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태 디지털콘텐츠국 부장
![[현장칼럼] 독일이 돌아왔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503/2025032502102369607001[1].jpg "[현장칼럼] 독일이 돌아왔다")
부채 브레이크는 2009년 메르켈 정부가 도입한 재정 규칙이다. 독일 헌법에 명시된 이 규정은 연방정부의 구조적 예산 적자를 GDP의 0.35%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는 독일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였지만, 동시에 필요한 투자를 제한하는 걸림돌이 되어왔다.
부채 브레이크의 도입 배경에는 독일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자리잡고 있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1990년대 초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의 과도한 차입이 남긴 상처가 독일인들의 부채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다.
그랬던 독일이 도대체 왜 달라졌을까. 독일의 입장 변화가 주목되는 것은 단순한 재정정책 변경이 아니라, 국가전략의 근본적인 변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안보와 경제의 연계성 강화로 국가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를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역사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평가한다.
독일의 새로운 경제 정책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지난 주 상원에서 통과된 내용을 들여다 보면 놀랍다. 독일 연방의회는 인프라 투자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5000억 유로(약 792조원)의 특별기금을 조성한다. 또 GDP의 1%를 초과하는 국방비 지출은 '부채 브레이크'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향후 10년간 국방과 인프라 분야에 1조 유로(약 1583조원)의 재정이 투입될 전망이다. 독일 전후 최대 규모의 부양책이 가동되는 셈이다.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사회민주당(SPD)은 이같은 미래 독일의 청사진을 새로 그려냈다.
특히 독일은 국방비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풀었다. 지난해 국방비는 정규예산 520억 유로와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책정한 특별예산에서 사용한 198억 유로를 합해 718억 유로였다. 유럽 정치권 논의대로 국방비를 GDP 대비 3.5%까지 늘린다면 연간 1500억 유로 안팎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됐다.
역대급 돈풀기에 시장 반응도 뜨겁다. 독일 주요 기업들을 모아놓은 DAX 지수는 정책 발표 이후 연초 대비 14% 이상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방산기업 주가 급등은 눈부셨다. 독일 대표 방산기업인 라인메탈의 주가는 같은 기간 80% 이상 뛰었다.
안보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강력한 경제력 없이는 국가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 또한 안정적인 안보 환경이 없다면 경제 발전도 이루기 어렵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는 "우리는 최소 10년 동안 잘못된 안보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이들의 현실 인식이 잠자던 독일을 깨웠다.
독일의 역대급 부양책은 당장 국제 관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 내에서 목소리를 높여 더 큰 리더십을 행사할 전망이다. 게다가 미국의 나토 방위비 증액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미국과 동맹 관계 강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입지가 달라질 것이다. 이래저래 국제역학 관계를 염두에 둔 다각적 행보 전환인 셈이다.
다만 재정건전성이 문제다. 유럽경제연구센터(ZEW)는 독일 정부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현재 62%에서 빠르면 2034년 100%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와 안보의 균형점을 찾고,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결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시대, 우리의 생존 전략은 무엇이 돼야 할까.
김광태 디지털콘텐츠국 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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