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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기 제일기획 상무"저는 IT 업계에서 영원히 겸손할 수 밖에 없어요"2년이면 익숙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나의 물음에 대한 지일상 사장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무리 배우고 애써도 IT전문가들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 남들이 겸손하다고 칭찬을 하지만, 사실 겸손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남들은 그 겸손함 속에 숨어있는 그의 자신감과 늘 `다음`을 생각하는 자세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단기간에 광고쟁이에서 IT인으로 변화에 성공했고, 다시 세계적인 IT기업의 사장이라는 자리에 올랐으리라.어려서부터 영국, 미국 등을 다니며 공부를 했고, 한국에서는 고등학교와 군대를 다닌게 전부인 그의 이력을 보고 그가 적당히 영어를 섞어 쓰며, 세련되고 멋진 화술을 구사하는 사람이리라 생각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는 의외로 선배들에게는 조심스럽고, 자신이 나설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구분해 내는 신중함을 가진 사람이며, 웬만하면 평상시에 영어를 섞어쓰는 법이 없다. 어쩔 때는 답답하기도 할 정도로 말을 느리게 하지만, 대신 말 중간중간에 유머를 적당히 섞을 줄 알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지 않을 줄 아는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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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스케치◇생년월일: 1966년 1월16일◇출생지: 수원◇가족: 부인 양희전씨와 1남1녀(지수연, 지승호)◇혈액형 : AB형◇키: 180 Cm◇주량: 소주 한병◇종교: 불교◇10년후의 목표: CA AP Manager◇존경하는 인물: 아버지◇요즘 읽고 있는 책: Execution◇가장 힘들었던 시절: 유학시절◇스트레스 해소법: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땀흘려 운동을 열심히 한다◇경영철학: 기본에 충실하자약력:△1989.9∼1990.12 인디애나 대학 MBA 마케팅 전공△1991.3∼1994.7 공군사관학교 경영학 교관△1994.9∼1998.12 제일기획△1998.12∼1999.6 한국CA 마케팅 과장△1999.7∼2000.3 한국CA 마케팅 차장△2000.3∼2001.7 한국CA 마케팅 부장△2001.8∼2002.4 CA의 한국ㆍ일본 지역 마케팅 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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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신용보증기금 유병천 이사나와 임문호 사장과의 만남은 그리 오래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교후배로, 또 학창시절 뛰어난 실력을 갖춘 운동선수(야구)로 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임 사장은 듬직한 체구에 걸맞게 믿음직한 인상을 준다. 덩치 큰 사람이 대부분 그러하듯 마음은 온유하고, 또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임 사장은 상고를 졸업한 사람으로는 특이하게 IT산업에 투신하여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회사를 착실하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그는 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도전해보고 싶어하며, 실제 행동으로 옮겨 성취해 나가고 있다.그리고 임 사장은 항상 인재만이 회사 성장의 동력이고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무척 요구가 까다로운 금융솔루션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할 만큼 회사의 위치를 끌어올려 놓았다.이제는 국내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수시로 미국, 영국 등을 드나들면서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다.누구나 일등이 되고싶어 하지만, 실제로 되기는 쉽지 않는 일이다. 그는 학창시절 일등선수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집념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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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55년 8월27일◇출생지 : 부산◇가족 : 부인 김외숙씨와 1남 2녀◇혈액형 : A형◇키 : 182cm◇주량 : 소주 1병◇종교 : 불교◇10년 후의 목표 : 변하지 않는 초심의 삶◇존경하는 인물 : 김구◇요즘 읽고 있는 책 :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저)◇감명 깊게 읽은 책 : 삼국지◇가장 힘들었던 시절 : 첫 사업에 실패했을 때◇스트레스 해소법 : 운동◇ 학력 및 주요경력-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1975)- 신한산업 (1975-1977)- 한솔종합금융 전산실장(1977 - 1989)- (주)대산컴퓨터 대표이사(1989-1992)- (주)제이씨에스 부사장(1994-1996)- 무경시스템즈(주) 영업대표(1996-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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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외환시스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모스텍 임문호 사장의 첫 인상은 투박하다. 억센 경상도 억양, 직설적인 화법, 꾸밈없는 솔직함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기자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임 사장은 커피가 식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어느새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다.