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 본관 1층 이스트룸. 11년만에 국빈으로 미국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련한 만찬장은 일론 머스크, 젠슨 황, 팀 쿡 등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만찬에선 우리에게도 익숙한 대만 가수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바로 대만 가수인 고(故) 등려군((鄧麗君, 덩리쥔)이 부른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다.
이 곡은 1973년 대만 가수 진분란(陳芬蘭, 천펀란)이 처음 발표하고, 1977년 등려군이 다시 불러 중화권 전역에서 유명해진 사랑 노래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는 내용의 가사 때문에 중추절 전후로도 자주 불린다. 시 주석도 과거 이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시 주석의 방미가 중추절 직전과 맞물린 만큼 중국 문화를 세심하게 배려한 선곡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때 중국 대륙에선 “낮은 등소평(鄧小平·덩샤오핑)이 지배하고, 밤은 등려군이 지배한다”는 말이 유행했다. 등려군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만, 홍콩, 중국 등 중화권을 비롯해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대만의 전설적인 여가수다. 영어 이름인 테레사 텡(Teresa Teng)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아시아의 가희(歌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는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비롯해 영화 첨밀밀의 삽입곡 ‘첨밀밀’(甜蜜蜜), ‘아지재호니’(我只在乎你) 등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맑고 청아하면서도 애절한 음색이 특징이다. 중국어(보통화)뿐만 아니라 광둥어, 민난어(대만어), 일본어, 영어, 심지어 인니어로도 노래를 불러 언어의 장벽을 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월량대표아적심’은 “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라는 뜻이다.
你问我爱你有多深 너는 내가 너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물어봐
我爱你有几分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我的情也真 내 마음도 진심이야
我的爱也真 내 사랑도 진심이야
月亮代表我的心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해 전해줘
등려군은 1977년 이곳을 리메이크해 발표했다. 원래 1973년 진분란이 먼저 불렀으나 빛을 보지 못했고, 등려군이 특유의 감성으로 재해석하면서 아시아 전역의 메가 히트곡이 됐다. 잔잔한 피아노와 현악기 선율 위에 등려군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얹어진 서정적인 발라드로,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저 하늘에 항상 떠 있는 달빛이 내 마음을 증명한다”라는 시적이고 로맨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첨밀밀’(甜蜜蜜)은 1979년에 발표된 곡이다. “꿀처럼 달콤해요”라는 뜻으로, 인도네시아의 민요인 ‘다융 삼판’(Dayung Sampan) 멜로디에 중국어 가사를 새로 붙여 만든 곡이다. ‘나룻배를 젓자’라는 뜻의 ‘다융 삼판’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역의 서민들이 배를 타며 부르던 잔잔하고 소박한 민요다. 1970년대 동남아시아 투어 중 이 멜로디를 들은 등려군이 아름다운 선율에 매료됐고, 대만의 유명 작사가 장노(莊奴)에게 가사를 의뢰했다. 장노는 단 5분 만에 달콤한 가사를 완성했다. 두 사람은 당시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다.
‘첨밀밀’은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리듬과 귀에 쏙 박히는 친근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등려군의 간드러지면서도 달콤한 음색이 곡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당신의 미소가 너무나 달콤해 꿈속에서 조차 당신을 본 것 같다”는 첫사랑의 설렘을 표현하고 있다.
你笑得甜蜜蜜 달콤해요, 당신의 미소는 달콤해요
好像花儿开在春风里 마치 봄 바람에 피우는 꽃과 같아요
开在春风里 봄 바람 속에 피어난
在哪里 在哪里见过你 어디선가 당신을 만난 적이 있어요
你的笑容这样熟悉 당신의 미소는 낯이 익은데
我一时想不起 언뜻 생각이 안 나는군요
啊 在梦里 아 꿈 속이었어요
梦里 梦里见过你 꿈 속에서 당신을 보았어요
甜蜜 笑得多甜蜜 너무나도 달콤한 그 미소
是你 是你 梦见的就是你 꿈에서 본 건 바로 당신이었어요.
