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칼럼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옛말에 식자우환이라고 했던가.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걱정이 많은 법이다. 지식인일수록 세상을 비관적으로 본다. 내로라하는 지식인이나 석학 가운데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심리학적 표현으로 `부정성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주변을 둘러보면 적지 않은 지식인이 끊임없이 암울하고 답답한 미래를 우리에게 주입한다. 어느 순간 뭇사람까지 비관론자로 물들게 한다. 물론 모든 지식인이 비관론자라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비관론자의 말이 겉으로 보면 꽤 그럴듯해 보인다는 점이다. 때로는 논리적이고 정치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누구든지 쉽게 걸려든다. 세상은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비관론자는 긍정적인 요인보다 부정적인 요인에만 초점을 맞춘다. 경제의 역동성을 무시한다. 비관론자들의 예상대로 움직였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수십 번 망했을 것이다. 비관론자의 논리도 수긍이 갈 때도 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맞지만, 전체적으로 틀린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부정적인 변수를 과다 계상하면서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가령 가계부채가 많아
2025-06-16 18:20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국내외 여러 지표를 보면 한국의 주택시장은 대체로 안정된 국가로 분류된다. KB부동산시세에 따르면 지난해말 전국 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중간 수준인 3분위를 기준으로 4.6이다. 중산층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4.6년을 모아야 중간가격 수준의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도시와 인간 정주 분야를 관장하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해비타트가 권고한 적정 PIR 3~5배를 크게 넘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길을 가는 사람 누구한테 물어봐도 우리나라 집값이 안정돼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집값이 너무 올라 언제 월급을 모아 집을 사겠냐는 푸념을 듣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괴리는 집값을 가늠하는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앞서 언급한 KB 지표는 전국 주택가격이 기준이다. 전국 주택가격은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등이 포함된 개념이다. 강남 아파트값이 아무리 많이 올라도 지방 집값이 내려가거나 정체되어 있으면 평균 가격은 제자리 걸음을 한다.하지만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강남 아파트값이 많이 올랐다는 소식을 귀가 따갑도록
2025-05-01 18:56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과거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가진 자, 못 가진 자, 그리고 요트 주인이 있다고 하죠."영국 사회의 초양극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더니 한 분석가는 현대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때 요트 주인은 슈퍼리치, 즉 상상을 초월하는 갑부다. 말하자면 과거에는 빈자와 부자가 있었다면, 요즘은 또 하나의 그룹인 슈퍼리치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슈퍼리치가 승자독식으로 부를 독점하니 부의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 분석가는 "21세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요즘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진 점이 부의 초양극화다. 사회의 버팀목이었던 중산층이 사라지면서 중간지대도 없어진다. 이를 `모래시계 현상`이라고 부른다. 마치 모래가 위에 있거나 아래로 다 내려가, 가운데는 뻥 뚫린 모양새다. 양극단 사회의 단면이다. 이런 부의 쏠림현상은 국가뿐만 아니라 산업과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시장도 `극과 극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동산은 어찌 보면 그 경제나 사회를 투영하는 또다른 거울이니까. 최근 서울 반포동 국
2025-03-31 18:19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사람의 주거 공간에 대한 욕망은 세월을 함께 보낸 세대의 특성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편의를 추구하는 시대, 주택 시장에서 아파트 쏠림현상은 쉽게 사라지 않을 것 같다. 요즘 2030세대인 MZ 세대, 이보다 더 어린 1020세대인 `잘파` 세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주거 트렌드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포착된다. 아래 세가지 에피소드를 읽어보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아파트 문화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1. 대기업에서 30년동안 근무하다 퇴직한 60대 A 씨는 경기도 양평에서 살기 위해 전원주택 전셋집을 구하러 다녔다. 전원주택에 살고 싶었지만, 나중에 팔기 어렵다고 하니 굳이 구매하고 싶지는 않고 대신 전세살이를 선택한 것이다. 며칠간 물색 끝에 마음에 드는 전세 매물이 나왔다. 그런데 계약을 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에 나타난 집주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이른 나이에 전원주택을 짓느라 고생했다고 덕담을 했더니 답은 의외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힘들여 지으신 집이에요. 팔고 싶지 않아서 전세를 놓는 겁니다." 젊은 집주인은 양평 읍내 아파트 전세로 살
2025-02-27 18:15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 할수록 시장의 힘이 세진다. 돈이 많이 풀려 시장은 한마디로 `슈퍼 파워`가 된다. 시장의 힘이 세졌다는 것은 그만큼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 그 자체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고 변덕을 부릴 수 있다.시장의 힘이 세어진 만큼 정부의 정책 수립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정부의 힘도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기 때문이다.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던 개발도상국 시절 정부의 힘과 인공지능(AI) 시대 정부의 힘을 같이 비교하면 안된다. 정부가 나서 공룡처럼 너무 커버린 시장을 직접 통제하긴 어렵다. 잠시라면 모를까, 장기간은 그 효과가 이어지지 않는다. 단기적으로 정부가 시장을 이기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정부를 이긴다. 요즘은 스마트폰 보급에 따른 정보의 민주화로 시장 그 자체가 `고지능 집단`이 되면서 통제하려고 해도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가격과 거래량의 변동 폭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대로 놔두면 10% 변동률이 나타날 수 있는데 정부의 개입
