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탁의 탁견
  • [이우탁의 탁견] 북핵 30년, 어제와 오늘

    북핵 30년, 어제와 오늘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1980년대 후반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북한의 안보 지형은 급격히 위축돼갔습니다. 게다가 1992년 중국마저 남한과 수교하자 북한은 전략적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사회주의권이라는 시장을 잃은 북한의 경제도 극도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처럼 국제정치와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되거나 체제 전환을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했습니다. 또 중국처럼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것도 검토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바로 사회주의 체제를 더욱더 공고히 하면서 핵 개발에 매진한 겁니다.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이 한국전쟁 때부터 핵무기를 염원했다는 연구도 있지만, 실질적인 핵 개발은 이때부터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세계 최강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으려고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북한은 이제 사실상 핵보유국의 능력을 갖췄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한번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북한은 정녕 핵무기를 가질 수 있

  • [이우탁의 탁견] 北, 美 대중견제 카드 될 수 있다

    北, 美 대중견제 카드 될 수 있다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1980년대 후반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자 북한의 안보 지형은 급격히 위축돼갔습니다. 게다가 1992년 중국마저 남한과 수교하자 북한은 전략적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사회주의권이라는 시장을 잃은 북한의 경제도 극도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어떻게 했을까요.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처럼 국제정치와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되거나 체제 전환을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했습니다. 또 중국처럼 1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것도 검토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바로 사회주의 체제를 더욱더 공고히 하면서 핵 개발에 매진한 겁니다.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이 한국전쟁 때부터 핵무기를 염원했다는 연구도 있지만, 실질적인 핵 개발은 이때부터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세계 최강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으려고 압박과 협상을 병행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북한은 이제 사실상 핵보유국의 능력을 갖췄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한번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북한은 정녕 핵무기를 가질 수 있

  • [이우탁의 탁견] `바이든 플랜` 잘 작동할까

    `바이든 플랜` 잘 작동할까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미국 대선 직전 고위 당국자와 만나 누가 승리할 것이냐, 정부는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트럼프 재선이든, 바이든 승리든 대응책이 충분하게 마련돼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대선은 바이든 승리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큰 외교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박지원 국정원장의 방일이고, 또 하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방미입니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갑자기 일본을 방문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박 원장의 방일 행보가 언론에 노출된 걸 보고 아주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 면담하고 난 뒤인 10일 오후 언론 앞에 선 박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간곡한 안부와 한일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서 "우리측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박 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립니다. 그래서인지 2000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연상케 하는 `문재인-스가 선언`을 제안했다는 얘기도 외교가에 나돕니다.강경화 장관도 워싱턴을 찾았습니다. 9일(현지

  • [이우탁의 탁견] 상하이 최초 `일본군위안소`

    상하이 최초 `일본군위안소`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해마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상하이(上海)의 일본군 위안소가 생각납니다. 2005년 여름이었습니다. 하루는 상하이사범대학 역사학과 쑤즈량(蘇智良) 교수 쪽에서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 취재를 해보겠느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상하이 특파원으로 오기 전 외교부 담당 기자를 할 때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천착해왔지만 `최초의 위안소`가 중국 상하이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궁금했습니다. 즉각 쑤 교수팀과 `현장 탐방`에 나섰습니다.저희 일행이 처음 도착한 곳은 상하이시 훙커우(虹口)구 둥바오싱(東寶興)로 125 롱(弄)에 있는 2층짜리 서양식 건물이었습니다. 왠지 낯설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의거`가 일어난 루쉰(魯迅)공원에서 아주 가까운 마을입니다. 윤 의사 의거 당시 이 지역은 일본 조계지에 속했습니다. 쑤 교수는 2층 건물을 지칭하며 `따이살롱(大一沙龍. Daiich Saloon)이 있던 곳이라 했습니다. 그때도 상하이시 재개발 바람이 거셌는데 다행히 건물 기본구조는 거의 원형대로 보존돼 있었습니다.일본군 고급 장교들을 위한 위안소답게 작은 일본식 정원까지 갖추고 있었고, 집안