‘첨밀밀’은 1996년 개봉된, 여명(소군 역)과 장만옥(이요 역) 주연의 홍콩 영화 첨밀밀의 메인 테마곡으로 쓰이면서 세계적으로 다시 한번 신드롬을 일으켰다. 1986년, 성공을 꿈꾸며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온 두 남녀 ‘소군’과 ‘이요’가 낯선 도시에서 서로 의지하며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는 10년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자체가 등려군의 삶과 죽음을 모티브로 삼고 있으며,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운명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과정마다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흐른다.
노래가 발표된 1979년은 등려군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다. 그해 초 등려군은 대만 여권 문제로 통행이 제한되자 인도네시아 위조 여권을 사용했다가 일본 공항에서 적발돼 추방당하는 스캔들을 겪었다. 큰 상처를 입고 미국으로 건너가 도피 겸 휴식기를 가졌는데, 그 고독하고 힘든 미국 체류 시기에 녹음한 곡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밝고 사랑스러운 ‘첨밀밀’이었다.
진가신 감독이 처음 영화 ‘첨밀밀’을 기획했을 때의 영화 제목은 주인공들의 가련한 처지를 나타내는 ‘대륙인’(大陸人)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제작하던 1995년 5월 8일, 등려군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 중화권 전체가 거대한 슬픔에 빠졌고, 진 감독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결국 영화의 제목을 그녀의 대표곡인 ‘첨밀밀’로 바꾸고, 두 주인공의 10년 사랑의 마침표를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전광판 앞에서 등려군의 부고 뉴스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노래 ‘첨밀밀’의 탄생과 히트 뒤에는 등려군의 개인사, 아시아 문화의 교류, 그리고 영화 제작진의 치밀한 연출이 얽힌 흥미로운 스토리들이 숨어 있다.
등려군의 일생은 ‘아시아의 가희’라는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 대륙 간의 정치적 갈등, 가슴 아픈 사랑, 그리고 외로움이 교차했던 드라마틱한 삶이었다.
그는 1953년 1월 29일, 대만 윈린현의 가난한 군인 가정에서 4남 1녀 중 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 부사관 출신이었기에,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군부대 위문공연을 자주 다니며 자랐다. 10세이던 1963년, 황매조(중국 전통 오페라 스타일)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천재성을 세상에 알렸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14세에 정식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밤무대와 방송을 종횡무진하며 대만의 국민 여동생으로 급부상했다.
1970년대 초에는 홍콩과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해 대성공을 거뒀다. 1974년 ‘테레사 텡’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가요계(엔카 시장)에 데뷔했다. 초반의 부진을 딛고 발매한 ‘공항’(空港)이 히트하며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수상,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섰다.
1979년엔 대만 여권으로 해외 통행이 어렵자 인도네시아 위조 여권을 사용했다가 일본 공항에서 적발되어 추방당하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큰 상처를 입고 미국으로 건너가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미국 휴식기 동안 그녀의 노래는 개방을 시작한 중국 대륙으로 밀수입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국 대륙 팬들은 그녀의 공연을 갈망했고 중국 정부도 러브콜을 보냈으나, 군인 가정 출신이자 반공 성향이 강했던 대만 정부의 압박, 그리고 본인의 신념 때문에 끝내 중국 대륙 땅을 밟지 못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자, 그녀는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자선 공연에 참여해 대성통곡하며 노래를 불렀다. 이 사건 이후 정치적 환멸을 느끼고 홍콩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며 사실상 은퇴의 길을 걷게 된다.
