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유전체교정연구단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논문 첫선GMO기술과 달리 자체 유전자 일부만 교정 위해성 없어사람 유전체까지 교정… 혈우병 등 난치병 치료 길 열려그래핀·줄기세포 등 다양한 기초과학 새 산업 창출 기대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15·끝) 미래 50년, 다시 과학기술로 "노벨상을 받고 싶은 사람은 오지 마라. 우리는 국가와 산업계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1966년 국내 첫 과학기술 종합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현 KIST)가 설립될 당시, 최형섭 초대 소장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던 과학기술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아직 과학기술 불모지나 다름 없었고, 연구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들의 힘이 절실했다. 하지만 최 소장은 좋은 조건을 제시하긴커녕, 원하는 연구를 못 할지 모른다고 먼저 못을 박았다.KIST는 월남전 파병 대가로 미국 원조를 받아 지어졌다. 당장 원조로 배를 채우기보단 미래에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결단과 의지가 베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공업화를 이끄는 게 임무였다. 다행히 가난한 나라의 부름에 재
2016-07-25 17:00 남도영 기자
"우주개발 같은 거대 프로젝트는 그동안 한국이 해왔던 것처럼몇 사람이 몇 년간 희생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14) 나라밖에서 심은 과학기술의 씨앗`우리별` 제작 참여 우주개발 베테랑 최경일 박사 "독일 엔지니어들은 집 앞 문패에 어느 기술전문학교를 나왔는지를 적어 놓는다. 그만큼 자부심이 엄청나고, 사회적으로도 존중받는다는 것이 한국과 비교해 놀라운 점이었다.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저성장으로 위기를 겪고 있지만, 독일을 비롯해 엔지니어를 존중하고 과학기술 기반을 탄탄히 갖춘 나라들은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최경일 박사는 첫 직장인 독일 유멧샛(Eumetsat)에서 일을 시작할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최 박사는 현재 유럽 최대 통신위성 서비스업체인 `유텔샛(Eutelsat)`에서 위성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유텔샛은 인텔샛(Intelsat), 인말샛(Inmarsat)과 함께 세계 3대 통신위성 사업자로 꼽힌다. 유텔샛의 모체는 1977년 출범한 유럽통신국제기구로, 2001년 민간업체로 전환해 현재 32개국 출신 연구원 1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2016-07-18 17:00 남도영 기자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시대…작은 성공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감도 얻고실력도 늘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어"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14) 나라밖에서 심은 과학기술의 씨앗`셰일혁명` 주역 이성규 미 오하이오대 석좌교수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총독부는 조선인 중 우수한 과학기술자가 나오는 것을 경계해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교육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기술을 익히는 것이 나라를 살릴 길이라고 생각한 우리 민족은 우수한 학생이 있으면 멀고 먼 친척들까지 힘을 모아 미국 등으로 유학을 보냈다. 주변 이웃들의 성원을 받으며 유학길에 오른 이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싹을 틔웠다. 1966년 한국에 최초로 종합과학기술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되고, 과학기술인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출범하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던 재외 과학기술자들은 전 국민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을 다시 일으킬 희망이었고, 스스로 발전할 기회를 얻지 못한 국내 과학기술이 기댈 곳은 해외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 논문이 생명과학 혁명 신호탄1980년대 식량난 해결 `현대판 연금술`로 유전공학 각광IT에서 시작된 창업 바람 `바이오 벤처 붐`으로 옮겨와줄기세포·뇌 투자 집중… 의약품 원천기술 수출 성과도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13) `바이오 7대 강국`으로 도약 "우리가 생명의 비밀을 밝혀냈다 "1953년 2월 21일, 영국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 근처 이글 식당 안으로 들어온 프랜시스 크랙과 제임스 왓슨은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같은 해 이 두 과학자가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은 생명과학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생명 현상의 기본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어떤 구조로 이뤄져 있는지 밝혀지면서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본질을 규명하고 활용하는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0년대 생물체 고유의 DNA를 시험관 안에서 또 다른 생물체의 DNA와 결합하고 새로운 유전 정보를 갖는 생물체를 만들어내는 `유전자 재조합`에 성공했으며, 새천년을 맞이한 2000년에는 인간 유전체를 거의 100% 해독한 `인간 게놈 지
2016-07-11 17:00 남도영 기자
