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195개 협약 당사국 대표들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를 넘지 않도록 하고, 더 나아가 1.5℃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2016년 11월 공식 발효된 파리협정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등에 관한 국제 약속으로 활용돼온 교토(京都)의정서를 대체한다. 교토의정서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됐다. 이제 파리협정 시행 원년이 시작된다.파리협정은 교토의정서와 달리 지구 평균기온 목표치를 처음으로 명문화했고, 선진국(37개국) 위주로 부과하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모든 당사국으로 넓혔다. 당사국들이 정한 목표의 이행 정도를 점검하기로 한 것과 종료 시점 없이 지속적인 기후변화 대응 체제를 구축한 것도 진전된 성과였다.지구의 평균기온이 높아지는 것은 이른바 온실 효과 때문이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복사열을 다시 방출해 평형을 이루는데,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가 방출을 차단해
2021-01-11 20:03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우리나라 공식 이민의 효시는 사탕수수 농장 취업 희망자 102명이 미국 상선 갤릭호를 타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삼은 미주 이민 100주년에 건립이 추진된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이민선의 출발지인 인천시(월미도)에 2008년 개관했다. 미국 연방의회가 2005년 12월 제정한 `미주 한인의 날`(The Korean American Day)도 이민선 도착일을 기념한 것이다. 2019년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한인이민사박물관은 미주 한인 이민사의 시작을 미국 시민권자가 처음 탄생한 1890년 6월 12일로 본다. 주인공은 서재필, 미국 이름으로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다. 1월 5일은 그가 숨진 지 70주기를 맞는 날이고, 7일은 탄생 157주년 기념일이다.서재필은 1864년 1월 7일 서광효의 둘째아들로 전남 보성 외가에서 태어났다. 충남 논산의 친가에서 성장하다가 재종숙 서광하에게 입양됐다. 7살 때 서울로 올라와 외삼촌 김성근 집에서 한학을 배운 뒤 1882년 과거(별시문과 병과)에 최연소로 급제했다. 그 무렵 외삼촌 집에 드나들던 당숙 서광범을 비롯해 김옥균·홍영식·박영효 등 개화파 인
2021-01-04 09:01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1950년 12월 북한군의 서울 재점령이 코앞에 닥치자 군인들은 대부분 서울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미국 제5공군의 군목(軍牧)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봉사자 100여 명과 함께 1000명 넘는 고아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편을 마련해주겠다는 군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트럭 한 대에 아이들을 10여 차례씩이나 번갈아 태워 3일 만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100명도 탈 수 없는 낡고 작은 배였다. 기다리는 도중 아이 8명은 추위를 이기지 못해 독감과 백일해로 숨졌다. 절망에 빠진 블레이즈델 중령은 서울에서 우연히 만난 제5공군 작전참모 터너 로저스 대령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로저스 대령은 마침 미국에서 출발해 일본 오키나와 기지에 도착한 C-54 수송기 16대를 보낼 테니 이튿날 아침 8시까지 김포공항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지만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을 이동시키기도 쉽지 않았다. 공군 수송부에 요청했으나 보내줄 차량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다시 좌절감에 휩싸여 있을 때 시멘트 하역 작업을 위해 미군 해
2020-12-21 19:28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면 조선 민족의 그리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니라.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깊이 팔 것 없이 얕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밖에는 비아라 하나니,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로법미(英露法美·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을 비아라 하지만, 영로법미 등은 저마다 제 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은 비아라 하며, 무산계급은 무산계급을 아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 등을 비아라 하지만 (하략)"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가 중국 뤼순(旅順)감옥에 갇혀 있던 1931년 6월 10일부터 매일 103회에 걸쳐 연재한 `조선사`(朝鮮史)의 첫 대목이다. 신채호는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서술하겠다고 마음먹고 틈틈이 원고를 집필했으나 단군부터 삼국시대까지만 완성한 상태에서 일제에 의해 체포되고 말았다. 이 저술을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라고 부른다. 지난 8일은 신채호 탄생 1
