까지 임기를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금감원은 징계 내용을 공개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양측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22일 오후 4시 금융감독원은 전격적으로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 결정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특정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제재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금감원은 김종준 행장이 손실초래, 부실심사는 물론 이사회 의결절차 불이행, 서류 조작 등 자세한 징계 사유를 밝혔다. 김승유 전 회장도 자회사 경영에 대해 부적절하게 관여했다며 관련 내용을 상세히 공개했다. 금융권은 금감원이 김 행장이 퇴진을 다시 한번 압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서 지난 17일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김 행장에게 `문책경고(상당)`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주의적 경고(상당)'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김 행장은 하나캐피탈 사장 시절 김승유 당시 하나금융 회장의 지시를 받고 옛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했다가 손실을 낸 사건으로 중징계를 받았다. 하나캐피탈은 2011년 저축은행 구조조정 당시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을 투자했으나 약 60억원의 피해를 봤다. 금감원은 하나캐피탈이 투자 과정에서 가치평가 서류를 조작하고 이사회를 개최하지도 않은 채 사후 서면결의로 대신했다는 점을 문제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연임에 성공한 김 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하지만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은행 임원은 향후 3∼5년 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돼 김 행장이 사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20일 김종준 행장이 오는 3월 임기 만료 시까지 은행장 직무를 수행한다며 사퇴설을 부인했다. 다시 금감원은 22일 오전 결정 내용 조기 게재할 수도 있다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금감원의 이같은 압박에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김 전 회장은 이날 모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징계는 어차피 처음부터 (금감원)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놔뒀다"면서 "그러나 행장까지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금감원이 한 건을 갖고 세 차례나 검사한 적이 있었나"라고 반발했다. 또 "금감원이 그렇게 한가한 조직인가. 지금껏 이런 예를 본 적이 없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김종준 행장은 김승유 전 회장이 측근으로 알려져 왔으며 임기 완주 결정에는 김 전 회장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의 발언이 알려진 후 금감원은 전격적으로 징계 내용을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힘 겨루기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금융권은 금감원의 압박 수위가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KT ENS 협력업체 부당대출과 관련해 하나은행에 대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외환카드 분할과 하나SK카드와의 통합에 대한 심의도 앞두고 있다. 금융당국이 또 다른 압박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하나금융 내부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금융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당국의 관치금융이 아니냐는 주장과, 징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는 주장 등이 난무하고 있다.
강진규기자 kjk@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