IT 기술 KIST 전산실서 `싹` … 70년대엔 `전산화 붐`전화적체 해결위해 240억·1300명 투입 `TDX 국산화`세계첫 CDMA·지상파 DMB·와이브로 성과로 이어져ETRI 중심 `초지능·초연결·초실감` 기술개발에 매진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12) IT강국으로 도약 최근 타계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 대표작 `제3의 물결`을 통해 인류가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쳐 20∼30년 안에 `정보화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예견대로 현대인의 일상은 정보통신기술(IT)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게 됐다. 전 세계는 인터넷이란 거대한 통신망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의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고, 최근에는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통해 다시 한 번 `모바일 혁명`을 체험하고 있다.제3의 물결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던 한국에도 밀려왔다. 정보화 혁명이 촉발한 첨단 기술 전쟁을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한 우리나라는 1986년 1가구 1전화 시대를 연 전전자교환기 `TDX` 국산화,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반도체
2016-07-04 17:00 남도영 기자
1958년 `원자력법` 제정 첫발… 1978년 첫 원자력 발전소 `고리 1호기` 가동핵연료 국산화·한국표준형원전 단독설계 완공 등 기술 자립 `숨가쁜 질주`2009년 UAE에 첫 수출 쾌거… 깨끗하고 안전한 차세대 원전 개발 `구슬땀`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11) 원자력 발전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의 시작은 한 뼘 크기의 작은 나무상자에서 시작됐다.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6년 7월, 세계 전력계의 대부로 불리던 워커 시슬러 디트로이트 에디슨 전기회사 회장이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왔다. 그가 내민 나무상자에는 우라늄과 석탄이 들어있었다."이만한 석탄으로는 4.5㎾의 전기를 생산하지만, 같은 양의 우라늄으로는 무려 200만 배가 넘는 1200만㎾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석탄은 땅에서 캐는 에너지이지만,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에너지입니다. 한국처럼 자원이 적은 나라에서는 사람의 머리에서 캐낼 수 있는 에너지를 개발해야 합니다."시슬러 회장의 얘기에 놀란 이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원자력 발전을 시작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당시 우리나라 전력 발전 시설의 대부분이 북한에 집중
2016-06-27 17:10 남도영 기자
미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위한 `R&D 생태계` 재정비 필요R&D투자 비중 `세계1위`… 사업화 성공률은 절반도 안돼AI·로봇 등 4차 산업혁명 대비 융합시스템 본격 가동해야과학기술 `문화` 투자 늘리고 우리만의 `원천기술` 도전도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10) 좌담회 올해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씨앗을 뿌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설립 50주년을 맞은 해이다. 내년에는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전담 부처인 과학기술처가 출범한 지 50년이 된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의 과학기술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을 이끈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1960년대 정부는 광복 후 혼란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를 살리는 길은 공업화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과학기술 연구소 설립과 해외 과학자 유치에 과감히 투자해 이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 값싼 노동력 외에는 아무런 자원도 없던 나라에서 싹을 틔운 과학기술은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중화학공업에서부터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 이르기까지 주력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며 오늘날 한국을 세계 10
2016-06-20 17:00 남도영 기자
개도국, 과학기술 통한 성장 `노하우` 전수 잇단 요청STEPI, 에티오피아에 과학기술 협력·인재양성 등 지원ICT·전문인력 진출 거점 `케냐 KAIST` 건립도 추진"자원·에너지 등 공동연구 미래 동반성장 파트너 삼아야"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9) 한국 과학기술 `검은 대륙` 사로잡다 195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1953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불과 63달러로, 국가 수입의 절반 이상을 해외 원조로 충당했다. 밀가루 한 포대가 아쉬운 때에 과학기술에 투자할 여력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일제는 조선인이 고급 과학기술을 보유하는 것을 치밀하게 가로막았고,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으로 그나마 존재하던 과학기술 인력과 시설에 심각한 손실을 겪었다. 결국 과학기술이 기댈 곳은 선진국의 기술과 경제 원조뿐이었다.1951년 유엔(UN)의 지원 아래 기술훈련생을 처음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는 국제 과학기술 협력의 문을 열었다. 비록 일방적으로 무상 원조를 받는 처지였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나라보다 뜨거웠다. 당시 수많은 후진 개발도상국들이 원조를 받았지만
