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이규화의 지리각각] 케네디家 신화, 국민 배반 정치 바꿀 수 있을까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바이든 대 트럼프 구도, 끝까지 갈까
가문의 후광 케네디 주니어 다크호스
첫 일성이 '워싱턴 딥스테이트 척결'
세계를 장기판 여기는 글로벌리스트
케네디의 프런티어정신 재장전 주목
[이규화의 지리각각] 케네디家 신화, 국민 배반 정치 바꿀 수 있을까


2024년 미국 대선이 81세 노인(민주당 조 바이든) 대 78세 노인(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결로 압축되는 듯하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 이후 248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노익장 할거(割去) 시대를 맞고 있다. 미 국민들은 이대로 본선을 치를 것인가.

구도를 깨는 변수가 생긴다면 공화당 쪽보다 민주당 쪽에서 나올 공산이 크다. 공화당 트럼프 전 대통령에 도전하는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지율이 하향세다. 더블스코어 격차를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젊은 나이와 명문대 문패에도 불구하고 지력이 트럼프보다 떨어진다는 지적까지 받는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임은 확정적이다. 변수가 생긴다면 민주당 쪽이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연방 상원의원이자 1968년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했던 민주당 대선 후보 고(故)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로 환경전문 변호사이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출신이다. 그가 지난 달 가문과 인연이 깊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2024년 민주당 후보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물론 그의 지지율은 아직 저조하다. 지난달 말 폭스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경선 유권자 지지율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62%, 케네디 주니어는 19%였다. 격차가 컸지만 2위라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선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강·약점 다 갖고 있는 케네디 주니어

케네디 주니어의 최대 강점은 당연히 그의 출신 성분이다. 귀족이 없는 미국사회에서 케네디가(家)는 미국 최고의 정치명가요 '귀족'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지금도 다수 미국 사람들은 "케네디"하면 가슴속 무언가 울렁이는 느낌을 받는다. 가문의 역사에 점철된 영광과 비극의 대비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세대에서만 한 명의 대통령(큰아버지 존 F. 케네디)과 대통령이 될 뻔한 상원의원(아버지 로버트 케네디), 만년 대통령 후보감이었던 또 한 명의 상원의원(삼촌 에드워드 케네디)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 이면에 비극이 따랐다. 주지하다시피 큰 아버지와 아버지가 피살되고 삼촌은 동승했던 비서가 사망하는 의문의 교통사고가 대통령이 되는 데에 평생의 발목이 됐다.

이밖에 형용할 수 없는 그밖의 선대 및 형제 사촌들의 잇따른 사고와 죽음은 '케네디가의 저주'라 불리며 동정의 대상이 되어왔다. 따라서 케네디 주니어는 이름만으로도 남들이 갖지 못한 프리미엄을 갖는다.

그러나 '케네디'라는 브랜드가 만사형통 마패는 아니다. CNN이 케네디 주니어의 출마 선언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의 말을 전했는데, 그 의미가 함축돼 있다. "케네디라는 이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점에서 그는 미국 대다수 사람들에게 결정적 약점으로 작용할 요인을 안고 있다. 그가 백신반대론자라는 점이다. 그는 코로나19 백신접종을 열렬히 반대해왔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의 백신회의론은 코로나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부터 가진 개인적 신념이다. 땅콩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아들 때문에 그는 일찍부터 백신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그의 백신 반대운동은 그의 형, 누나, 조카 등 가족들로부터도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선거캠페인에서 집안의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오히려 그의 집안의 일부 가족들은 공개적으로 바이든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전면 물갈이 필요한 미국 정치판

