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박정일 산업부장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 처리를 연기하면서 높아졌던 재계의 기대감이 다시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김병기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15일 기자들과 만나 "상법은 워낙 중요하고, 코스피 5000으로 가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법안"이라며 최우선 처리 법안으로 낙점했기 때문이다.지난 12일 여당에서 상법개정안 처리를 차기 원내대표단에 위임하겠다고 밝힐 때까지만 해도, 재계에서는 이 대통령이 상법 개정안 처리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대통령이 지난 13일 5대 그룹 총수 및 경제 6단체장과 간담회를 했을 당시에도 그랬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우리 기업인들, 각 기업이 경제성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기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 협조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사업보다 소송 대응에 급급할 것이라고 재계는 한결같이 주장한다. 소수 대주주의 횡포를 억제하고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를 악용해 소송을 걸고 이익을 취하는 것은 `개미들`보다는 조직과 자본이 풍부한 외국계
2025-06-15 16:25 박정일 기자
박정일 산업부장 "최태원에 SK하이닉스가 있다면, 신동빈에게는 롯데케미칼이라는 못잖은 효자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7년 롯데케미칼이 3조원의 연간 영업이익을 거두는 사상 최대 신기록을 세웠을 당시 재계에서 돌았던 말이다. 석유화학은 대한민국 산업의 뿌리 격으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을 비롯해 SK, LG, 롯데, 한화, 금호 등 주요 대기업들이 최소 석유화학 계열사 하나 정도는 들고 있었다. 제조업 수출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중추 역할을 했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많은 금액을 수출하는 품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 석유화학이 흔들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예를 들자면 2014년까지 4000억원 안팎이었던 연간 영업이익은 2017년 2조9000억원까지 치솟았다가 2020년 다시 3000억원대 초반으로 줄었다. 2021년 코로나 수요 증가로 다시 1조5000억원대로 증가하면서 기대감을 높였는데, 다음해 바로 적자로 전환해 지금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비단 롯데케미칼 뿐 아니라 다른 석유화학 업체들도 마찬가지다.이는 경기침체가 아닌 중국의 자급률 상승이라는 공급구조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한국수출입
2025-05-11 18:14 박정일 기자
박정일 산업부장 현대제철이 연일 시끄럽다. 노조는 임금을 계열사 최고 수준으로 올려달라며 수개월 째 부분파업을 이어가고 있고, 사측은 일부 공장을 셧다운 한 데 이어 창사 이후 첫 전사 희망퇴직 신청까지 받는 등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수입 철강 25% 관세 부과 조치가 나왔고, 관세를 피하기 위해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전기로를 새로 짓는 것을 포함해 4년 간 31조원에 이르는 투자 보따리를 트럼프 2기 정부에 안겼다.이에 현대제철 노조는 국내 일자리를 줄여 미국 일자리를 늘려준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대차그룹이 현 시점에서 찾을 수 있는 대안은 거의 없다. 이런 와중에 또 파업을 운운하니, 현대제철 사측으로선 답답할 노릇이다.노동집약형인 자동차에 비해 철강은 상대적으로 자본집약형 산업으로 꼽힌다. 노동력보다 설비투자가 부가가치 창출에 더 큰 이바지를 한다는 뜻이다. 철강 뿐 아니라 현재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는 산업은 대부분 자본집약형이다. 대표적으로 단일 수출 1위 반도체가 그렇고 석유화학도 마찬가지다. 수출 상위 10개 품목의 대부분이 자본집약형이다
2025-03-30 18:09 박정일 기자
박정일 산업부장 목포 앞바다에 떠있는 `순이(?)`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탄핵 정국에 세계를 뒤흔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까지 국내·외 정세가 요동치는 와중에 왠 `순이` 타령인가 싶다.사실 `순이`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다. 중국 국적의 대형 크레인 선박 `순이(ShunYi) 1600호`가 그 주인공이다. 이 배는 2조3000억원 규모의 국내 최대 민간 해상풍력 사업인 `낙월해상풍력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위해 입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순이`의 사연은 좀 복잡하다. 정부는 2023년 경쟁입찰 등을 거쳐 한 중소기업에 해당 사업을 허가해줬다. 그런데 이 업체에 지분 투자를 한 곳은 태국 기업이고, 풍력터빈은 중국이 지분을 보유한 독일 회사가, 해저케이블 외부망은 중국 업체가 공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와중에 `순이`까지 대한민국 서해안에 들어왔다. 이 선박은 정식 절차 없이 영광군 해상풍력 사업에 투입됐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선박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장비`로 신고해 국내 규제를 피하려 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목포해양수산청에 따르면 이 사업의 해상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토성토건은 이 선박에 대한 사전허
2025-03-04 18:05 박정일 기자
박정일 산업부장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로 유명한 고(故)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은 세계 일류 기업으로 가는 첫 번째 길로 `인재`에 주목했다. 이후 공채 전공시험을 폐지하고 학력 제한을 없애는 등 인사 시스템을 혁신했고, 그러자 삼성에는 우수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강조했고, 그 결과 소위 비(非)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 최고경영자(CEO)들이 속속 등장했다.2003년에도 이건희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천재 경영`을 강조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시가총액 1위이자 세계 반도체·가전·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는 삼성이 만들어졌다.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삼성의 경영시계는 사실상 멈춰졌다.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던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삼성을 이끌게 된 이재용 회장은 2016년 말부터 최근까지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묶였다. 560일간 구속 수감됐고, 서초동 법원에 출석한 것만 따져도 100여차례에 이른다. 이제 10년에 이르는 이 길고 길었던 사법
