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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칼럼] 신냉전 시대 동북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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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칼럼] 신냉전 시대 동북아 삼국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박 10일간의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지난 19일 저녁 평양으로 돌아갔다. 북한 언론들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사진 속의 김 위원장은 미소를 짓고 있다. 러시아 방문이 원하는대로 진행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번 방문에서 김 위원장은 4년 5개월 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극진히 대우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무기와 탄약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갈수록 고갈되고 있는 무기와 탄약을 북한으로부터 받기를 원한다. 두 번째는 한반도 상황을 뒤흔들겠다는 속내다. 군사기술 등을 북한에 지원함으로써 한반도 긴장감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쏠려있는 서방의 주의를 동북아로 분산시키려는 전략이 숨어있다.

극진한 대우 덕분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은 밀월을 과시했다. 양측의 '위험한 거래'는 현실화됐다는 관측이다. 두 나라가 다시 고도의 밀착에 돌입한 셈이다.

그동안 북러 관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러시아의 대북 관계는 사실상 '핵우산'을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돌이켜보면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부터 북한을 제대로 된 외교 파트너로 대하지 않았다.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3월 김일성 주석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에게 통일을 위해 전쟁을 벌이겠다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스탈린은 내키지 않았다. 독소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인명피해가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보다 미국의 개입을 우려한 탓이었다. 전쟁은 터졌고 지원군을 보낸 사람은 스탈린이 아닌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이었다.

냉전 시기 소련은 북한에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이어갔으나 냉전이 끝나면서 원조는 물론이고 군사동맹 관계도 종료됐다. 더욱이 1990년 소련은 한국과 국교를 맺었다. 북한에게는 배신행위였다. 러시아는 대북 제재에도 찬성했다. 러시아는 불필요하게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반대했다.

이를 보면 러시아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방과의 관계였다. 북한의 순위는 일관되게 낮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 받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계약결혼'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의 침묵이다. 시진핑(習近平) 정권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의미있는 발언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상황 파악에는 열심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러시아와 밀접해져 중국이 화를 낸다고 분석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북러가 손잡고 미국에 맞서는 모습이라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입장에선 손해는 없다. 미국 눈치 때문에 러시아 지원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러시아를 도와주는 것은 중국의 부담을 덜어주게 된다.

북한이 러시아와 가까워진다고 해서 북한이 중국과 척을 지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북한이 중국의 지원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중 관계에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결국 김정은의 다음 행보는 뻔하다. 북러 연대 블록을 강화했으니 이제는 북중 관계에 눈을 돌릴 것이다. 그가 푸틴에 이어 시 주석과도 회담할 경우 북중러의 결속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것이다.

이런 동향은 동북아 관계의 틀이 바뀌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일'과 '북·중'이 맞붙었다. 한국과 러시아는 다소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은 미일 동맹에 부쩍 가까워졌다. 지난 8월 한미일 정상들이 '캠프 데이비드 원칙'을 선언하면서 한국의 노선은 명확해졌다. 한미일 VS 북중러 대결구도가 한층 선명해진 것이다. 삼국과 삼국이 대치하는 새로운 냉전사가 본격적으로 쓰여질 조짐이다.

중국 고전 역사소설 '삼국지'의 첫 대목이 떠오른다. "무릇 천하의 대세란 오래 나뉘면 반드시 합하게 되고(分久必合), 오래 합쳐져 있으면 반드시 나뉘게 된다(合久必分)." 천하 대세의 큰 흐름을 압축해 설명하고 있다.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는 과정에선 무수한 변화와 고통이 따른다. 보아하니 동북아 지역에 평화로울 날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서로 '편'을 짜서 대립하는 구도에서 한국이 희생양이 될까 두렵다. 시대의 흐름에 잘 대처하는 선택과 결단이 한국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길이 보인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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