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메이저도 사업비·경제성 이유로 철수
트럼프, 한일 투자 앞세워 ‘선거용’ 재추진
1300㎞ 가스관·혹한 환경으로 막대한 비용
韓정부 “상업적 합리성 확인되는 경우 추진”
반세기 넘게 개발 논의만 거듭해온 미국 알래스카 천연가스 사업에 한국이 대규모 투자를 하며 참여할 것이라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혔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한국의 대미 투자금 가운데 500억달러(약 68조원) 이상을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투입한다고 30일(현지시간) 밝혔다.
미국의 주요 석유기업들조차 사업비와 경제성 문제로 철수했던 사업인 만큼 실제 상업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북부 노스슬로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약 800마일(1300㎞)의 가스관으로 남부 항구도시 니키스키까지 운송한 뒤 액화해 미국 내 수요처와 아시아 등 해외 시장에 공급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연간 최대 2000만톤(t)의 LNG 생산을 목표로 하며 전체 사업비는 445억∼545억달러(약 60조∼74조원)로 추산된다.
사업 계획대로라면 올해 가스관에 대한 최종투자결정(FID)을 내리고 내년 수출시설에 대한 최종투자결정(FID)를 거쳐 2031년 첫 LNG를 수출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가스관 FID는 당초 지난해 말에서 올해로 미뤄졌다. 사업을 주도하는 미국 에너지 인프라 개발업체 글렌파른 그룹이 목표로 했던 LNG 구매계약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렌던 듀발 글렌파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백악관 행사에서 “파이프라인 건설에는 3년이 걸리며 자금 조달이 이뤄지는 즉시 착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착공 후 3년 뒤 알래스카에 가스를 공급하고, 약 2년 뒤에는 LNG 수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이 사업이 이미 수십년간 경제성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알래스카 북부 가스전 개발 구상은 1968년 가스전 발견 이후 이어져 왔다. 엑손모빌과 BP, 코노코필립스 등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이 참여하면서 2014년 사업이 본격화됐지만, 막대한 사업비와 경제성 문제 등을 이유로 2017년 사업에서 철수했다. 환경오염과 생태계 훼손을 둘러싼 논란도 사업 추진의 걸림돌이었다.
이후 알래스카주 산하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GDC)가 사업을 이어갔고, 글렌파른은 지난해 3월 사업 자산을 보유한 AGDC 자회사 ‘8스타 알래스카’ 지분 75%를 인수하면서 사업에 합류했다. AGDC가 나머지 25%를 보유하고 있다.
사업 여건도 녹록지 않다. 혹한의 기후와 얼어붙은 지반에서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 데다 1300㎞에 달하는 가스관과 가스전·액화시설을 함께 건설해야 한다. 가스관 건설비만 132억∼169억달러(약 18조∼23조원)로 추산된다. 공사비가 예상보다 늘어나면 LNG 판매가격이 높아져 미국산 LNG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난관에도 사업을 핵심 에너지 프로젝트로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 LNG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생산된 LNG를 미국 내 다른 지역과 태평양 동맹국에 판매·수송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참여 가능성을 거듭 강조하며 사업 재추진에 힘을 실었다.
한국 기업의 참여도 구체화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12월 AGDC 및 글렌파른과 전략적 파트너십 기본합의서(HOA)를 체결했다. 연간 100만t의 알래스카 LNG를 20년간 구매하고 포스코가 가스관 건설에 필요한 강재를 공급하는 내용이다.
알래스카산 LNG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시장에 접근하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은 사업의 장점으로 꼽힌다. 미국 멕시코만 연안 LNG 터미널에서 동아시아로 운송하는 것보다 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사업의 자금 조달에 필요한 수요가 모두 확보된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 대만, 태국, 프랑스 등의 기업과 합의한 LNG 공급 물량은 연간 약 1300만t으로 알려졌다.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300만t을 추가 확보하고 기존 합의도 구속력 있는 계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현재 확보한 물량 상당수가 비구속적 합의라는 점에서 실제 상업적 수요가 충분한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한국에도 부담이 없는 사업은 아니다. 장기간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데다 사업이 지연될 경우 장기 구매를 전제로 한 LNG 수급 계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알래스카 자원개발 정책이 정권에 따라 달라져온 만큼 향후 정책의 지속성 역시 변수로 꼽힌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자금을 앞세워 수십년간 표류한 알래스카 LNG 사업에 다시 속도를 붙이고 있지만, 투자 확대가 곧 사업의 경제성 확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업계가 과거 사업에서 철수했던 이유였던 높은 비용과 불확실한 수요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한국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5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우리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이 확인되는 경우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참여가 미국의 오랜 숙원사업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사업의 수익성과 장기적인 계약 안정성이 좌우할 전망이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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