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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친미·친중·중도` 3파전 대만 총통 선거, 누가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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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당 라이칭더, 행정원장 때 대만독립 공언
국민당 허우유이, 예비선거 없이 후보로 직행
대만민중당 주석 타이베이 시장 출신 커원저
현재 라이칭더와 허우유이 선두 다툼 백중세
2400만 대만국민들 美中 사이에서 선택 고민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친미·친중·중도` 3파전 대만 총통 선거, 누가 웃을까
미·중 대리전 성격이 된 대만 총통 선거가 3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부총통,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侯友宜) 신베이(新北) 시장,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전 타이베이(臺北) 시장이 각각 후보로 출마했다. 각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이번 선거가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란 것을 예고해준다. 세 명 중 과연 누가 웃을지 관심이 모아질 수 밖에 없다.

◇'반중·친미' 라이칭더

지난 11월 21일 민진당의 총통 후보 라이칭더는 수도 타이베이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총통 선거 후보 등록을 마쳤다. 가장 먼저 후보 등록을 한 것이다. 그는 차이잉원(蔡英文) 행정부의 2인자인 부총통으로 민진당 주석을 겸하고 있다.

라이칭더는 1960년 1월 지금의 신베이시(市) 완리(萬里)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라이칭더가 태어난 지 3개월 후 33세의 나이로 탄광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가 혼자서 6명의 자녀를 키웠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우 우수했다. 완리에서 처음으로 타이베이의 명문 학교인 젠궈(建國)중학에 입학한 수재였다. 국립 대만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 의사로 근무했다. 의사로 일하면서 정치인을 꿈꿨다. 민진당을 지원하는 전국의사후원회 회장을 맡으면서 정치판에 발을 내딛었다.

1998년 입법회 의원(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당시 야당이었던 민진당의 '젊은 희망'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2010년 민진당의 세력 기반인 남부 타이난(臺南) 시의 시장으로 선출됐다. 4년 후 전국 최고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2017년 9월 라이칭더는 차이 총통의 부름을 받아 행정원장(총리)으로 취임했다. 이때 그는 '대만 독립'을 공언했고 중국은 격렬히 비난했다. 2019년 6월 민진당 경선에 나섰으나 차이 총통에게 패해 후보가 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차이 총통과 사이가 벌어졌다. 차이 총통이 두 번째 임기에 들어서자 그는 몸을 바짝 낮췄다.

지난해 1월 치러진 통합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참패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왔다. 차이 총통은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 직에서 사퇴했다. 라이칭더는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 후 그는 민진당의 공식 총통 후보가 됐다.

◇중국 순종파' 허우유이

4년 전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중국은 쓰라린 맛을 봤다. 보다 꼼꼼한 방식의 '선거 개입' 전략이 필요했다. 중국이 주목한 핵심 인물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일정한 신뢰 관계를 맺고 있던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이었다. 지난 3월 말 마 전 총통은 중국의 초청을 받아 대륙으로 건너갔다. 명목상으로론 후난(湖南)성에 있는 조상 묘소 참배였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시 주석의 최측근이자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임인 쑹타오(宋濤)를 만나는 것이었다. 마-쑹 두 사람의 회의는 이틀에 걸쳐 열렸다. 우한(武漢)에서 창사(長沙)까지 가는 고속열차에도 동석해 논의를 계속했다. 2024년 1월 대만 총통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회의'를 가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안건은 대만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친중 국민당 후보를 선발하는 것이었다. 신베이 시장 허우유이가 낙점을 받았다.
허우유이는 1957년 6월 대만 남부 자이(嘉義)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전직 국민당 군인이었다. 국공내전 이후 대만으로 이주해 자이현에서 돼지고기 판매업에 종사했다. 자이는 중앙경찰대학을 나와 경찰 관료의 길을 걸었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2006년 49세의 나이로 경찰청장이 됐다. 대만 역사상 최연소 경찰청장이었다. 청장 재직 시절 경찰 내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 큰 성과를 냈다.

하지만 2008년 국민당 마잉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찰대 교장으로 좌천됐다. 민진당과 가까운 관료로 찍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허우유이를 구해 정계에 입문하게 한 사람은 당시 신베이 시장이었던 주리룬(朱立倫) 당 주석이다. 2010년 주리룬의 요청으로 그는 시의 부시장이 됐다. 그후 쭉 부시장을 역임하다가 마침내 2018년 신베이 시장으로 선출됐다.

2022년 압도적 표 차이로 신베이 시장에 재선됐다. 이후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부각됐다. 올해 5월 17일 국민당은 내부 예비선거를 실시하지 않고 허우유이를 공식 후보로 내세운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중국에게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중도 노선' 커원저

커원저는 1959년 8월 현재 하이테크 파크(반도체 산업의 클러스터)로 유명한 신주(新竹)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신주시에 있는 일본 회사의 고문이었다. 국립 대만대학 의과대학 출신으로 의사 면허 시험에 전국 수석으로 합격했다. 이후 국립 대만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외상, 응급처치, 장기이식 분야에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의과대학 내부의 혼란에 혐오감을 느낀 그는 2014년 무소속으로 돌연 타이베이 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거품 많은 후보로 여겨졌지만, 강렬한 개성과 신선한 이미지가 무당파층의 지지를 얻으면서 당선됐다. 국민당이 장악해왔던 타이베이 시장 자리를 빼앗으면서 그는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2018년 '박빙 승부'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2019년 8월 중도 성향 정당인 대만민중당을 창당해 스스로 주석이 됐다.

그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진당은 너무 미국 쪽에, 국민당은 너무 중국 쪽에 각각 기울어 있다면서 대만 독립 혹은 중국과의 통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만인을 더 잘 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세 사람 중 한 명은 내년 1월 13일 대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게될 것이다. 현재까진 민진당 라이칭더와 국민당 허우유이의 치열한 선두 다툼 속에서 민중당 커원저의 약진 여부가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과연 대만 민심은 누구에게 향할 것인가. 2400만 대만 국민들은 물론 미국과 중국도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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