2025-01-23 10:36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상류 사회의 위선과 욕망을 그린 영화 `상류사회`(2018)에서 주인공 박해일은 갑자기 "건물주는 다들 나쁜 놈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건물주를 감싸는 듯한 그의 말에 다들 놀란다. `젠트리피케이션, 해결책은 있는가?`라는 주제의 영화 속 TV 토론에 참석한 그가 갑자기 돌출 발언을 한 것이다. 박해일은 사회자로부터 최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임대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오르는데 이를 해결할 실질적인 대안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박해일은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임대료 통제 카드`를 거부한다. 그는 세입자는 임대료를 당연히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올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며, 임대료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편 토론자(정치인)는 박해일에게 "눈물로 쫓겨나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비장하게 토론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박해일도 가만있지 않고 재반박에 나선다. "세입자도 시민이고 건물주도 시민이다. 돈이 좀 더 있고 덜 있고 차이일 뿐 모두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다. 공존과
2024-12-23 18:16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가끔 마라톤 선수가 달리는 도중에 넘어지는 경우를 본다. 과연 다른 선수가 다리를 걸어서 넘어지는 걸까, 아니면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걸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후자가 더 많을 것 같다. 정치인, 연예인 같은 유명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추락하는 보도가 잇따른다. 다른 사람들이 유명 인사의 비리를 폭로하기보다는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다. 도박이나 대마초에 한 번 손을 댔다가 재기 불능 상태가 되는 것은 비근한 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순식간에 무너진다. 주식을 거래할 때 주문 가격과 거래량을 잘못 입력해 손실을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온라인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25년 주식 베테랑 김순환(가명·54) 씨는 황당했던 과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사려는 회사의 주가가 갑자기 올라가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제가 주문 가격과 거래량을 뒤바꿔 입력한 겁니다." 그날은 1만주를 9500원에 매수 주문을 내야 하는데, 9500주를 1만원에 사는 것으로 잘못 입력했다. 이 바람에 주가가
2024-11-18 10:49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누구나 유행가 한 구절처럼 도시의 답답한 콘크리트 공간을 벗어나 멋진 곳에서 살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성냥갑 아파트보다는 좀 더 개성 있는 나만의 집을 갖고 싶을 것이다. 은퇴 시점이 다가올수록 긴장된 도시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전원의 삶을 누리는 `공간 이동`을 꿈꾼다. 일부 용기 있는 사람들은 `언덕 위의 하얀 집` 꿈을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대부분은 체념한 채 도시 아파트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산다. 은퇴자들은 조용한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으로 이주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한 연구 조사 결과를 보면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 은퇴자들(48%)이 가장 많고,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길 때 고르는 주택 유형도 주로 아파트다. 아파트 살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내의 반대가 큰 요인이다. 전원주택 살이는 주부의 동선이 짧아지는 주거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에서 살면 쇼핑도 너무 힘든 데다 수다를 떨 이웃이 없어 여성들이 꺼린다. 사실 전원주택
2024-10-17 18:15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평소 잘 알고 지내는 A씨가 서울 강남권에 사옥을 짓더니 최근 완공했다. 연면적 264.46㎡(80평)의 미니 빌딩이다. 공사비가 얼마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12억원이라고 했다. 3.3㎡(평)당으로 따져보니 1500만원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랬더니 모퉁이가 경사진 땅이라 공사하는데 비용이 좀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비싸다. 요새 원자재값이나 인건비 급등으로 건축비가 껑충 뛰었다. 5~6년 사이 곱절 이상 오른 것이다.한 건축가는 도심에 오피스텔을 지으려고 해도 평당 1200만원은 줘야 한다고 했다. 이제 서울에선 아파트 공사비가 평당 1000만에 육박하는 곳이 생겨났다. 또 다른 지인 B씨의 얘기다. 그는 은퇴 이후 거주할 생각으로 10년 전 강원도에 단독주택을 지었다. 당시 평당 가격은 350만원. 그런데 최근 대출받을 일이 생겨 감정평가를 받아보니 450만원이 나왔다. 그는 단독주택도 지으려면 평당 700만원 가량 소요되다 보니 감가상각을 무시하고 이런 감정평가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건축비가 많이 오르다 보니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
2024-09-05 18:14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이 세상 인간만사는 칡넝쿨처럼 얼기설기 서로 엉켜 있는 법이다. 상호 간에 끊임없는 되먹임을 통해 정보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상은 일방보다는 쌍방이다. 이런 현상은 양자물리학의 `양자 얽힘`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초미세 영역에서 양자 얽힘은 고전 물리학에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얽힌 상태의 입자들은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것처럼 즉각적으로 움직인다. 서로 보이지는 않지만 독립적이지 않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양자 얽힘은 음택풍수(陰宅風水)에서 동기감응(同氣感應)과 비슷하다. 조상을 명당에 모시면 조상과 유전자가 같은 후손들이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얼핏 이해되지 않지만 양자 역학의 눈으로 바라보면 동기감응도 전혀 엉뚱한 얘기는 아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을 초연결사회라고 한다. 일상생활에 정보혁명 기술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모든 사물이 거미줄처럼 인간과 연결된 사회가 되었다.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의 진화로 사람과 사물의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이어진 사회라는 얘기
2024-08-01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