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 산, 거듭할 중, 물 수, 겹칠 복, 의심할 의, 없을 무, 길 로. 산과 물이 계속 이어져 길이 없다는 뜻이다. 산길도 물길도 모두 막혔다. 나아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막막한 형국이다. 길이란 본디 걸어갈 수 있어야 길이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길이 단절된 듯 하다.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육유(陸游)의 ‘유산서촌’(遊山西村; 산서촌에서 놀다)의 시구다. 사방은 온통 첩첩산중(疊疊山中)인데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운다. 발길이 막힌 시인의 눈 앞에, 마치 운명이 손을 내미는 듯, 한 장면이 문득 펼쳐졌다. 그는 이렇게
2025-07-03 18:24 박영서 논설위원
알 지, 족할 족, 아니 불, 욕될 욕. 도가(道家)의 시조로 꼽히는 노자(老子)의 저서 `노자`(老子)에 나오는 구절이다.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로 이어진다.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으며,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안분(安分)편에도 `만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을 알아 그치면 종신토록 부끄러움이 없다`(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無恥·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지 종신무치)라는 구절이 있다.`도덕경`(道德經)으로도 불리는 `노자`는 기원전 510년경 만들어진 책으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말고 순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동양적 지혜의 정수를 담고 있다. 유불선(儒佛仙)으로 대표되는 동양 철학에서 `선`(仙)이 바로 노자와 그를 이은 `장자`(莊子)로부터 기원한다. `노자`와 `장자`는 반어(反語)적 비유로 가득차 있다. 역설적이고 호쾌한 언어를 통해 유교가 주장하는 예(禮)와 덕(德) 등 일상적 윤리와 상식을 비웃고 본연의 생명을 찬양한다. 유교가 주장하는 각종 예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질과 생명을 억압하는 것일뿐이라고
2025-06-26 18:04 강현철 기자
다스릴 경, 세상 세, 구제할 제, 백성 민.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통치의 궁극적 목표는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다는 의미다. 이는 유교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한다는 `경국제세`(經國濟世),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안민위국`(安民爲國), 널리 백성을 구제한다는 `광제창생`(廣濟蒼生) 등이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유교의 주요 경전인 서경(書經)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다. 서경 `무성`(武成) 편에 `유이유신 상극상여 이제조민 무작신수(惟爾有神 尙克相予 以濟兆民 無作神羞)`라는 구절이 있다. 해석하면 `원컨데 신들은 나를 도와서 백성들을 구제하고 신의 수치가 될 일은 하지 마소서`다. 통치자들에게 백성을 위한 정치와 도덕적 책무를 다해 부끄러움 없도록 하라는 경고성 메시지다. 이후 중국의 여러 경서들에서 유사한 의미의 말들이 나타난다. 맹자(孟子)는 "백성이 가장 중요하고, 사직(나라)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라며 백성을 중심에 둔 정치, 곧 `경세제민`의 가치를 역설했다. 정약용 등 조선시대 실학자들도 국정 운영의 원칙
2025-06-19 18:41 박영서 기자
높을 항, 용 룡(용), 있을 유, 뉘우칠 회. 궁할 궁, 어조사 지, 재앙 재, 어조사 야. `하늘 높이 오른 용은 뉘우침(회환)이 있다. 궁극에 이르른 데 따른 재앙이다`라는 뜻이다. 유학(儒學)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주역(周易)의 건괘(乾卦)를 풀이한 것이다. 64개의 괘 중 건(乾)과 곤(坤) 두 괘를 설명한 문언전(文言傳)에 나온다. 주역은 사람이 올바르게 세상과 대하는 처세
2025-06-13 17:56 강현철 기자
바랄 망, 매실 매, 그칠 지, 목마를 갈. 매실을 바라보며 갈증을 해소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도 심리적인 만족을 얻거나, 기대감을 통해 어려움을 참아낸다는 의미로 쓰인다. 같은 뜻을 담은 사자성어로 매림지갈(梅林之渴), 망매해갈(望梅解渴) 등이 있다. 중국 삼국시대 조조(曹操)와 관련된 일화에서 유래했다. 조조가 어느 해 여름 군사들을 이끌고 전투에 나섰다. 날씨는 찌는 듯이 무더웠다. 행군 도중 물까지 떨어져 병사들은 탈진 직전이었다. 이때 조조는 임기응변의 지혜를 발휘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매실 숲이 있다. 탐스럽고 맛 좋은 매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의 입 안에 침이 돌았다. 힘을 내어 행군을 계속할 수 있었다.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매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망매지갈`은 실제로 매실이 없어도, 그 말만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한 이야기다. 이 고사가 지금 대한민국 대선 정국에서 다시 소환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앞다투어 달콤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유권자의 갈증은 그 말 한마디에 잠시 해소되지