2016-06-13 17:00 남도영 기자
KIST, 60년대 해외거주 과학자 유치 위해 주거지원 등 파격대우"대통령보다 월급 많은 연구원 수두룩" … 국가주력산업 기틀 마련 성과KAIST, 인재 양성 체계적 시스템 출발점… 80년대엔 석ㆍ박사 과정 확대포항공대, 학생보다 많은 교수ㆍ선진국 수준 장학금… 우수인력 배출 큰역할외환 위기 후 이공계 기피 위기… 2004년 특별지원법 만들어 극복 노력도 1966년 설립된 국가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별명은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였다. 이곳에서 연구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연구한 자동차, 조선, 철강, 반도체 등은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아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이들의 땀과 열정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다.과학기술이 이 땅에 싹을 틔우기 이전, 오랜 일제 식민통치와 해방 이후 전쟁으로 초토화된 한반도는 너무나 척박한 땅이었다. 부족한 자금과 자원, 열악한 정부 시스템과 산업 기반 등 모든 여건이 과학기술 발전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했다.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에 허덕이던 국민과 나라가 기댈 것은 오직 `사람` 밖에 없었다. 해외에 나가 있던 연구자들은 선진국에서의 안정적인 연구환경과 생활을 포기하고 불
2016-06-06 18:22 남도영 기자
모방 기술혁신 한계·과기 인력부족·후발국 기술 추격 등으로 위기 고조2003년 노무현 정부 지능형 로봇·미래차 등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선정R&D 공격적 투자… 국가 연구개발비 2011년 49조8904억 `10년새 3배 `반도체 등 첨단산업 경쟁력 껑충… 디스플레이, 일본 제치고 점유율 1위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7) 2000년대 성장동력 정책, 기술 넘어 사회 문화까지 포괄 새천년을 맞이한 2000년대 세계는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한 `지식경제사회`로 진입했다. 20세기가 자본과 노동을 기반으로 한 산업사회였다면, 21세기에는 과학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지적자본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경제를 이끄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특히 정보통신과 바이오, 나노 등 혁신 기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새로운 통신기술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정보화의 물결이 경제와 산업의 모습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인간 유전체 지도 완성으로 시작된 `바이오 혁명`은 질병과 식량난, 환경오염, 에너지 부족 등 인류의 난제들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나노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기
2016-05-30 19:10 남도영 기자
각국 무한경쟁 속 인터넷·이동통신 등 시대 화두정부, 과학기술 인재양성·국제공동 연구투자 속도국가 R&D비용 2001년 16조1105억… 10년새 4배원자력·해양·우주 등 거대과학 부문 눈부신 성과99년 국내 최초 다목적 위성 `아리랑 1호` 발사도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6) 1990년대, 기술 선진국 도약 `G7프로젝트` 추진 과학기술 역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날로 강화되는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와 기술패권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을 뒷받침할 핵심 전략기술 확보가 시급한 문제였다. 정부는 이전까지 외국의 원천기술에 의존하는 모방 전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내의 한정된 과학기술 자원을 소수 선택된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입해 세계 일류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 `선도기술개발사업(G7 프로젝트)` 추진을 결정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급성장하던 연구개발(R&D) 투자가 주춤하는 등 과학기술계에도 찬바람이 불었지만,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과학기술 발전으로 내세우면서 연구환경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됐
2016-05-23 18:03 남도영 기자
무역적자·외채증가·고물가 `삼중고` R&D로 위기 극복 나서기술진흥확대회의·특정연구개발사업 등 산·학·연 역량 결집R&D 투자 1981년 2931억서 1991년 4조1584억 폭발적 증가에너지·정보통신·컴퓨터·생명산업 등 첨단 산업분야 급부상 ■ 과학기술 50년, 미래 50년 (5) 첨단기술 개발 가속화한 1980년대 과학기술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와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통해 수출액 100억달러를 이룬 한국은 1980년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다. 특정 분야에 대한 과잉·중복투자로 인해 몇몇 대기업의 독과점 구조가 형성됐고, 조립 위주의 산업은 수출이 늘어나면서 수입도 늘어나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에 더해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수출길이 좁아졌고, 국내 임금이 상승하는 사이 낮은 임금을 앞세우며 추격해오는 후발 개도국과의 경쟁이 격화됐다. 이로 인해 한국 경제는 무역적자, 외채증가, 고물가의 `삼중고`에 시달리게 됐다.이에 정부는 자력으로 핵심 전략기술을 개발하는 `기술 드라이브(기술 우위)` 정책으로 위기를
2016-05-16 18:15 남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