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강(江)! 세상에 사연 하나 품지 않고 흐르는 강이 어디 있으랴. 수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이 읊은 시심(詩心)에서부터, 애절한 청춘 남녀의 사랑, 세상사에 지쳐 강물에 몸을 맡긴 이들의 절망까지, 강은 말없이 그 모든 이야기를 안고 흐른다. 오늘도 그렇게 흐르는 한강, 100년 전 이 강물에도 사연은 가득했다. 기생과 회사원의 슬픈 정사(情死) 사건을 찾아 물길을 거슬러 올라 가본다. “경성 수은동 105번지 기생 황국화(黃菊花·17)는 시내 창신동 449번지 이명호(李明鎬·22)와 같이 그제 오전 8시경에 한강 봉환(鳳煥
2025-07-02 17:10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채식·금연·금주·청결·금욕·운동시대는 변했어도 방법은 똑같아 오래 살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나오는 인간의 오복(五福) 중의 첫째가 오래 사는 것, 즉 수(壽)이다. 오복과 반대되는 여섯 가지 불길한 일은 육극(六極)이라 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흉단절(兇短折), 즉 일찍 죽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장수하는 것은 인간이 가장 바라는 큰 복이다. 1925년 3월 동아일보에 `오래 사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3회에 걸쳐 연재됐다. 100년 전 `오래 사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찾아가 본다."사람이 한번 세상에 나면 나이가 더해 갈수록 더 살고 싶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이 80이라도 3살 먹은 어린 아이 마음이나 같다`고 하는 예로부터 전하는 말을 보아도 사람의 삶에 대한 욕심이 한이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한번 세상에 나면 될 수 있는데까지는 오래 살아야 합니다. 서양의 학자 중 `헬헤루`씨는 인간의 수명은 200세라고 하였으며 그 외에 다른 학자들은 100세 혹은 90세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으로도 70여 세는
2025-06-18 18:22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피 흘린 아내들의 슬픈 기록손병희 딸 "눈 뜨라"며 단지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 `배우자가 자신을 돌봐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남성의 비율은 49%로, 여성(22%)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러한 성별 간 인식 격차는 오랜 시간 축적된 성 역할 고정관념의 반영일 수 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당시 신문에는 남편의 병을 낫게 하겠다며 자신의 허벅지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이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른바 할고(割股; 허벅지의 살을 베어 냄)와 단지(斷指; 손가락을 자름)다. 이러한 행위는 `열녀`나 `효부`라는 미명 아래 미화되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여성에만 희생을 기대하는 구조는 아직도 여전한 듯 하다."전남 곡성군 겸면 마전리 이기영(李基永)의 장남이 우연히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함에 그 처 진(陳)씨는 당년 20세라. 그 남편의 병을 완치하고자 하여 작년 9월경에 할고하여 남편에게 먹이고, 10월경에 할장육(割掌肉; 손바닥을 자른 고기)과 단지하여 그 피를 남편에게 먹였으나 효과가 없이 11월 말경에 병이 더욱 심해서 목숨이 끊
2025-06-04 18:09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민영휘보다 재산 적다며 체납하자 들끓는 여론`선유선보, 악유악보`,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한가 최근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수괴 이완용(李完用)의 증손자가 국가에 환수된 선대의 토지를 반환받기 위해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뒤, 해당 토지를 곧바로 매각하고 캐나다로 떠났다는 씁쓸한 뉴스가 전해왔다. 100년 전 나라를 팔아 부를 쌓은 한 인물의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1925년 