2025-05-29 17:53 박영서 기자
하나 일, 잎 엽, 막을 장, 눈 목. `잎사귀 하나로 눈을 가리다`라는 뜻이다. 장(障) 대신 가릴 폐(蔽)자를 써 일엽폐목(一葉蔽目)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부분만 보고 본질을 놓친다는 의미로, 자질구레하고 지엽적인 일에 눈이 어두워 문제의 본질이나 전모를 보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성어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어리석게 애쓰는 경우를 가리키기도 한다. `가랑잎으로 눈을 가린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우리 속담과 유사하다. `일엽장목 불견태산, 양두색이 불문뇌정(一葉障目 不見泰山, 兩豆塞耳 不聞雷霆)으로 이어진다. 가랑잎이 눈을 가리면 태산을 보지 못하고, 콩 두알이 귀를 막으면 천둥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얘기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어록을 모아놓은 `갈관자`(갈冠子) 천칙(天則)편에 나오는 말이다. `회남자`(淮南子)에도 비슷한 의미의 `축록자목 불견태산`(逐鹿者目 不見太山)이라는 구절이 있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태산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줄여서 `축록자 불견산`(逐鹿者 不見山)이라고도 한다. `돈을 움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뜻의 `확금자 불견인`(攫金者
2025-05-22 17:45 강현철 기자
밝을 명, 밝을 철, 지킬 보, 몸 신.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일을 잘 처리하여 자기 몸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몸을 사리는 `보신주의`가 아니다. 혼탁한 세태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정도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시경(詩經)의 `증민`(蒸民)편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미 밝고 또 슬기로우니(旣明且哲), 그 몸을 보전하였네(以保其身).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고(夙夜匪解), 한 사람만 섬긴다네(以事一人).`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의 재상 중산보(仲山甫)를 칭송한 시가다. 제후국인 제(齊)나라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고, 선왕은 중산보에 제나라로 가서 방어를 위한 성을 쌓으라고 명했다. 증산보는 제나라를 향해 길을 나섰고, 친구 윤길보(尹吉甫)는 그를 배웅하면서 이 시가를 지었다. 여덟 장으로 구성된 `증민`은 중산보의 고결한 인품과 탁월한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그 가운데 `명철보신`이 담긴 구절은 재상으로서 증산보가 지녔던 위상과 그에 걸맞은 자질, 그리고 덕목들을 정연히 풀어내고 있다. 충성을 다하되 무모하지 않고, 나라를 섬기되 자신을 잃지 않는 지혜로운 처신이
2025-05-15 18:20 박영서 기자
하늘 천, 알 지, 따(땅) 지, 알 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는 뜻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의미다. `아지자지`(我知子知·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라는 구절이 이어진다. 이를 `사지`(四知)라고도 한다. 중국 후한(後漢)때 선비 양진(楊震)이 한 말이다. 남북조시대 송(宋)나라의 범엽(范曄)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 양진열전에 실려 있다.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양진이 왕밀(王 密)이라는 사람을 현령으로 근무하도록 천거한 적이 있다. 양진이 지방의 태수로 발령받아 부임하던 차에 갈길이 멀어 왕밀이 현령으로 근무하는 지역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이때 왕밀이 늦은 시간 보자기를 들고 찾아와 현령으로 추천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황금 10근을 드리니 받아달라고 청을 한다. 양진이 호통치며 한 말이 "天知地知 我知子知"(천지지지 아지자지)다. 양진은 최고위직인 삼공(三公)의 지위까지 올랐으나 황제의 교만과 사치를 간언하다가 타 대신들의 모함을 받게 되고, 결국 자신의 떳떳함을 알리기 위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된다. 뒤에 이 말은 신이 안다(神知·신지), 땅이 안다(地知·지지)로 바뀐 형태로 널리 퍼졌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2025-05-08 18:33 강현철 기자