2020-12-14 19:03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1980년 12월 8일 밤 10시 50분, 비틀스의 리더였던 존 레넌은 아내 오노 요코(小野洋子)와 함께 미국 뉴욕의 맨해튼 자택에 들어가다가 정신질환자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쏜 총탄을 맞고 쓰러져 숨졌다. 그의 죽음과 함께 1960년대를 풍미한 비틀스 신화와 전설은 막을 내렸고, 멤버 4명의 재결합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던 팬들의 간절한 기대도 무너졌다. 당시 25살의 채프먼은 살해 동기를 묻자 "존 레넌은 `비틀스야말로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고 말했다. 레넌은 종교와 신을 믿지 않는 가짜 평화주의자다. 노래 `Imagine`에서는 천국이 없다고 말하고 돈도 갖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수백만 달러짜리 집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위선자다. 그래서 내가 신의 이름으로 처단했다"고 대답했다.레넌은 1940년 10월 9일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올해는 그의 탄생 80주년이자 사망 40주기다. 1957년 3월 자신이 나온 중학교 이름을 딴 스쿨밴드 `쿼리멘`(Quarrymen)을 결성하자 두 살 아래인 폴 매카트니와 세 살 적은 조지 해리슨이 1957년 7월과 1958년 3월 각각 합류했다. 그룹명은 `레인보스`(Rainbows), `문독스`(Moo
2020-12-07 18:53
"잘 들어라. 지금 일본 혼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자위대 제군 뿐이다. 일본을 지킨다는 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제군은 사무라이(무사·武士)다. 너희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왜 지키고 있단 말인가. 일본 근본이 왜곡돼 있다. 나는 자위대가 일어나는 날을 기다렸다. 제군 가운데 나를 따를 사람은 없는가?" 1970년 11월 25일 오전 11시, 극우단체 다테노카이(楯の會·방패회) 회장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회원 4명과 함께 일본 도쿄(東京)의 육상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를 찾아 우수 대원을 포상하겠다며 총감 면담을 요청했다. 총감실에서 대화를 나누던 미시마 일행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일본도를 꺼내 들고 마쓰다(松田) 총감을 인질로 삼은 뒤 자위대원들을 집합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자위대원 1000여 명이 연병장에 모였다. `칠생보국`(七生報國·일곱 번 태어나도 조국에 보답하겠다는 뜻)이라고 적힌 띠를 머리에 두른 미시마는 본관 2층 발코니에서 자위대원들을 내려다보며 일장연설을 폈다. 전쟁 포기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 등을 규정한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하도록 자위대가 나서야 한다는 게 요
2020-11-26 18:53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한국인의 주곡은 쌀이다. 쌀을 향한 애착과 집념은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그러나 쌀 낟알이 열리는 벼는 산이 많고 동남아보다 일조량과 강수량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키우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쌀은 늘 모자랐다. 쌀밥에 고깃국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쌀 소비를 줄이고자 1967년 혼·분식 정책을 도입했다. 혼식은 쌀에다 보리 등 잡곡을 섞어 지은 밥을 말하고, 분식은 가루(주로 밀가루) 음식을 일컫는다. 보리는 쌀보다 키우기 쉽지만 밥맛이 떨어지고 소화가 잘되지 않아 사람들이 꺼렸다. 밀가루는 미국의 무상원조로 풍족한 편이었다. 정부는 쌀보다 보리와 밀가루가 몸에 좋다고 선전하며 `식생활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혼·분식을 장려했다. 그래도 국민의 쌀 선호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강제 수단도 동원했다. 1968년부터 모든 음식점에서 25% 혼식을 의무화했고, 이듬해부터는 매주 수·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을 원료로 한 음식 판매를 금지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도 교사가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해 보리가 적게 섞여 있으면 혼을 냈다. 쌀을 축내는 쥐를 퇴치
2020-11-23 18:55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소다 선생은 일본 사람으로 한국인에게 일생을 바쳤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나타냄이라. 1867년 10월 20일 일본국 야마구치(山口)현에서 출생했다. 1913년 서울에서 가마쿠라(鎌倉)보육원을 창설하매, 따뜻한 품에 자라난 고아가 수천이리라. 1919년 독립운동 시에는 구속된 청년의 구호에 진력하고, 그 후 80세까지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 종전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에 국민적 참회를 할 것을 순회 역설했다. 95세 5월.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가마쿠라보육원 자리에 있는 영락보린원에서 1962년 3월 28일 장서(長逝)하니 향년 96세라. 동년 4월 2일 한국 사회단체 연합으로 비를 세우노라."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에는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다. 이곳에 안장된 유해는 모두 417명이다. 묘비의 주인공은 대부분 서양인이지만 유일하게 일본인 이름이 눈에 띈다. 비석 전면에는 십자가와 함께 `孤兒(고아)의 慈父(자부) 曾田嘉伊智先生之墓(소다 가이치 선생 지묘)`라고 새겨져 있다. `고아들의 자비로운 아버지`가 부인 우에노 다키코(上野瀧子)와 함께 잠든 곳이다. 소다는 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와 탄
