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선임기자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누구보다 생산성을 중시한 작가였다. 그는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부잣집 주인 프랭크 포드의 입을 빌려 "제 시간에 가기 위해 1분 늦는 것보다 3시간 먼저 서두르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금언을 던진다. 맥베스에는 "큰 일은 정오에 끝내야 한다"는 대사가 등장한다.`셰익스피어라면 어떻게 했을까`(제스 윈필드 지음, 이병철 옮김/자음과 모음)라는 책을 보면 셰익스피어는 빈틈없는 사업가이자 투자자였다. 셰익스피어의 영국은 철저한 경제논리로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 국제적으로 앞서있던 세라믹 기술까지 일본에 강탈당했다. 뛰어난 도공들이 임진왜란 후 대거 일본으로 끌려갔다. 지금은 적지 않은 국내 기업이 세라믹 주요 부품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한다.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국제정세가 엄혹하다. 위기가 코 앞에 닥쳤는데 행동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올 들어 국회 입법 기능이 두 달 넘게 마비됐고, 주요 정책 결정이나 대외 변수에 대한 대응도 굼뜨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큰 일을 정오에 끝내야 한다`는 격언에 따르면 문
2019-08-20 18:23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최근 개봉한 영화 `조`에는 인공지능 개발자를 사랑하는 로봇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조는 개발자에게 묻는다. "이 사랑도 설계된 건가요?"모라벡의 역설은 `기계가 하기 쉬운 것은 인간에게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기계에게 쉽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말을 한 한스 모라벡은 로봇 공학자다. 그는 로봇의 미래를 촘촘하게 전달하는 책 `마음의 아이들`(김영사)에서 "2040년까지 사람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했다.올 들어 열린 주요 글로벌 전자박람회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읽는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정교한 인간의 일까지 로봇이 대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업무 자동화를 촉진해 단순 노무직 22만명의 일자리를 없앤다는 섬뜩한 전망이 나왔다. 파이터치연구원은 2011∼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자료를 인용해 단순 노무 종사자의 주당 근로시간이 1% 단축될 때 자동화가 1.1% 촉진된다며 이 같은 분석을 내놨다. 인건비 급등과 낮은 생산성 탓에 이제 한국에서는 자동화를 강도 높게 추진하지 않고서는 제
2019-07-30 18:25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최고의 현대 사회학 이론가로 인정받고 있는 탈코트 파슨스는 생물학적 유기체와 인간 사회가 유사하다고 봤다. 파슨스는 이상 증세가 쉽게 회복되지 않고, 되풀이 될 때 그 사회는 병이 들었다고 규정했다. 한국은 속도전에 강하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폭풍처럼 닥친 위기에서는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업이 절벽에 내몰렸던 과정이나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는 자동차 부품산업에서 볼 수 있듯 서서히 밀려오는 위기에는 유난히 취약하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도 현실적 경제정책론을 담은 `경제유표`에서 "만사에 병통이 아닌 것이 없는 바, 지금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 다음이라야 그칠 것"이라고 한탄한 바 있다.지금도 한국은 고비용·저효율 현상의 심화, 제조업 경쟁력 후퇴, 고용의 질 악화 등 각 부문에서 병세가 도져가고 있다. 경제는 생물과도 같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줘야 기업의 야성이 살아난다. 50년 이상 누적되어온 권위주의적 경제운용방식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 한국이다. 여기에 반기업정서까지 가세해 투자 의욕은 꺾일 대로 꺾였다. 오죽하면 박
2019-07-09 17:57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통치를 받던 1930년대 티푸스가 급속히 확산됐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총독부는 티푸스균을 옮기는 쥐를 잡아 올 경우 쥐 한 마리당 일정액의 상금을 줬다. 베트남 도시에 사는 주민에서부터 정글에 사는 촌민에 이르기까지 너도나도 보상금을 타기 위해 쥐를 기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2011년 구제역 파동 때 가축이 죽거나 매몰되면 정부가 100% 보상해줬다. 나중에 처벌을 받기는 했지만 당시 일부 영농조합 관계자들이 살처분된 돼지 숫자를 허위로 늘려 보상금을 과다 지급 받았다.`정부 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데서 알 수 있듯 정부 예산집행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정책이 빗나가 이를 때워야 할 세금이 늘어나도, 각종 정책 지원자금이 술술 새나가 `혈세 자판기`라는 오명을 들어도 공무원들은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다. 잘못된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이다. 세목(조세의 종류별 명목) 마디마디에는 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과 고통, 힘겨운 노동의 땀이 배어있다. 지난 14일 기획재정부 배포 자료를 보면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2020년도 예산은 498조