모스텍은 국내 IT업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는 외환시스템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임 사장은 모스텍(www.mosstec.com)의 창립멤버. 모스텍은 본사가 부산에 있다. 서울지사는 여의도에 있는데 임 사장은 일주일에 두 세번 서울과 부산을 오르내린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지방기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것을 꼬투리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을 통해 극복했다.지난주 서울지사에서 임 사장을 만났다. 임 사장은 "요즘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주저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영업실적이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IT업체들에 비해 올해 상대적으로 나은 실적을 올렸다"고 덧붙였다.올해 모스텍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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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영 KTF 신사업본부장송관호 원장은 소탈하고, 친근한 이미지다. 때로는 시골스러움까지 물씬 풍겨서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업무에서는 날카롭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산업의 추이를 정확히 진단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개발에 혁혁한 능력을 발휘한다. 겉으로는 부드럽고 속이 강한 외유내강형이라고 할까.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도입됐던 초기부터 인터넷 관련업무에 종사했던 송 원장은 우리나라 인터넷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99년에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장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인터넷 활성화의 1등 공신이 되었다. 99년 당시 4만개에 머물렀던 .KR도메인을 현재의 60만개로 늘렸으며, 인터넷 이용인구 또한 현재의 2700만명으로 끌어올리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또한,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나 남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붐에 취해 있을 때 정보격차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무료 인터넷 교육인 `실버넷운동`을 비롯해 여성 정보화, 주한외국인 노동자 무료교육 등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한 바 있다.풍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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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 송관호 한국인터넷정보센터 원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데 스스로 밝힌 어릴 적 별명만큼 적확한 단어를 찾기 어렵다. 차돌처럼 단단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승부 근성이 52세 주름진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다."이제껏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정보통신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라면 참여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없고 우리나라 인터넷 산업을 이만큼 성장하는 데 한 몫을 했다는 것이 큰 보람이지요"송관호 원장이 그동안 걸어온 길을 회상하는 얼굴에는 자부심이 배어있다. 송원장은 국내 인터넷 산업의 산증인이라고 할 만큼 국내 인터넷 산업과 함께 성장해 왔다. 인터넷 또는 정보화와 관련된 각종 표준화와 기술 상용화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 다양한 단체와 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력만 해도 이력서 한 장을 빼곡이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한국정보과학회 정보통신연구회 운영위원, 개방형 컴퓨터 통신연구회 이사, 한국정보처리학회 이사, 서울특별시 정보화추진자문위원회 위원, 한국ISP협회 자문위원 등 지금 맡고 감투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통해 쌓은 인맥은 송원장이 인터넷정보센터 원장으로 활동하는 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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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52년 1월 26일△출생지: 전북 전주△가족사항: 부인 황수자씨와 딸 2△혈액형: O형△키: 165㎝△주량: 소주 1병△종교: 불교△10년 후의 목표: 끝이 깨끗하도록 살아가는 것.