2025-02-04 17:53 박정일 기자
박정일 산업부장 미소는 지었지만 표정은 굳어있었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2025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재계 총수들은 최대한 발언을 자제하고 침묵했다. 이날 행사는 당초 계엄·탄핵 정국에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까지 발생하면서 미뤄지거나 축소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대내·외 여건이 덕담을 주고 받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다.그렇지만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주요 재계 총수들은 모습을 드러냈고, 이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민관이 `원 팀`이 돼야 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다.기업가들은 조속한 국정 안정화를 위해 힘을 모아줄 것을 여야 정치권에 요청했다. 최 회장은 "경제에 있는 가장 큰 공포는 불확실성이다. 지금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된다면 그 여파를 가늠하지 쉽지 않다"며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조속한 국정 안정화를 위해 힘을 더 모아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올해 경제 상황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일단 당장 치솟는 환율에
2025-01-05 17:52 박정일 기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국 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최근 한 달 여 동안 대책회의만 30번가량 개최했다고 한다. `트럼프 2.0` 내각이 당선 한 달도 채 안돼 속전속결로 구성되고 벌써부터 관세장벽 예고가 물밀듯 밀어닥치고 있으니 비상이 걸릴 만 하다. 그러나 대책이라고 내놓은 결과물은 딱히 없다. 기업들은 정부의 외교통상 라인을 의심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통상 전문가
2024-12-01 11:40 박정일 기자
박정일 산업부장 필자는 25년 전 언론계에 발을 들이기 전 한 IT 업체에서 기획 일을 2년 정도 했었다. 간단한 코딩 업무도 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시 개발자들은 밤샘업무를 밥먹듯 했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날도 많았다. 그럴만도 했던 게 워낙 작업이 복잡하다 보니 한번 탄력을 받으면 끝까지 가야 하고, 다음날 어디까지 작업을 했는지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차라리 일주일 밤을 새든 해서 다 끝내놓은 다음에 푹 쉬는게 속이 편했다. 남겨놓고 오면 집에 가서 쉬지도 못하고 불안해 했다.최근에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오후 5시반에 컴퓨터를 끄고 퇴근하지 않으면 인사팀에서 경고 메시지가 온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회사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업무별로 일하는 방식이 다른데 이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게 노동생산성 측면에서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이 임원은 말했다.자원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배경은 근면·성실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노동생산력, 수출의 20%를 책임지는 반도체의 경쟁력에서 비롯했다는 데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2024-11-05 18:03 박정일 기자
박정일 산업부장 "반도체 사업은 나의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다." 고(故)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생전 지인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3대에 걸쳐 만들어 놓은 삼성의 대들보가 지금 위기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당했다는 게 더 뼈아프다. 삼성은 2018년에 4대 성장사업으로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바이오, 반도체 중심 전장부품을 꼽았다. 최근 삼성 반도체의 위기는 바로 그 AI용 반도체 시장에서의 `실기`(失機)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3분기 실적만 놓고 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10%포인트 안팎까지 차이가 날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삼성이 HBM 시장에 적기 대응하지 못한 것은, 자동차로 비유하면 하이브리드차를 건너뛰고 전기차로 넘어가려다 위기를 맞게 된 폭스바겐과 유사하다.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나, 전략적 판단 미스였다.HBM의 성장 과정과 삼성의 행보를 보면 그럴 만도 했다. HBM은 SK하이닉스가 11년 전 AMD와 공동 개발한 기술로, D램 칩에 수천개의 구멍을 뚫어 연결하는 방식으로 동
2024-10-13 17:48 박정일 기자
박정일 산업부장 "나도 한 때는 잘 나갔지." 세계 시장을 호령하다 때를 놓쳐 몰락해버린 국가나 기업의 사례는 역사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교훈이다. 로마제국과 같은 먼 얘기가 아니더라도, 불과 12년 전 파산해버린 코닥과 같은 사례는 마치 `진화`와 `멸종`의 자연 섭리가 인간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닥의 경우 무려 49년 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었다. 당시 경영진은 주력인 필름 사업의 몰락을 가져올까봐 이를 애써 외면했다. 199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확산됐는데, 그보다 20여년 전 이미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코닥은 이를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 그들의 `고집`이 결국 파산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LG전자 휴대전화 사업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 필자 역시 부끄럽게도 `스마트폰 무용론`에 동참한 적이 있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 세계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휴대전화 점유율 1위까지 올랐던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에 적시 대응하지 못해 결국 2021년 사업에서 철수했다. 아이폰과 삼성의 옴니아가 나왔을 당시 LG전자 관계자는 필자에게 "기존 폰으로도 소위 스마트폰의
2024-09-03 18:17 박정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