2019-06-18 17:49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문아정이 도준의 추근거림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갈 때 카메라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공간을 오랜 시간 비춘다.(중략) 봉 감독은 한국의 지하실에서, 그리고 지하 취조실에서, 또한 한강의 다리 밑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두운 공간들이 다양한 기법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두도록 한다.이같은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한보리의 논문 `봉준호 영화의 어두운 공간에 대한 연구`(`영화연구` 71)는 봉 감독이 관객에게 독특한 영화 체험을 제시하는 공간이 `어두운 장소`라고 역설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도 백수 가족이 공짜 와이파이 신호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배회하는 곳이 반지하방이다. 공간을 치밀하게 탐구하는 봉 감독은 `봉테일`(봉준호+디테일)로 불린다.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평범하면서도 낯선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고, 다르게 눈뜨기 시작한다. 지하 단칸방, 옥탑방, 고시원 등 이른바 `지옥고`는 주거공간 양극화의 대명사가 된 장소들이다. 자영업 몰락과 소득· 지출의 양극화 등으로 어두운 공간
2019-05-28 18:01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한국이 1분기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역성장을 했지만, 일본은 일찌감치 지난해 1분기에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9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한국과 똑 같은 -0.3%의 성장률이다. 한국과 일본의 마이너스 성장 요인을 보면 모두 총수요 부진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경우, 0%대 저물가 행진이 겹치면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일본과 다른 점이다. 한국에서는 경제 허리를 떠받치는 중산층의 소비 둔화도 두드러진다. 저금리로 흥청망청하던 중산층은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 `애프터 쇼크(After shock·위기 이후 또다른 위기)`를 겪는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로버트 B. 라이히는 `애프터 쇼크`라는 책에서 거품 시대에 소득과 부가 늘어난 중산층이 경기가 나빠진 상황에서도 적절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빚의 수렁에 더 깊숙이 빠져들 것이라고 예견했다. 세계적인 시인 W. H 오든도 `이름 없는 시민`이라는 시에서 월부(月賦)의 중독성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는 통계국에 의해 당국에 대해 불평이 전혀 없는 시민으로 판명됐다/(중략) 그는 월부의 편리에 아주
2019-05-07 17:57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스파르타는 저출산의 심각성을 가장 먼저 깨달은 나라다. 미혼 남녀에게는 300%의 싱글세를 부과했다. 4명의 자녀를 두면 세금을 면제해줬다. 남자아이를 3명 이상 낳은 여성에게는 묘비에 이름을 새길 수 있는 특권을 줬다. 한국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12년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0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썼다. 결과적으로 출산장려책은 실패했다. 총인구 감소 시점이 2029년으로 3년이나 앞당겨졌다. 내년부터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하락하며 경제성장이 지체되는 `인구 오너스`(인구 보너스의 반대) 시대에 접어든다. 북한도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하다고 한다. 머지 않아 닥칠 한반도의 초고령사회 진입은 한국인이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증유의 사건이다.한국 사회는 핵심 정책 이니셔티브인 인구 감소 문제를 놓고 재정고갈과 인력 부족이라는 두 명의 골리앗과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한다. 써야할 돈은 늘어나는데 재정 운용은 방만하다. 가용할 인력은 부족한 데, 각종 규제 장벽 때문에 인재들은 창의성을 펼칠 수 없다. 인구 오너스 시대에
2019-04-16 17:53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맛있는 기행을 다녀왔다. 얼마 전 주말에 진행된 서울도서관의 탐방프로그램 `서울의 노포를 이야기하다`에서 멋과 맛을 동시에 음미할 수 있었다. 여행부문 베스트셀러인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저자인 박찬일 셰프의 설명을 들으며 서울의 노포 맛집들을 잇따라 찾았다. 6.25 전쟁 때도 탕 끓이는 불을 끄지 않았다는 `청진옥`의 전설에 감탄하고, 을지로 조선옥에서 19공탄 연탄불에 잘 익힌 소갈비를 맛보면서 60년 경력이 넘은 노주방장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박 셰프가 노포의 `장사 내공`과 얼치기 한식 세계화를 대비시킨 대목에서 폭소가 터졌다. 국제 행사에 맞춰 갑자기 급조된 황당 영어메뉴가 즐비했다. 박 셰프가 직접 보여준 메뉴판 사진이 그 증거다. 한영 음식 메뉴판에 `방어구이`라는 한글 메뉴 밑에는 외부로부터 침략을 막는 `방위`로 오역한 `fried defense`(프라이드 디펜스)라고 인쇄돼 있었다. 대게는 `스노 크랩` 대신에 `대체로`란 뜻의 `usually`(유즈얼리)라고 표기했다. 번역기를 돌린 듯, 생고기는 `라이프스타일 미트`(lifestyle meat), 돼지 주물럭은 `마사지 포크`(Massage Fork)`, 육회(肉膾