그럼에도 케네디 주니어는 일단 슬로건은 잘 잡았다. 그는 '민주주의 복원'을 약속했다. 그의 일성은 워싱턴의 딥스테이트를 척결한다는 것이었다. 딥스테이트란 미국 국민의 이익보다 조직의 이익과 존립을 위해 일하는 워싱턴DC의 노회한 정치인들, CIA, 국무부, 법무부, FBI처럼 힘이 막강한 정보 및 외교부처 고위관료들, 군산복합체, 월가, 빅테크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케네디 주니어는 "향후 18개월 동안 나의 임무는 지금 미국을 위협하고 있는 국가와 기업권력의 부패 고리를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드러난 공약의 일단을 보면 케네디 주니어의 노선은 차별철폐 집중, 보건·복지확대, 환경보호 역점 등 민주당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 바이든 정부와는 다른 색채를 띤다. 그가 군사적 개입주의 반대와 군산복합체 규제를 강조한 것은 현재 바이든 정부가 올인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쟁 지원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가 국가권력과 기업의 유착을 끊겠다는 것은 미국 정부가 미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미국 국민이 바라고 그들을 위하는 일이 아닌, 월가와 방위산업체, 팜테크(Pharm Tech), 빅테크의 이익에 봉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들은 세계를 자신의 영구적 장기판으로 만들기 위한 글로벌리즘을 추구하고 있다. 그 역할을 해온 것이 딥스테이트이다. 이들의 최대 패착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고 미국을 제조업의 폐허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 작업은 빌 클린턴의 199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본격 결과가 드러난 시기는 2000년대 부시와 오바마 정권 때다. 오늘날 미국이 공급망을 재편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지도록 만든 데는 좌파 민주당, 우파 공화당 공히 책임을 면키 어렵다.

케네디 주니어는 그런 점에서 정파를 떠나 '미국을 다시 미국답게' 만드는 '영광된 고립주의'와 '절제된 개입주의'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는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마가(MAGA)'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만약 케네디 주니어가 본선에 진출한다면 트럼프와 '미국의 복귀'를 놓고 한판 재밌는 판이 벌어질 것이다.

◇케네디 정신, 재현될 수 있는가

케네디 주니어가 재현코자 하는 것은 선친과 백부의 참신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고 도전적인 정치다. 존 F. 케네디의 리더십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대담한 비전과 야심찬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선견지명 능력이 따라줘야 한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1969년 7월에 실현된다.

둘째, 낙천주의다. 전후 미국은 공전의 경제성장을 시현한 한편에선 과학기술 면에서 소련에 뒤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냉전이 절정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 국민들은 불안했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은 할 수 있다는 활력과 열정을 불어넣었다. '뉴 프런티어' 정신이다.

셋째, 시민적 권리와 의무의 확립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공공 인프라와 서비스에 대대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신장하는 동시에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기여와 의무를 강조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라는 말은 좌파적 인식이 배어있는 개인과 국가간 관계를 말한 것이라고 비판받긴 하지만 국민의 독립성을 강조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넷째, 존중받고 존중하는 외교다. 케네디 대통령은 국제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는 데에 외교를 집중했다. 국제관계에서 '주권의 윤리적 행사' 곧 힘의 투사에서 정당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의 양보를 이끌어낸 이면에는 이 같은 중용적 패권 행사가 영향을 미쳤다. 1961년 평화봉사단을 설립해 세계 각국에 교육, 문화예술, 보건 분야의 청년 봉사단을 파견한 것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케네디 시대는 2년 10개월로 짧았으나 미국이 낙관주의에 입각한 희망과 연대, 헌신, 봉사, 진보라는 가치를 드높였던 섬광의 시기였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그때를 그리워한다. 오늘날 근본을 알 수 없는 PC주의, 계층 양극화, 도덕 상대주의, 심화하는 젠더 문란을 대하며 국가의 쇠락에 한숨짓는 것은 당연하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를 치유·교정·인도해야 할 워싱턴 정치는 딥스테이트에 장악돼 있다. 국민의 기성정치에 대한 혐오는 극에 달했다. 2021년 1월 워싱턴 의사당 난입 사태에서 보듯 기성정치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전후 자유와 민주주의의 횃불이었고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미국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리더십의 쇠퇴에 직면해 있다. 선과악의 싸움도 아니고 미국 국민의 이익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크라이나전쟁을 자극하고 '몰빵'하는 것은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신뢰를 잃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런 혼란기에 과연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케네디가의 신화를 업고 기성정치를 갈아엎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단 그의 등장으로 '케네디'를 불러낸 것만으로도 소득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