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문학의 체온으로 세상 잇다… "생명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

입력: 2024-12-11 17:36 김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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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시상식서 검은색 드레스에 검정 파우치 들고 무대 올라
韓 문화계의 막강한 소프트파워를 입증하며 깊은 반향 일으켜

[오늘의 DT인] 문학의 체온으로 세상 잇다… "생명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인 최초로 '블루카펫' 밟은 소설가 한강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입니다."

소설가 한강(54·사진)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문학가 반열에 올랐다. 한국 문화계의 막강한 소프트파워를 입증하며 전세계에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시상식 이후 어두운 상황에서도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상계엄 사태와 맞물리며 지친 국민들의 마음에도 위안을 안겼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수상 소감 발표를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2024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 검은색 드레스에 검정 파우치를 들고 시상식에 오른 한강 작가가 1500여명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미복과 드레스 차림의 화려한 참가자들 사이에서 평소의 꾸밈없고 정갈한 차림새였다. 엘렌 맛손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은 "친애하는(Dear) 한강!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따뜻한 축하를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호명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다른 수상자들로부터 축하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강이 무대 한가운데로 향하자 장내 참석자들은 기립했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이 메달과 증서를 건네자 한강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국왕과 악수하자 우레같은 박수가 울렸다. 메달을 받은 직후 영국 여성 오보에 연주자 겸 작곡가 루스 깁스가 작곡한 '암바르발리아(Ambarvalia)'가 연주됐다.

한강은 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며, 문학상을 받는 것은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다. 한강은 이날 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행사장인 스톡홀름 콘서트홀의 '블루카펫'을 밟은 것도 한국인으로 한강이 처음이다.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시상식에 참석했다. 한강이 받은 메달은 앞면에는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얼굴이, 뒷면에는 한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학상 수상자의 증서는 다른 수상자들의 증서와는 달리 양피지로 제작됐다.

이날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서 5분 가량의 연설을 통해 한강의 작품들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메달과 증서를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돼 영광입니다." 시상식 이후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 열린 축하 연회에서는 또렷한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진행자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요청한 목소리다. 연단에 선 한강은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며 영어로 차분하게 4분 가량 수상 소감을 밝혔다. 어린 시절 비를 피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한 경험을 소개하며, 문학이 고통과 사랑,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와 나란히 비를 피하는 사람들과 길 건너편에서 비를 피하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나'로서 살고 있었다"며 "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수많은 1인칭 순간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한강이 글을 쓰는 원동력은 뭘까. 그는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다. 언어의 실타래를 따라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또 다른 사람의 내면을 만나는 일, 나의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타래에 매달아 다른 자아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다"고 전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난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등은 수천 년 동안 문학에서 제기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인간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장 어두운 밤에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는 언어가 있습니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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