2019-03-26 18:18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군사력의 변화, 인구 구조, 에너지 인프라 등 변수 외에도 중국에 대한 편견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전 세계를 사들인다"거나 "중국의 해외 투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이 난무한다. 지난해 미·중 무역 분쟁으로 세계 경제는 아수라장이 됐고, 국제 체제도 격변에 휩싸였다. 미국과 중국은 `조건부 휴전`으로 절충점을 찾고 있고 미중 무역 분쟁은 곧 타결될 전망이다.통상분야에 속설이 있다. 미국은 어느 국가든 자신의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는 나라는 결코 허락하지도, 세계 1위 자리를 호락호락 물려주지도 않는다는 견해다. 일본이 급부상하면서 어느샌가 미국 GDP의 40%를 웃도는 경제력을 보유하게 됐다. 일본 기업이 의기양양하게 미국 기업까지 마구 사들이자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기를 꺾었다.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의 실질 GDP 증가율은 평균 1%로 하락했다.중국의 GDP는 오바마 전 대통령 때 이미 미국의 40%를 돌파했지만, 오바마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을 끄는 소방
2019-03-05 18:13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 중 하나였던 비행기는 언제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중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세계 최대 수륙양용기 `쿤룽 AG600`이 지난해 10월 20일 후베이( 湖北)성 징먼(荊門)에서 물 위에 가뿐하게 착륙했다. 미국에서는 프로펠러도, 엔진도 없는 `이온풍 비행기`가 미끄러지듯이 12초간 하늘을 날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티븐 배럿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22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인류 최초로 전기를 띤 입자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나는 `이온풍 비행기` 실험 결과를 발표해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항공분야만 봐도 남들이 넘볼 수 없는 초혁신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지금, 어중간한 산업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블록체인 혁신과 디지털 대전환, 거래 혁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에는 한 나라 경제·사회 시스템 전체의 역량을 결집하는 국가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10년∼20년 이상을 내다보면서 산업·경제 뿐 아니라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구정책·도시정책·미래학 등을 포괄하는 중·장기 종합 국가 전략이 안 보인다. 다양한 이해관
2019-02-12 18:09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1900년대초 호사가들은 자동차가 `불편한 장난감일 뿐이며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악담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들은 신속한 왕진으로 생명이 다급한 환자를 구해낼 수 있는 자동차에 열광했다. 바빠진 도시인들은 자동차 덕에 우편으로 플레이크를 주문해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우편 판매 인기는 지금의 온라인 쇼핑 열기 못지 않았다. 마침내 1908년 대량생산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20세기가 시작된 지 불과 13년 만에 마차는 뉴욕 거리에서 자취를 감췄고 자동차가 거리를 뒤덮었다.지난 8일(현지시각)부터 11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가전쇼) 2019` 현지 취재를 하면서 마차의 운명과 전통적인 엔진 자동차의 쇠락이 전시기간 내내 떠나지 않는 화두로 머리에 맴돌았다. CES 메인 무대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에서 접한 보쉬의 `무인 전기 콘셉트 셔틀`은 가운데 공간이 뚫려 있고 네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조였다. 운전석은 보이지 않았다. 커넥티드 서비스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이 차 측면 위쪽에는 `보쉬 사물인터넷(IoT) 셔틀-기회의 세계`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2019-01-15 18:06 예진수 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전국시대 지략가인 한비자는 "천리가 되는 긴 제방도 개미굴에 무너지고, 백척이나 되는 궁실도 굴뚝 틈새의 작은 불씨로 불탄다"고 말했다.지난 1월 밀양시 요양병원 화재 참사를 비롯해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 강릉 펜션 보일러 사고 등 올해 빚어진 후진국형 안전사고들을 보면 작은 흠결 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반복됐다. 산다는 것은 온갖 사고와 재난을 요리 조리 피해 나가는 일이라는 한탄까지 나온다.경제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정책 하나가 경제를 뿌리째 흔든다. 올 한해 경제를 돌아보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역대급 태풍이 됐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폐업이 이어지고 저임금 근로자 실직 등 고용참사가 빚어졌다. 정부는 24일 국무회의에서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에 법정 주휴시간을 포함하되 노사 합의로 정하는 약정휴일시간은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미봉책이라고 지적한다. 경영자총협회는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약정유급휴일에 관한 수당(분자)과 해당 시간(분모)을 동시에 제외하기로 수정한 것은 고용노동부의 기존 입장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서 경영계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2018-12-25 18:17 예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