파리에서 15세 연하의 프랑스인 사진작가 스테판 피에르를 만나 위안을 얻으며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조용히 지냈다. 1995년 5월 8일, 요양 차 머물던 태국 치앙마이의 임페리얼 메이핀 호텔에서 심한 천식 발작을 일으켰다.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호흡곤란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향년 42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그녀의 시신은 고향 대만으로 운구됐고, 대만 정부는 공훈장을 수여하며 사실상의 국장(國葬)으로 그녀의 마지막 길을 기렸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의 팬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녀는 생전에 중국 대륙에서 동포들을 위해 콘서트를 여는 것과 평범한 가정을 꾸려 행복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는 것을 간절히 바랐다. 당대의 재벌가 자제, 성룡(청룽) 등과의 열애설이 있었고 결혼 직전까지 간 적도 있으나 상대 집안의 반대와 파혼 등으로 끝내 결혼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정치적 이념의 장벽을 목소리 하나로 허물었던 등려군은, 비록 짧고 고독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가 남긴 맑은 노래들은 여전히 아시아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중국과 대만 등의 현대 대중음악은 전통 음악의 기저인 ‘궁-상-각-치-우’ 5음계 멜로디가 자주 쓰인다. 이 때문에 특유의 서정적이고 애절한 느낌을 준다. 2000년대 이후 서양의 R&B나 힙합 비트에 고쟁, 디쯔(플루트), 이호(얼후) 같은 전통 악기를 결합하고, 가사에는 중국 고전 시가나 역사적 요소를 담아내는 ‘중국풍’이 주류 장르로 정착했다.
흔히 말하는 ‘C-Pop’은 언어에 따라 크게 표준어(보통화)를 쓰는 만다팝(Mandapop)과 홍콩을 중심으로 한 광둥어 기반의 칸토팝(Cantopop)으로 나뉜다. 가사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자연(달, 바람, 비)이나 역사적 은유를 활용해 시적이고 문학적인 감성을 담아내는 노래가 많다.
중국 대중음악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970~1990년대는 전설의 시작과 칸토팝의 황금기다. 등려군은 청아한 목소리로 폐쇄적이었던 중국 대륙의 마음을 가장 먼저 열어젖힌 만다팝의 전설이다.
여기에 ‘홍콩 사대천왕’으로 불린 유덕화, 장학우, 여명, 곽부성 등은 1990년대 홍콩 영화의 전성기와 함께 아시아 전체를 뒤흔든 가수 겸 배우들이다. 특히 장학우는 가창력이 뛰어나 ‘가신’(歌神)으로 불리며 수많은 발라드 명곡을 남겼다.
또한 왕비는 천상의 목소리와 몽환적인 스타일로 ‘팝의 여왕’이라 불렸다. 왕가위 감독의 명작 영화 ‘중경삼림’(1994)의 삽입곡 ‘몽중인’(梦中人)으로 유명하다.
2000년대는 ‘중국풍’과 현대 C-Pop의 완성 시기다. 주걸륜(周杰倫, 제이 초우)은 현대 C-Pop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서양의 R&B, 랩을 중국 전통 음악과 결합한 ‘중국풍’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대유행시켰다. 곡 창작 능력과 피아노 실력이 압도적이다.
왕리홍(王力宏)은 미국의 힙합, 팝 스타일과 중국 전통 오페라(경극)를 세련되게 융합한 음악을 선보이며 주걸륜과 함께 2000년대 가요계를 양분했다. 임준걸(林俊傑, JJ Lin)은 싱가포르 출신이지만 중화권 전체에서 ‘걸어다니는 CD’라고 불릴 만큼 완벽한 라이브 가창력을 자랑하는 발라드의 황제다.
2010년대 이후는 대륙의 부상 시기다. 화천위(華晨宇)는 중국 대륙 출신의 천재 싱어송 라이터로, 실험적인 록 사운드와 폭발적인 고음, 파격적인 무대 연출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등자기(鄧紫棋)는 홍콩 출신으로 대륙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며 아시아 신예 디바로 떠올랐다. 파워풀한 보컬과 트렌디한 팝 사운드로 글로벌 인지도가 높다.
이밖에 주심(周深)은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한 독보적인 미성으로 수많은 대작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OST를 휩쓸고 있는 대륙의 국민 가수로 꼽힌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