있을 유, 마칠 종, 갈 지, 아름다울 미.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좋은 결과를 맺는다`는 뜻이다. 시작만 하고 끝을 잘 맺지 못하면, 오히려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시작도 쉽지 않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완성이다. 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생겼다.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이 빠지고 결국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경계하는 말이다.출처는 주역(周易)이다. 땅이 위에 있고 산이 아래 있는 겸괘(謙卦)에 `謙(겸), 亨(형). 君子有終(군자유종)`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번역하면 `겸은 형통하니, 군자는 끝마침이 있다`가 된다. 산처럼 높은 능력과 지위를 가졌더라도, 땅 아래 머무는 것처럼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면 어떤 일이든 끝까지 잘 마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아름다운 마무리`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도 일을 마지막까지 성실히 해내는 사람을 진정한 군자로 본다.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은 `유종지미`의 정신을 온전히 체현한 여정이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다. 교황이
2025-05-01 19:02 박영서 기자
불 취, 털 모, 구할 구, 허물 자. `털을 불어 헤집고 감춰진 허물을 찾다`는 뜻으로, 악착같이 남의 결점이나 사소한 실수를 폭로해 따지는 행위를 뜻한다. 유사한 성어로 `취모멱자`(吹毛覓疵), `취모검부`(吹毛檢膚), `취모색자`(吹毛索疵)가 있다. 한비자(韓非子) 대체편(大體篇)의 `취모이구소자`(吹毛而求小疵)에서 비롯됐다. 비슷한 우리 속담에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가 있다.법가(法家) 사상으로 잘 알려진 `한비자`에 `寄治亂於法術 託是非於賞罰 屬輕重於權衡 不逆天理 不傷情性 不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기치란어법술 탁시비어상벌 속경중어권형 불역천리 불상정성 불취모이구소자 불세구이찰난지)`이란 구절이 나온다. "(현명한 군주는) 혼탁한 세상을 다스리는 건 법에 맡기고, 옳고 그름은 상벌에 의지하며, 가볍고 무거움은 저울로 나눈다. 하늘의 도리를 거스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해치지 않으며, 터럭을 불어 작은 흠집을 찾지 않고, 알기 어려운 것을 때를 씻어내면서까지 살피려 하지 않다"는 구절이 원문이다. 정치의 핵심(대체·大體)을 체득한 군주들은 사소한 허물을 억지로 찾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무
2025-04-24 18:25 강현철 기자
임금 군, 배 주, 백성 민, 물 수.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는 뜻이다. 민심의 무서움을 나타낼 때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다. 민본주의(民本主義) 사상의 대표적 표현이자 동양 정치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경구다. `민귀군경`(民貴君輕·백성은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 `민심여수` (民心如水·민심은 물과 같다), `이민위천`(以民爲天·백성을 하늘처럼 여긴다) 등과 맥을 같이한다.`군주민수`는 통치자의 자세와 백성의 중요성을 논한 순자(苟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이다. 순자는 백성과 임금의 관계를 물과 배에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군자주야 서인자수야, 수즉재주 수즉복주(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임금은 배와 같은 존재요, 백성은 물과 같은 존재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의미다. 통치 권력의 본질을 꿰뚫는 비유다.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신하들과의 대화에서 이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정치를 반성하는 장면도 전해진다. 하루는 당 태종이 신하 위징(魏徵)에게 명군(明君)과 혼군(昏君)의 차이를 묻자, 위징은 `군주민수`를 인용해 간언했다. 위징은 간언을 상당히 많이 했고, 그의 조언은
2025-04-17 17:42 박영서 기자
병 질·빠를 질, 바람 풍, 알 지, 굳셀 경, 풀 초. `세찬 바람이 휘몰아칠 때야 비로소 강한 풀인지를 알아본다`는 뜻이다. 위급하거나 곤란한 경우를 당해봐야 의지와 지조가 굳은 사람을 알 수 있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후한서`(後漢書) `왕패전`(王覇傳)에 나온다. 후한의 초대 황제 광무제(光武帝)가 명장 왕패(王覇)를 칭찬한 말이다. 왕패는 광무제가 군사를 일으킨 직후부터 그를 따르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 건국 공신이다. 남양(南陽) 출신 호족으로 한(漢) 왕조의 핏줄인 유연(劉縯)과 유수(劉秀·광무제) 형제들은 전한 말 신(新) 나라를 세운 왕망의 개혁 정치가 실패로 돌아가고 각지에서 왕망 정권에 반대하는 반란군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한 왕조의 부흥을 내걸고 군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자들은 추세가 좋지 않다며 하나둘씩 떠났지만 오직 왕패만이 남았다. 이때 광무제가 왕패의 굳은 절조를 칭송하며 한 말이 바로 `질풍지경초`다.
2025-04-10 18:06 강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