2020-11-09 18:53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1968년 11월 2일 전남 목포에서 최초의 시민장이 치러졌다. 주인공은 이틀 전 세상을 떠난 다우치 지즈코(田內千鶴子), 한국 이름은 윤학자(尹鶴子)였다. 언론들은 "목포를 울린 장례, 3만 조객의 슬픔을 뒤로하며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 여사 떠나시다"라고 보도했다. 당시 인구 16만여 명이던 목포에서 3만 명의 조문객이 몰렸다면 시 전체가 슬픔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들은 무엇 때문에 일본인 여성의 죽음을 그토록 아쉬워했을까.영결식에서 고아 출신의 한 추모객이 낭송한 애도시에서 해답을 짐작할 수 있다. "눈물과 피와 땀으로 씨를 뿌린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 그건 당신입니다. 언어도 풍습도 다른 이 나라에서 배고픔에 굶주려 우는 아이들을 모아 당신의 손으로 밥을 지어 먹이셨습니다." 다우치는 1912년 10월 31일 일본 시코쿠(四國)섬 남부 고치(高知)현에서 태어났다. 생일이 기일과 같은 날짜여서 며칠 뒤면 탄생 108주년과 별세 52주년을 맞는다. 조선총독부 목포시청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현해탄을 건넌 뒤 목포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부터 목포 정명여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
2020-11-02 18:58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중국 지린(吉林)성 허룽(和龍)시 삼도구 청산리.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가장 빛나는 승리를 거둔 곳이다. 국가보훈처 지원과 연변 조선족자치주 협조로 2001년 이곳에 세워진 높이 17m 60㎝, 너비 25m 크기의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뒷면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전략) 소수로 다수를 타승한 이 전과는 연변 내지 동북 지역 반일 무장투쟁 사상 새로운 시편을 엮음은 물론 조선 인민의 반일 민족 독립운동을 추동한 력사로서 청사에 새겨졌어라. 청산리대첩은 `일군무적`(日軍無敵)의 신화를 깨뜨리고 연변 내지 전국 각 민족 인민의 항일 투지를 지대히 고무하고 일본 군국주의의 위풍을 추풍락엽처럼 쓸어버렸거늘…(후략)"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독립 열기가 한껏 높아지자 중국 만주에는 만세 시위에서 벗어나 무장투쟁 노선을 따르는 독립운동 세력이 집결했다.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와 사관연성소가 세워지고, 10여 개로 갈라져 있던 독립군 부대도 연합해 규모를 키웠다. 국내 진공작전도 활발하게 펼쳐지자 일본군은 독립군을 추격하려고 압
2020-10-12 18:43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미국 오리건주에 살던 해리 홀트(1905∼1964년)와 버사 홀트(1904∼2000년) 부부는 1954년 어느 날 마을 고교 강당에서 월드비전 창립자 밥 피어스 목사가 한국 전쟁고아들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 속에서 울부짖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는 것이 소명임을 깨닫고 입양에 나섰다. "어린이는 사랑받을 때 가장 아름답게 자란다"는 소신에 따라 긴급구호나 지원보다 가정을 만들어주는 게 절실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홀트 부부는 자녀 6명까지 식구 수대로 8명의 고아를 거두어 키우기로 했다.그러나 2차대전 직후 유럽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제정된 미국의 난민구호법은 한 가정의 외국인 입양아를 2명까지로 제한했다. 홀트 부부는 각계에 호소해 이 제한을 푸는 `전쟁고아 구제를 위한 특례법`, 일명 홀트 법안을 연방의회에서 통과시킨 뒤 1955년 한국으로 건너갔다. 전쟁고아 12명을 비행기에 태워 미국으로 돌아온 부부는 8명을 자녀로 맞고, 4명을 다른 집으로 입양을 주선했다. 이제 자녀가 모두 1
2020-10-05 18:49
이희용 연합뉴스 전문기자 "조선에서 500명이 넘는 여성을 만났는데, 제대로 이름 가진 이는 10명도 안 됐습니다. 이들은 `돼지 할머니` `개똥 엄마` `큰년` `작은년` 등으로 불립니다. 남편에게 노예처럼 복종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들 못 낳는다고 소박맞고, 남편의 외도로 쫓겨나고, 가난 때문에 팔려 가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한글을 깨우쳐주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독일 출신의 미국 남장로회 간호선교사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한국명 서서평·徐舒平)이 1921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선교부에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일제강점기 조선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오갈 데 없는 여성들을 보살피고 학교를 세우고 인권 옹호에 앞장서 `조선의 마더 테레사` `조선의 작은 예수`란 별칭을 얻었다.셰핑은 1880년 9월 26일 독일 비스바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한 살 때 숨졌다고도 하고, 셰핑이 사생아였다는 설도 있다. 어머니는 세 살 때 그를 친정어머니한테 맡기고 미국에 이민했다. 아홉 살 때 외할머니가 사망하자 주소 적힌 쪽지 한 장 들고 어머니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다행히 어
2020-09-24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