  • [이우탁의 탁견] 地大物博의 나라, 미국과 중국

    地大物博의 나라, 미국과 중국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대학 1학년 동양사학입문을 배울 때 얘기입니다. 민두기(1932~2000) 선생께서 칠판에 커다랗게 이 네글자를 쓰시고는 앞으로 중국을 공부하면서 항시 머릿속에 떠올려보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땅 넓고 산물이 많다`는 뜻입니다. 넓디넓은 땅에서 온갖 것들이 다 생산되고, 사람도 많습니다. 오죽했으면 1793년 영국 조지 3세의 사절단으로 중국을 찾은 조지 매카트니 경이 청(靑)의 건륭 황제에게 조지 3세의 친서와 함께 교역을 요구하자 건륭 황제의 답은 `응유진유(應有盡有:필요한 것은 모두 갖고 있다)`였겠습니까. 다른 나라(오랑캐)와 하는 무역이라고 하면 오로지 중국이 은혜를 베푸는 조공무역 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살짝 비틀어 보면 외부와 교류를 하지 않더라도 상당 기간 자립할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자원의 힘을 가진 나라가 바로 중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나라, 정말 무서운 얘기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세상의 중심이 바로 자기들이라는 세계관, 즉 중화사상, 천하(天下) 개념이 생긴 겁니다. 조공과 책봉 체제가 중국과 그 밖의 다른 나라를 연결했습니다.

  • [이우탁의 탁견] 미·중 패권경쟁과 `핵 가진 북한`

    미·중 패권경쟁과 `핵 가진 북한`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지난 30년간 북핵 문제는 위기→협상→잠정적 비핵화 및 상응하는 대북 지원→파국과 새로운 위기를 거듭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30년의 세월이 묘하게도 신흥 강대국 중국이 부상하는 시기와도 맞물립니다. 북핵 문제는 미·중 관계의 흐름에 따라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구조가 형성됐음을 의미합니다. 미국과 중국은 북핵 문제를 다룸에 있어 자국의 세계전략,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전략적 관점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의 시간을 보냈습니다.두 강대국 사이에서 북한도 전략적인 행보를 했습니다. 미·중 관계의 틈새를 잘 파고들어 끝내 핵보유국의 지위까지 오른 북한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핵 문제는 앞으로 어찌 될까요. 흔히 북핵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1990년의 북핵 상황을 1차 핵 위기, 그리고 2003년 이후의 상황을 2차 핵 위기, 또 김정은 정권 이후 또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의 시기(통칭 3차 위기)를 말합니다. 미·중 관계의 틀 속에서 바라볼 때 이 세 시기는 각각의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은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 몰락 속에서 핵을 통한 안전보장을 추구했습

  • [이우탁의 탁견] 2002년 여름, 볼턴은 왜 서울에 왔을까

    2002년 여름, 볼턴은 왜 서울에 왔을까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책 `그 일이 일어난 방:백악관 회고록`을 둘러싼 많은 얘기가 오가면서 잊히지 않는 과거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북핵 취재 노트인 졸저 `오바마와 김정일의 생존게임`(2009, 창해)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2002년 봄부터 한반도 정세는 매우 분주했습니다. 그해 4월 한국의 임동원 대통령 특사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납니다. 잠시 냉각기를 가졌던 남북 관계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습니다. 임동원은 회고록 `피스메이커`(2008년, 창비)에서 그때 김정일이 서울 답방 대신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입장을 밝혔고, 남측은 대안으로 판문점 회담을 제시했다고 밝힙니다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북이 합의(실제 방북은 그해 9월 성사)되는 등 북일 관계도 변곡점을 맞던 때입니다. 1994년 북한과 미국이 서명한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매년 북한에 중유가 제공됐고, 북한 땅 신포에 경수로 2기 건설이 활발하게 추진됐습니다.그러던 8월의 어느 날,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이었던 볼턴이 서울에 들어옵니다. 조지 W

  • [이우탁의 탁견] 리비아 모델과 카다피, 그리고 김정은

    리비아 모델과 카다피, 그리고 김정은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2003년 10월의 어느 날, 컨테이너들을 실은 화물선이 말래카 해협을 통과해 수에즈 운하로 들어섭니다. 갑자기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특수부대가 나타나더니 화물선을 세우고 수색에 들어갑니다. 그러곤 컨테이너에 실린 화물들을 압수했습니다. 농축 우라늄 제조용 원심분리기 부품들이었습니다. 미국의 첩보위성은 이 화물선의 움직임을 24시간 감시했습니다. 핵 비밀 거래를 해온 국제조직에 침투한 위장 요원으로부터 화물의 내용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받은 CIA는 두바이 항에서 독일 국적의 화물선 `BBC China` 호에 컨테이너가 옮겨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화물선은 수에즈 운하를 거쳐 리비아로 갈 예정이었죠. 무하마르 카다피가 집권하고 있는 리비아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2004년 2월 13일 자에 첩보영화 같은 스토리를 자세하게 전합니다. 최종 목적지가 리비아라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리비아의 철권통치자 카다피 얘기를 해야 합니다. 1969년 9월 27일 27세에 카다피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쿠데타에 성공합니다. 왕정을 무너뜨린 그는 반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창하며 아랍 단일국가 건설을 국가