5월 8일자 조선일보에 눈에 띄는 이완용 기사가 하나 있다. "당대의 유수(有數;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매우 두드러지다)한 부자로 세상이 다 인정하는 이완용 후작과 그의 아들 이항구(李恒九) 남작이 경성부에 납부할 학교비 4,000여 원을 너무 많아 못 내겠다고 뻗댄다고 함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 바, 일반 부민에게는 독촉장 나온 지 한 달이 못 되어 차압을 한다, 집행을 한다 하는 경성부 당국이 특별히 이완용 후작에 대해서는 납부 기한이 지난 지 반년이 되도록 그 체납에 대하여 하등(何等)의 결정을 내지 못하고, 다만 그 권세와 금력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
2025-05-21 17:36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호가호위 전형, `사음`과 `농감`시대 바뀌었으나 탐욕 그대로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내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건진법사`라는 인물의 자택에서 거액의 5만원권 현금 다발이 발견됐다. 이런 것을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리는 행태, 즉 호가호위(狐假虎威)라고 한다. 100년 전 호가호위는 다반사였다. 가난한 농민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린 사음(舍音), 농감(農監)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공식적 권한은 없었지만, 실질적으로 민생을 옥죄는 그들의 행위는 당시 민중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사음 또는 농감은 지주(地主)를 대리하여 소작지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소작료 관리와 소작권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1925년 5월 5일자 조선일보를 보자. "경기도 수원군 비봉면 삼화리 203번지 조병현(曹秉鉉·58)은 1916년부터 동양척식 회사 농감을 보는데, 빈곤하던 가세(家勢)가 지금에는 내놓으라고 할 만한 형편인 바 어려운 소작인의 소작권을 박탈하여 좋은 기름진 논으로 200여 두락을 자기와 아들의 명의로 농사를 하며, 거의 200여 명 소작인들에게 매년
2025-05-07 17:43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양근환, 단검으로 민원식 처단하다딸아 너의 울음 누구에게 닿을까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짙은 법이다. `독립운동가`라는 빛나는 이름 뒤에는 `가족`이라는 슬픔이 숨어 있다. 1921년 2월 일본 도쿄에서 민원식(閔元植)을 암살한 독립운동가 양근환(梁槿煥)씨의 가정을 방문한 기자의 방문기가 1925년 4월 조선일보에 실렸다. 그 이야기를 한번 찾아가 보자."동경호텔 한구석에서 문제의 인물 민원식을 암살한 사건으로 세상의 이목을 놀래이던 양근환(32), 자기의 생명을 초개(草芥)같이 여기고 가슴에 타는 불을 기어이 그대로 행한 후 마침내 그의 일생을 동경 형무소에 내던진 지도 벌써 5년 전 옛일이다. 청춘의 산 같은 희망을 버리고 꽃 같은 아내와 어린 자녀를 두고 들어간 그의 옥중 생활이 얼마나 쓰라리랴?" (1925년 4월 15일자 조선일보) 양근환이 암살한 민원식은 누구인가? 민원식은 국민협회(國民協會) 회장을 맡아 일본 정부에 조선인 참정권을 청원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1921년 2월 참정권 청원 활동 차 도쿄에 왔고, 16일 도쿄의 철도호텔 14호실에서 양근환의 단도에 찔려 사망
2025-04-23 17:57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삶 짜맞추며 꿈 잃지 않은 마음하루 일군 이름없는 손들 기억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 지면에 담긴 여성들의 삶은 한 시대의 거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원, 학생, 바느질 품팔이, 주모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버텨내며 생존과 희망을 이어갔다. 이 기록은 그들의 숨은 얼굴에 바치는 작은 경의다.첫째는 조선의 여자 점원 이야기다. "새해도 머지 아니하니 여점원들도 손님을 영접하기에 날마다 밤마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분주해진다. 10명의 판매원들은 문이 미어지도록 몰려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친절을 주장 삼아 팔고 꾸려주고 돈받고 하여야 할 것이요, 문을 닫힌 후에는 밤이 깊고 새벽이 가깝도록 문부(文簿)를 정리하는 것이다. 여자 점원이 조선에 생긴 이후에 여자도 실업계에 눈이 떴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말썽 많은 세상에서 받는 비평도 또한 없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혹은 점원들이 양복이나 변변히 입고 인물이나 변변히 생긴 남자들이 들어오면 턱밑에 바싹 들어서서 생글생글 웃어가며 따라다닌다는 등, 심지어 부랑 소년들은 `오늘은 심심하
