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CapEx "누가 지불할 것인가"라는 질문
냉각되는 공모시장, 과열되는 사모시장의 온도 차
벤처자본은 '업사이드', 기관 자본은 '다운사이드'
거품 논쟁넘어 '가격 결정 메커니즘'으로 전환돼야
최근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의 가치 평가를 둘러싸고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 간 시각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비상장 민간 자본시장에서는 여전히 AI 스타트업으로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고 있지만, 공모시장을 주도하는 월가에서는 고금리 환경, 천문학적인 부채, 가중되는 추가 자금조달 부담을 들어 고평가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AI 기술이 유발할 파괴적 혁신에는 양측 모두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기술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자본의 규모와 현실적인 투자수익률(ROI)을 바라보는 셈법은 전혀 다르다. 미국 IT매체 디인포메이션은 30일(현지시간) AI 열풍은 이제 기술경쟁의 단계를 넘어, 투입된 자본의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자본 검증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 산업의 본질적 문제는 이 기술이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을 집어삼킨다는 점이다. 대표적 AI 기업인 앤트로픽만 하더라도 최소 14.8GW 규모의 컴퓨팅 용량을 확보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향후 10년간 관련 비용이 5000억달러(약 670조원)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이제 AI 기업의 가치는 현재의 매출이나 모델의 성능만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데이터센터 구축, GPU 수급, 막대한 전력 공급 및 네트워크 인프라 비용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월가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라고 디인포메이션은 꼽았다. "장차 이 막대한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 AI가 장기적으로 인류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기대와, 이를 위해 지금 당장 투입되는 수천억달러의 자본지출(CapEx)이 적절한 기간 내에 실제 투자수익으로 회수될 수 있는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이 같은 시각차는 상장(IPO) 시장에서 즉각적인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앤트로픽의 IPO 논의 과정에서 일부 투자은행(IB)은 기업가치를 2조달러 수준으로 거론했으나, 주요 공모시장 투자자들은 적정 가치를 1조5000억달러 선으로 평가하며 시각차를 나타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오우라(Oura)는 고평가 논란 속 상장을 전격 연기했고, 오픈AI의 데이터센터 사업과 연계된 SB에너지 역시 약 600억달러의 기업가치 산정에 투자자들이 난색을 표하며 절차가 난항을 겪고 있다. N스케일, 스위치(Switch) 등 부채 기반의 데이터센터 기업들도 고금리 장기화 속에서 신규 자금조달에 부담을 느끼는 형국이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 시장은 여전히 과열 상태다. AI 비서 스타트업 인스팅크트(Instinct)는 설립 1년 만에 1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10억달러를 조달했다. 다만 세쿼이아캐피털의 팻 그래디조차 최근의 AI 가치평가를 두고 "전적으로 미쳤다"고 표현할 만큼, 사모시장 내부에서조차 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두 시장이 이토록 극단적인 온도 차를 보이는 근본적 이유는 벤처캐피털과 공모시장 투자자가 던지는 질문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모시장의 벤처투자자는 "이 회사가 미래에 얼마나 크게 성공할 수 있는가(Upside)"에 집중한다. AI가 기존 산업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현재의 천문학적인 프리미엄도 충분히 정당화된다는 접근법이다.
반면 매일 시가로 평가받고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공모시장 기관투자자들은 업사이드뿐만 아니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얼마나 손실을 볼 것인가(Downside)"를 동시에 엄밀하게 계산한다. 특히 고금리 환경은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 가치를 깎아내리고,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수적인 기업의 차입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 기술의 잠재력은 변함이 없더라도, 높은 금리가 적용되는 순간 금융 시장이 매길 수 있는 기업의 적정 가격표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월가의 경계심이 AI 기술 자체에 대한 회의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기술의 가능성이 아닌,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자본의 규모와 수익성을 검증하고자 할 뿐이다.
앞서 사상 최대 규모의 IPO를 통해 약 860억달러를 조달하고 기업가치를 2조 달러 수준으로 올려놓은 스페이스X의 성공 사례처럼, 확실한 실행력과 시장성을 증명한 대형 딜에는 여전히 거대한 자금이 쏠리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은 "AI는 거품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적 논쟁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AI가 인류에게 미칠 파괴적 생산성 향상의 가능성과 현재 시장에 형성된 기업가치가 미래를 지나치게 조급하게 앞당겨 반영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AI 기술 환상에 도취했던 시장이 이제 냉혹한 자본의 수율을 따지는 '가격 결정 방식의 성숙 과정'으로 변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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