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과기정통부가 2026년을 지식 창출과 인력 양성을 추구하는 기초연구의 `질적 고도화`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다양성 기반의 수월성`이라는 기묘한 목표가 핵심이다. 소규모 과제와 대규모 과제의 배분에 하후상박(下厚上薄)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보편성을 추구하는 교육부와의 역할 분담도 강조한다.물론 새로 출범한 국민주권정부가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한 과기정통부의 질적 고도화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인공지능(AI) 3대 강국` 등 요란한 대선 공약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면 기초연구 정책도 덩달아 요동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인공지능 쓰나미가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초연구 사업이 연구 논문이나 인력 배출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과기정통부도 인정한다. 실제로 SCI 논문은 2022년 3만9927편으로 3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어났고, 같은 기간 석·박사 인력 배출도 78%나 증가했다. SCI 논문의 질적 수준도 올라갔고, 창업을 통한 경제·사회적 부가가치 창출도 늘어났다. 과기정통부가 지원
2025-06-12 17:39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의과대학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는 교육부의 유급·제적 경고에도 의대생들은 요지부동이다. 작년과 같은 학사 유연화는 기대하지 말라는 교육부의 엄포도 마이동풍이다. 지난달 교육부의 전격적인 입학정원 동결 발표 덕분에 마지못해 등록·복학에 응한 의대생 1만9475명 중에서 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최대 34.4%인 6708명뿐이다. 절대 다수의 의대생이 유급·제적 처분의 대상이 되고 있고, 이를 보면 내년 의대의 `트리플링`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교육부가 마지막 카드로 `의대 편입`을 꺼내 들었다. 계속되는 수업 거부로 무더기 제적 사태가 벌어지면 결손 인원을 모두 편입학으로 채워버리겠다는 것이다. 제적 처분을 받게 될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 버리겠다는 무서운 경고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의사의 양성을 위해서 의대생에게는 `휴학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작년의 교육부 입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억지`다.교육부가 이번에도 대학 총장들의 `요청`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있다. 총장들이 의정 갈등으로 발생한 특수성을 고려해서 편
2025-05-12 18:05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인천 청라아파트의 전기차와 에어부산 기내 선반의 보조배터리에 이어서 이번에는 강진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끔찍한 화재가 발생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3850개가 소실되면서 10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31대의 소방차를 몰고 출동한 123명의 소방관이 열폭주가 시작된 화재 현장을 10시간동안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탈원전·친환경을 핑계로 태양광·풍력 설치를 서둘렀던 정부가 이제는 ESS에 올인하고 있다. 1조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해 호남·제주에 540MW 규모의 ESS를 설치한다. 이미 2023년에는 제주의 65MW ESS에 20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한전도 2024년에 계통안정화를 위한 ESS에 8300억원을 투자했다. ESS가 `물먹는 하마`가 돼버린 셈이다.그런데 ESS는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전력을 생산하는 시설이 아니다. 오히려 친환경을 강조하던 태양광·풍력 설비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시설이다. ESS는 태양광 사업자가 부담해야 하는 `출력제한`의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역할도 한다. ESS의 열폭주가 낯선 일은 아니다. 2019년에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재 때문에 E
2025-04-07 08:19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가 드디어 학교 현장에 투입된다. 디지털 교과서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학생의 학업 능력을 다면적으로 파악해서 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사실은 저마다 개별적으로 특화된 서로 다른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교실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학생의 능력 차이를 무시하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획일적인 집단교육의 시대는 끝난다. 학업 성과가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더 큰 학습 효과가 나타나는 기적이 펼쳐진다. 이제 수포자·영포자·과포자는 사라질 것이다. 노동경제학자에서 최고의 교육행정 전문가로 변신한 이주호 장관이 디지털 경제학을 전공한 딸과 함께 직접 확인한 `명백한 교육학적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AI 디지털 교과서의 출발이 몹시 불안하다. 이미 새 학기가 시작했는데 교실에서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찾아볼 수 없다. 학생용 단말기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청이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
2025-03-06 18:19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화성 아리셀 공장과 인천 청라 아파트 전기차 화재를 일으켰던 리튬 배터리가 또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번에는 김해공항에서 이륙을 기다리던 홍콩행 에어부산 항공기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다. 기내 선반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찔했던 화재 사고에 놀란 국토교통부가 뒤늦게 `리튬 이온 배터리` 운송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휴대폰·노트북·태블릿·전자담배와 같은 전자제품에 사용하는 유용하고 편리한 리튬 이온 배터리가 항공사에게는 골칫거리가 돼버렸다. 2020년부터 작년 8월까지 국내 항공사의 기내에서 리튬 이온 배터리 때문에 발생한 화재가 13건이나 된다. 10개 국적 항공사 중 8개 항공사가 배터리 화재 사고를 경험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도 골치를 앓고 있다. 2020년 39건이었던 배터리 화재가 5년 사이에 78건으로 증가했다.항공기가 화재에 특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리튬 이온 배터리에 대한 특단의 대책은 꼭 필요한 것이다. 승객도 안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
