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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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우체통이 버스 정류장 되는 풍경

    우체통이 버스 정류장 되는 풍경

    일본에서는 가끔 ‘왜 이제야 생각했을까’ 싶은 일이 벌어진다. 편의점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고, 철도회사가 호텔과 백화점을 운영하며, 서점에서는 기능성 의류가 베스트셀러가 된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영역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일본 사회를 오래 관찰하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보인다. 무언가가 부족해졌을 때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이미 있는 것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데 능하다는 점이다. 최근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실험도 그런 사례다. “버스가 줄어든다면 우편배달 차량 조수석에 태워주면 되지 않을까?” 농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日 최남단 섬들에서 들리는 배경음악, 왜 비슷할까

    日 최남단 섬들에서 들리는 배경음악, 왜 비슷할까

    최근 일본 최남단 이시가키섬과 다케토미섬을 방문했는데 끊임없이 들었던 ‘한 가지 소리’가 흥미로웠다. 호텔 라운지와 카페, 기념품점에 이르기까지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끔찍하게 반복되던 류큐(오키나와 지역의 옛이름) 전통 음악. 표면적으로는 지역 정체성을 강조하는 연출이었지만, 그 밀도가 지나치게 균질하다는 점이 의문이었다. 특히 렌터카 회사 직원이 던진 “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라는 말은 이 현상을 단순한 취향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지역 언론을 살펴봤다. 류큐신보와 오키나와타임스 등은 관광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여성의 생활 보조하는 남성 ‘히모’

    여성의 생활 보조하는 남성 ‘히모’

    “직업이 히모입니다.” 최근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터뷰 기사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이 대답은 가볍게 웃고 넘기기 어렵다. 히모는 원래 ‘끈’을 뜻하지만, 오래전부터 속어로는 여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남성을 지칭해 왔다. 우리말로 굳이 한다면 ‘머슴’이랄까? 과거의 히모는 대체로 무책임과 기생의 이미지, 즉 사회적 실패자의 상징에 가까웠다. 그런 단어가 다시 호출되고 있다. 새 로운 현상이 등장했다기보다, 기존에 존재하던 관계를 설명하는 언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일부 남성들이 스스로를 히모라고 명명하고, 미디어 역시 이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일본 청년들이 말하는 ‘로가이’(老害)

    일본 청년들이 말하는 ‘로가이’(老害)

    일본 젊은 세대가 온라인에서 자주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로가이’(老害)다. 직역하면 ‘노인으로 인한 폐해’.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세대 비하라기보다 오늘날 일본 사회의 구조적 답답함이 응축된 신호에 가깝다. 몇 해 전 도쿄의 한 스타트업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전체 직원이 원격 협업 툴로 일하는 회사였는데, 새로 영입된 외부 고문이 첫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요한 보고는 출력해서 도장 찍어 가져오세요.” 사무실에 프린터도, 도장도 없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래서 요즘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매대 위의 K-기술, 일본 유통을 바꾸다

    매대 위의 K-기술, 일본 유통을 바꾸다

    도쿄 외곽의 한 대형 식료품점. 채소 코너 매대 위에는 손바닥만한 전자 화면이 줄지어 붙어 있다. 오전 11시가 되자 딸기 가격이 동시에 내려간다. 직원이 사다리를 들고 가격표를 갈아 끼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본사에서 설정한 ‘오전 한정 신선식품 타임세일’이 매장 전체에 한 번에 적용된 것이다. 겉으로는 작은 화면이 바뀌었을 뿐이지만, 매장은 이미 데이터로 움직이고 있다. 이 조용한 변화의 중심에 ESL(Electronic Shelf Label, 전자가격표시기)이 있다. ESL은 단순한 전자 가격표가 아니다. 매대와 본사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카츠(活)’, 일본 움직이는 행동의 경제

    ‘카츠(活)’, 일본 움직이는 행동의 경제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묘한 단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행동이든 끝에 ‘카츠’(活)를 붙인다. 취업 준비는 취활(就活), 결혼 준비는 혼활(婚活),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활동은 종활(終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접미사가 이제 더 이상 인생의 중대 이벤트에만 붙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즘 일본 사회에서는 정말 사소한 행동까지 ‘활동’으로 승격되며 하나의 트렌드로 소비된다. 가장 대중적인 사례는 ‘포이카츠’다. 포인트(point)를 모으는 활동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이미 일본인의 일상 언어가 됐다. 신용카드 결제, QR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생활 빈틈 메우는 ‘특화형 구독’

    생활 빈틈 메우는 ‘특화형 구독’

    “월 590엔으로 집 안 걱정이 사라진다.” 올해 일본의 ‘구독 비즈니스 대상 2025’의 그랑프리를 차지한 서비스는 의외로 기술도 첨단 알고리즘도 아니었다. 바로 ㈜홈서브가 제공하는 ‘구독형 집수리 서비스’다. 전기·수도·가스 등 생활 인프라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기술자가 즉시 출동하는 이 서비스는 이미 32만명이 가입했다. 일본인이 일상의 ‘불편’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려 하는지 단번에 읽히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수상작들이 공통적으로 ‘정서적 안전’과 ‘생활 속 긴장 완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둔다는 것이다. 은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드라이아이스 품귀, 환경 보호의 역설

    드라이아이스 품귀, 환경 보호의 역설

    “지구를 위해 옳은 일을 했더니 생활 속의 작은 편의가 사라졌다.” 최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드라이아이스 부족 사태’를 둘러싸고 다소 의미심장한 푸념처럼 들려오는 이야기다. 환경을 위해 열성을 쏟았지만 선의가 어떻게 새로운 불편을 낳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드라이아이스는 그 자체가 이산화탄소(CO2)의 결정체다. 석유 정제나 비료공장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CO2를 냉각·고체화해 만든 일종의 재활용품이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일본의 화학공장들은 환경규제 강화와 인건비 상승, ESG 압박을 피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노벨상式 통찰, 물이 공기를 정화한다

    노벨상式 통찰, 물이 공기를 정화한다

    올해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 무려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면역학 분야의 사카구치 시몬 교수가 생리의학상을, 기타가와 스스무 교수가 화학상을 수상했다. 두 연구는 분야도 규모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계산보다 우연과 관찰이 낳은 통찰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작은 다름을 놓치지 않은 눈, 반복 실험 끝에 ‘예상 밖의 현상’을 새로운 원리로 바꾼 집요함이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일본 사회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우연의 발명’ 역시 이 노벨상과 닮아 있다. 수도물로 바이러스를 없애는 세계 최

  • [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출판사가 만든 의류, 서점서 팔리다

    출판사가 만든 의류, 서점서 팔리다

    출판 불황이 일상이 된 일본에서, 책을 파는 서점 안에 ‘피로 회복 의류’가 걸려 있다면 어떤 풍경일까?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일본 서점에서는 이미 익숙한 장면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출판사 타카라지마사(寶島社)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회사 이름은 ‘보물섬’(寶島)이다. 1971년 지도 제작사로 출발한 이 회사는, 1974년 ‘보물섬’(寶島) 복간을 시작으로 출판 무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청년 세대의 언어를 대변한 이 잡지는 서브컬처와 사회 비판을 담아내며 시대를 사로잡았다. 이어 80~90년대에는 ‘Cutie’, ‘別冊寶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