  • [이우탁의 탁견] 항미원조 보가위국

    항미원조 보가위국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중국 상하이 특파원으로 일하던 2004년 8월,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을 찾아 당서기인 리위안차오(李源潮)를 인터뷰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그가 건넨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뭔가 느낌이 왔습니다. `원조(源潮)` 1950년 11월 태생인 리 서기의 부모는 그해 6월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조선을 돕는다`는 `援朝`와 발음이 같은 `원조(源潮)`로 이름을 지었다고 현지 관계자가 귀띔합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중국인들에게 조선(북한)이란 이런 존재였구나."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와 가정과 나라를 지킨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궁지에 몰린 김일성은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중국군의 파병을 간청합니다. 박헌영도 직접 베이징을 방문해 파병 요청을 합니다. 마오쩌둥은 공산당 정치국 회의를 엽니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물론이고 지금의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도 참석합니다. 강대국 미국이 이끄는 유엔군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만큼 중공 지도부 상당수가 한국전 참전에 반대합니다. 당시 마오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

  • [이우탁의 탁견] `인디언헤드 작전`과 6·25 전쟁

    `인디언헤드 작전`과 6·25 전쟁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펼쳐진 인천상륙작전의 대성공으로 단번에 한반도의 허리 부분을 장악한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북진합니다. 한 달 뒤인 10월15일부터 20일에 걸쳐 `평양탈환작전`이 전개됩니다. 누가 먼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심장, 평양에 깃발을 꽂을 것인가. 숨 가쁜 전투의 연속입니다.한국군 제1사단과 미국 제7기병사단이 북한군 17사단과 32사단 잔류병과 접전을 벌입니다. 미 7기병사단 5기병연대 소속 F중대가 10월 18일 11시를 즈음해 동평양에 최초 입성합니다. 한국군 1사단은 10월 19일 새벽 1사단의 주공 12연대가 최초로 동평양에 입성한 데 이어 15연대가 평양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평양 입성` 순서를 놓고 여러 얘기가 있지만, 전쟁사는 최초의 `평양 입성부대`를 한국 1사단으로 기록합니다.평양탈환작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10월 20일 평양에 `인디언 헤드` 마크를 부착한 미군들이 들어옵니다. 평양 시가지를 선점한 1사단장 백선엽의 증언입니다. "20일 아침, 미2사단 `인디언 헤드` 마크를 부착한 한 미군 중령이 약 100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나를 찾아

  • [이우탁의 탁견] 다시 들여다본 10년 전 `해커 방북보고서`

    다시 들여다본 10년 전 `해커 방북보고서`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20여년간 천착해온 북한핵 문제가 중대 갈림길에 설 때마다 꼭 살펴보는 미국쪽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그프리드 해커와 존 볼턴입니다. 볼턴이야 얼마 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사람으로 유명하죠,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미국 보수세력의 북핵 인식을 알아볼 때 꼭 점검해야 하는 그런 인사입니다. 반면 북한을 이해하는 미국 내 동향을 짚어볼 때는 해커 박사의 말과 글을 잘 살펴야 합니다. 북한의 대서방 핵 연결고리라고나 할까요. 1943년생인 해커 박사는 제너럴모터스 연구소 금속공학연구원을 지내다 `인류 최초의 핵 개발 프로젝트`(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을 1986년부터 97년까지 지낸 분입니다. 스탠퍼드대 금속공학과 교수로 핵무기 전문가로 유명합니다.북한은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해커 박사를 평양으로 불러 민감한 내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북한 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각되던 때인 2004년 1월 북한은 해커 박사 일행을 영변핵시설로 초청했습니다. 그곳에서 북한 당국

  • [이우탁의 탁견] 김정은 `컴백장소` 인비료공장과 우라늄

    김정은 `컴백장소` 인비료공장과 우라늄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북한 땅은 참 묘합니다. 한반도 남쪽과 달리 `지하자원의 보물고`(조선신보 보도)라고 불립니다. 북한은 광물자원 매장량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어 정확한 자료는 얻기 힘들지만 대략 전 국토의 80%에 광물자원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봅니다. 한국광물자원공사가 2016년 추정한 자료를 보면 금 2000t(세계 6위), 마그네사이트 60억t(세계 3위)이 매장돼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골간 물질인 희토류가 골고루 있다고 하고, 질 좋은 철을 노천에서 캐는 광산도 있습니다. 2016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북한 지하자원의 경제가치를 10조달러로 남한 지하자원의 20배에 달한다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특히 관심이 가는 광물이 우라늄입니다. 오래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북한 발표(1980.6)에 따르면 북한 우라늄 매장량은 2600만t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경제성 있는 우라늄 채굴 가능량은 400만t으로 평가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전 세계 우라늄 매장량은 764만t입니다. 세계 1위인 호주가 170만t입니다. 북한의 매장량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게다가 북한의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