2025-02-03 18:00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미래형 청정연료라고 믿었던 `수소`가 갑자기 터지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청주의 수소 충전소에서 수소 버스가 폭발해 3명이 다쳤고, 나흘 뒤인 27일에는 부산 도심의 수소 충전소 배관실에서 누출된 수소 때문에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우연한 사고라고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자칫 끔찍한 재앙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사고였다. 수소차와 수소 충전소가 늘어나면 폭발·화재 사고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소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기체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무책임하고 황당한 억지다. 누출된 수소가 공기와 섞이기만 하면 폭발·화재가 쉽게 발생한다는 것이 과학적 진실이다. 수소차가 보급된 지난 6년동안 심각한 폭발·화재 사고가 없었던 것은 행운이었을 뿐이다. 수소에 의한 화재는 독특하다. 수소는 공기 중에서 순간적·폭발적으로 타버린다. 화염이나 연기는 발생하지 않고, 폭발에 의한 2차 화재의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런데 공기보다 더 빨리 퍼지는 수소의 특성 때문에 엄청난 `충격파`(shock wave)가 발생한다. 초음속 전투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2024-12-30 18:28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받은 `일반의`가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진 `전문의`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고강도 `수련`을 받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가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으로 전국 221개 수련병원에서 수련받는 전공의는 정원 1만463명의 10.3%에 지나지 않는 1073명뿐이다. 벌써 47개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중을 40%에서 20%로 낮추겠다는 보건복지부 목표치를 훌쩍 넘어서 버린 것이다.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으로 수련병원을 떠났던 사직 전공의 9198명 중 절반이 넘는 4640명이 의료기관에서 다시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 아니다. 사직했던 전공의가 수련병원의 `수련 과정`으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의 비현실적이고 폭압적인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서 `사직`했던 전공의가 속속 재취업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비정상을 주목해야 한다.실제로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일반의`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현재 `일반의`의 수는 2분기 6624명에서 3분기 9471명
2024-11-28 18:13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정부가 작년 11월에 이어 다시 전기요금을 평균 9.7% 인상했다. 상반기까지 41조원의 누적 적자와 203조원의 부채를 끌어안게 된 한전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런데 한 해 약 4조6000억원의 추가 수익은 한전의 이자 비용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6차례나 반복한 찔끔 인상으로는 한전의 경영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결국 정부는 내년에도 불가피하게 전기요금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실토했다.산업용 전기요금만 6.9% 인상했던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전력 사용량이 53.2%에 달하는 산업용만 올리기로 결정했다. 가정용·일반용·농사용은 이번에도 역시 동결했다. 서민 경제에 미치는 부담 때문이라는 변명은 핑계일 뿐이다. 사실은 정부가 국민을 설득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번 인상으로 지난 정부에서 kWh당 105.5원이었던 산업용 전기요금은 최대 181.8원으로 무려 72.3%나 올랐다. 가정용 인상률 37.2%의 2배에 가까운 폭탄급 수준이다.특히 많은 양의 전기를 사용하는 대기업·중견기업에 적용되는 `산업용(을)`은 kWh당 16.9원(10.2%)을 올리고, 경기침
2024-10-28 18:15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내년부터 교육 현장에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가 등장한다. 국가 교육 수준에서는 `세계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맞춤형` 지식 교육을 전담하는 AI 디지털교과서가 교실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야단법석이다. 현장의 교육 격차를 확실하게 해소하고, 수포자·영포자까지 포용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교육은 제쳐두고 오로지 겉으로만 화려한 디지털 전환만 강조하는 교육부와 일부 교육학자들의 어설픈 주장이다.정작 AI 교과서를 활용해야 하는 교사의 인식은 정반대다. 지난 7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교사가 73.6%나 된다. 찬성하는 교사는 12.1%뿐이다. `학습 효과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학생들의 `디지털 중독`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학부모 역시 디지털 중독에 의한 문해력 저하를 걱정한다. 지난 6월 27일 마감한 국회의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에 동의한 국민도 5만6505명이나 된다.디지털교과서가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이미 2015년에 일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2024-09-19 18:00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보건복지부가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중증 환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평균 40%를 웃도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의 의존도를 낮추고, 중증 환자 중심의 `3차 의료기관`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 과정을 마쳐야만 환자의 진료 권한을 부여하는 `개원면허제`도 고려하고 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법과 제도를 통째로 무시했던 의대 증원의 후유증에 허덕이고 있는 국민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꼼수다.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은 정부가 1990년대에 무분별하게 의대를 증설하면서 시작된 고질적인 비정상이다. 의대 정원을 확대한 정부가 `전문의` 양성에 필요한 `수련병원`의 확충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의사 양성 체계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무지가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뒤늦게 수련병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도 있었다. 2000년대 초의 의대 정원 351명 감축이 사실 지나치게 높아진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시도였다. 2013년에는 인턴의 정원을 한꺼번에 358
2024-08-12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