2025-04-09 17:40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항일의 외침에서 언론의 길로독자 관심 모았던 변장 취재기정신은 시대 벽 넘어 살아있어 100년 전인 1925년 3월 특별한 인물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최은희(崔恩喜) 기자를 방문한 이야기다. 추계(秋溪) 최은희는 민간 신문의 첫 여기자였고 항일투사로도 활약했다. 그의 이름을 딴 `최은희 여기자상`은 그가 작고 1년 전 5000만원을 조선일보에 기탁해 만든 상이다. 1984년부터 매년 뛰어난 여기자를 선정해 수상하고 있다. 시대의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은 그의 발자취를 찾아가 본다."기자는 다시 부인 기자로 계신 최은희(23)양을 지난 3월 9일 오후에 방문하였습니다. 최양은 지금부터 7년 전 1919년 봄에 시내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봄은 누구든지 조금도 앞일을 헤아리지 않고 뜨거운 피에 날뛰던 때입니다. 최양은 학교의 몇 동지와 더불어 만세를 부르러 나아갈 때에 창과 칼에 상하는 이를 구호하고자 붕대와 고약을 지니고 학교를 나와 종로에 나와서는 일어나는 불길에 만세 수삼 창(唱)을 부르고 곧 총감부로 잡혀 가게 되어 무수한 고초를 받다가, 일주일 후
2025-03-26 18:10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19살에 시집와 마흔에 과부`동네 자랑`, 박씨 할머니 삶장수의 명암과 사회적 책임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었다고 한다. 이제 고령자의 기준을 상향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100년 전 고령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 이야기를 찾아 가보자. 1925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에 `경성부 90세 이상의 고령자 10명`이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경성부에서는 수일 전부터 90세 이상의 고령자를 조사하는데 그제 19일까지 조사된 수효는 조선인 8명, 일본인 2명 모두 10명이요 그중 나이 많은 이는 조선 노파 2명으로 98살 된 사람이며 모두가 여자인 중, 한 명이 92살 된 조선인 남자뿐인데 개국 445년(1837년) 이전에 출생한 이는 부청에 통지하면 좋겠다더라." 90세 이상 고령자 10명 중 여자가 9명이나 되고 남자는 단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다음날인 22일 매일신보에 "최근 경성부에서는 경성부 내의 90세 이상 고령자를 조사한 결과, 겨우 10명 중에 여자가 9명이고 남자는 단 한 명에 지나지 않은데, 체격으로 보
2025-02-26 17:48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배움의 꿈 이어가는 여자 고학생추운 새벽을 지키는 전화 교환수눈물 한숨 섞인 빨래방망이 소리 유난히 추운 올 겨울이다. 없는 사람에게는 여름보다 겨울을 나기가 훨씬 힘들고 고달픈 일일 것이다. 100년 전 추운 겨울밤을 힘들게 견뎌냈던 분들의 이야기가 1924년 12월 20일부터 조선일보에 `겨울밤의 가지가지`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 그중 지금은 보기 힘든 그 이야기를 찾아가 본다.첫째는 여자 고학생들의 이야기다. "보라 귀엽고 불쌍한 이 어린 학생들을. 눈물이 있는 자는 울어다오. 목석이 아니거든 동정하여라. 더운 방에서 잠자고 배불리 먹고 따뜻이 옷 입은 호화로운 사람들도 오히려 추움을 견디지 못하는 이 차디찬 겨울날에, 굶주리고 떠는 이 가련한 고학생들의 정형을 살펴보아라. 그들은 눈이 첩첩이 쌓이고 모진 바람이 빰을 갈기는 겨울밤에 잡지 몇 권을 손에 쥐고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창틈으로 내다 보지도 아니하는 무정한 아씨들에게 별별 설움을 다 당하는 것이다. 불도 변변히 때지 못하는 낡은 다다미 방위에서 손들을 혹혹 불어가며 전등불 밑에 모여 앉아서
2025-02-12 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