△존경하는 인물: 김구△요즘 읽고 있는 책: CEO 징기스칸(김종래 저), 변화의 코드를 읽어라(전성철 저)△감명 깊게 읽은 책: 삼국지△가장 힘들었던 시절: 초고속망 설계할 때△스트레스 해소법: 명상◇학력 및 주요 경력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1980)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전자공학과 석사(1984)광운대학교 전자통신공학과 박사 (1995)금성전선연구소 정보시스템 과장(1979~1985)데이콤 미래연구실장(1985~1987)한국전산원 정보통신표준담당 연구원(1987~1994)한국전산원 표준본부 본부장(1996~1997)한국전산원 국가정보화센터 단장(1999)한국인터넷정보센터 원장(1999~현재)◇주요 포상이력체신부장관상(1990.4)대통령표창(1999.6)하이테크어워드 공로상(2001.12)대통령 동탑산업훈장(2002.6)인터넷그랑프리 인터넷진흥대상(2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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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1950년 11월 22일△ 출생지: 전북 고창△ 가족사항: 부인 송정열씨와 딸 셋△ 혈액형: B형△ 키: 168㎝△ 흡연: 안 피움△ 주량: 소주 1병△ 종교: 천주교△ 10년 후의 목표: 동박 분야 세계 최고 회사로 발전△ 존경하는 인물: 이동녕 서울대 명예교수△ 요즘 읽고 있는 책: 도요타 경영방식△ 감명 깊게 읽은 책: 大望△ 가장 힘들었던 시절: 공장 설립 후 품질이 안 잡혔을 때△ 스트레스 해소법: 성당에서 두 시간 가량 기도 및 명상 △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학사 (1977)△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석사 (1980)△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박사 (1983)△ 일진그룹 입사 (1977)△ 기술연구소 연구개발 과장 (1984)△ 기술담당 이사 (1989)△ 공장장 겸 기술담당 상무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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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근 일진소재산업 사장(53)은 이공계 출신의 가장 모범적인 성공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는 CEO다.그가 이끄는 일진소재산업은 지난 87년 국내 처음으로 인쇄회로기판(PCB)용 전해동박을 국산화한 이래 성장을 거듭, 현재 국내시장 1위는 물론 세계 3대 메이커라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제품개발에서 생산을 주도하며 지금의 최고경영자에 이르기까지 김 사장의 동박 기술에 대한 열정과 끈질긴 집착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일진그룹의 `씽크탱크`〓김 사장은 일진그룹 내에서도 최고의 `CTO(최고기술책임자)`로 통한다. 그가 연구개발을 주도한 화섬용 알루미늄 합금보빈, PCB용 전해동박 등이 모두 세계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며 일진의 대표적 수출품목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김 사장이 일진그룹과 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7년 가을. 때마침 일진그룹에서 PCB용 전해동박 개발을 서울대에 의뢰했고,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 사장이 이에 대한 기초실험 프로젝트에 동참했던 것.김 사장은 이를 계기로 일진그룹에 입사해 지난 1982년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화섬용 실패인 `알루미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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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윤근 사장을 관심 있게 본 것은 서울대 금속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77년 가을이다. 당시 학부 4학년이던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고, 때마침 일진그룹에서는 인쇄회로용 전해동박에 대한 개발의뢰가 있었기 때문에 김 사장은 그 때부터 나와 함께 전해동박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들어가게 됐다.이후 김 사장은 전해동박에 대한 기초실험을 마치고 석사학위 논문을 완료한 뒤, 일진그룹에 입사하게 되었고, 입사 후에는 알루미늄합금 보빈을 개발 생산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으며, 다시 박사과정에 진학해 스테인리스강-알루미늄-스테인리스강 복합판재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이 무렵부터 전해동박의 본격적인 생산을 위한 파일럿 플랜트 연구를 수행하게 됐다.약 3년간의 파일럿 플랜트 연구가 성공을 거두면서 일진은 1987년 전북 익산에 전해동박 전문 공장을 설립했고, 1989년부터 본격적인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일진소재산업이 전해동박을 개발하기 이전까지는 일본이 거의 독점하며 소위 부르는 게 값이었으나, 일진이 생산을 시작하자마자 가격을 절반 정도로 낮췄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전자산업계에서는 경쟁력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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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거원시스템의 코스닥 등록을 위한 공모주 청약 경쟁률이 2558.04대 1로 집계됐다. 이같은 청약 경쟁률은 지난해 12월 코닉테크가 기록했던 2238.63대 1을 경신한 사상최고 경쟁률이었다.MP3플레이어(MP3P) 업체로는 처음 코스닥에 입성한 거원시스템이 이처럼 높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 1995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을 정도로 경영에서 합격점을 받은 박남규(38) 사장이 있기에 가능했다. 소프트웨어 사업에서 하드웨어 사업으로, 최근에는 다시 무선인터넷 사업까지 IT시장의 트렌드에 발맞춰 끊임없이 회사를 변모시키는 그의 승부사적인 기질이 있기에 거원시스템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거원시스템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MP3P 사업이다. 이 회사 MP3P 사업은 올해 목표하고 있는 350억 원의 매출 중 250억 원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MP3P는 이 회사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았으나, 그 당시 소프트웨어 업체였던 거원시스템을 하드웨어 업체로 탈바꿈시킨다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았다."소프트웨어를 하던 업체가 갑자기 하드웨어를 한다고 하니 모두들 말리더군요. 내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