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총 56건-
비에 허리가 확 꺾인 백합 한 송이를 잘라 화병에 두었다. 밤사이 향이 진동하더니만, 결국 개미 떼가 모여들었다. 달큰한 향이 먹이인 줄 알고 온 모양이다. 틈이라곤 없었는데, 어디서 그 많은 것들이 왔는지. 백합 덕에 개미 소탕은 했지만, 그 광경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지난달 인근 도서관에서 인문 콘서트가 있었다. 도슨트이면서 책을 낸 저자라고 했다. 떠들썩하게 홍보한 것도 아니고, 그저 홈페이지에 띄운 것이 전부였는데, 그날 행사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뒤편에는 서서 듣는 사람들이 벽을 따라 늘어섰고, 어떤 사람은 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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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세월 동안 반질반질해진 오래된 티포트(teapot·찻주전자), 정확하게는 커피포트 하나를 손에 넣었다. 바닥에는 작은 글씨가 또렷이적혀 있다. 일메나우, 독일민주공화국(Made in German Democratic Republic). 지금은 통일 독일이 되어 사라진 나라다. 처음부터 티포트를 수집한 것은 아닌데 티포트만 보면 눈을 돌릴 수가 없다. 그렇게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폴란드, 미국 등 온 나라를 돌아온 수십 개의 티포트들이 내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하나만 있어도 부족하지 않는데, 왜 자꾸 새로운 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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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공동체 마을에 집을 보러 갔다.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곳으로, 같은 종교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단지를 형성했다. 넓은 마당에 목조주택, 아름드리나무와 여름 햇살 가득 머금은 정원의 꽃들까지. 누구라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 마을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저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 그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곳 사람들은 집을 산 것이 아니었다.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었다. 삶의 기준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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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것, 너의 것, 모두의 것. 우리는 대개 소유로 공간을 구분한다. 그러나 실상, ‘나의 것’ 외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집 앞 공원이나 가로수가 그렇다. 사적인 공간에서는 상당 부분을 통제할 수 있다. 벽지 색상, 가구 배치, 식물 하나까지도 몇 군데를 비교하고 한참을 고심한다. 오래오래, 매일 보고 누릴 것이니까. 복도, 엘리베이터, 단지 광장 같은 공유 공간. 그 공간들에 ‘나의 의사’라는 것은 애시당초 없다. 도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공공 공간은 단순히 스쳐 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머무는 장소여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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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고혹적인 찔레꽃 향기가 진하게 배어나고, 보랏빛 오동나무 꽃이 한 두 송이 똑똑 떨어져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계절이다. 질세라 반딧불이가 이따금 보이고, 지자체마다 ‘반딧불이를 보러 오세요’, ‘별이 보이는 마을로 떠나세요’ 하는 안내가 늘어난다. 도시인들은 차를 몰고, 캠핑 장비를 챙겨 가족과 함께 멀리 떠난다. 살아 있는 그 빛을 보기 위해. 우리 집 마당에서는 이따금 반딧불이가 보인다. 풀섶 사이로 작은 빛이 깜빡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이 작은 생명이 어떻게 스스로 빛을 내는지 신비로울 따름이다. 언덕과 들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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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소도시에서 심야책방이 열렸다.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들고와 저녁 8시부터 밤 12시까지 같은 공간에서 읽는 것이다. 열댓명이 모인 자리. 모두들 여성으로 절반은 인접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고, 지역민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여성이 있었다. 운전해도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에서 왔다. 책을 읽고 싶어서라고 했다. 중간중간에 간단한 프로그램이 있어 실제 책을 읽을 시간은 두세시간 남짓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다는 아닌 듯 했다. 책은 도구에 가까웠다. 그 핑계가 있어야 갈 수 있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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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탄진 시장을 찾은 날이었다. 2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시장, 자리를 잃을 때마다 새로운 자리를 찾았다고 했다. 18세기 중반 충청도읍지에 처음 기록된 이 장터는 원래 신일동에 있었다. 홍수를 피해 계암장터로 옮겼고, 다시 문평동으로 옮겼다가 또 홍수로 신탄진역 뒤편 석봉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250년을 이어왔다. 시장의 첫인상은 여느 길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 도로변을 따라 상점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몽땅 처분, 천 원’이 붙은 화장품 가게부터 트럭에 주렁주렁 매달린, 미어터질 듯 가득 담긴 투명한 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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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박까지 동반한 비가 요란하게 다녀갔다. 개나리는 빛깔이 더욱 진해지고, 벚꽃은 새싹 속에서 더 빛이 난다. 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도 파랗다 못해 청명하다. 아침에 가장 먼저 눈을 뜨며 하는 일은 창문을 열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가 매일 아침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코모레비’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장면처럼 말이다. 오래된 빌라에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놓고 나는 수시로 밖을 내다본다. 특히, 내가 심은 진달래가 잘 있는지, 밤사이 또 자랐는지 말이다. 심은지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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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가게들이 있는 그 길목에 치킨집이 생겼다. 화려한 색감의 디자인과 깔끔한 실내, 그 프랜차이즈 치킨점은 그럴싸했다. 내심 반가웠다. 배달도 되고, 위치도 괜찮았다. 치킨집 바로 옆에는 수십 년도 더 된 자그마한 점빵이 있다. 그 옆으로 비슷한 세월을 담은 이발소, 정미소, 방앗간이 나란히 붙어 있다. 길 건너편에는 농협과 마트도 하나 있다. 머리카락이 허연 할아버지가 혼자 운영하시는 이발소 앞을 지나며 생각했다. “이 동네도 도시 재생을 하나 보다. 오래된 것들이 남아있는 이 길목에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서면 활력이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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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뒷골목, 촘촘한 주택 사이로 붉은 등이 켜진 해묵은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육점이다. 반가움에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머물렀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외국어 간판이 이어진 큰길에서 불과 두 걸음만 들어왔을 뿐인데, 풍경이 달라졌다. 1970년대에 봄직한 투박한 글씨체로 쓴 셀로판 간판, 듬성듬성 큼직하게 썰어놓은 고기가 진열된 유리장, 묵직한 나무 도마와 오래된 저울. 연세 지긋한 사장님이 고기를 손질하고 계셨다. 꾸민 흔적이라곤 없는 소담한 그곳엔 시간만이 그 자리를 말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장면은 이태원만의 전유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