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으로 예산·조직 늘었지만 사고 예방 역부족
"책임회피 서류만 급급… 비용 들어도 설비·공정 고쳐야"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땜질식 사후 대책이 생산 현장의 위험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후 처벌 중심의 안전관리에서 벗어나 생산 공정 자체의 위험을 제거하는 예방 중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0일 노동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생산 현장의 산재를 줄이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이 안전 예산을 편성하고 관련 조직을 꾸리는 데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가 현장의 실질적인 사고 예방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처럼 처벌을 강화하는 경우 경영진이 산업재해 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 일종의 위하효과가 발생하지만, 이러한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감소한다"면서 "처벌 위주의 법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업이 법에 대응할 수 있는 경험치가 생기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산재 발생 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전 예산 편성이나 사고 예방 활동과 관련된 자료를 갖추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생산 현장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설비와 공정 개선은 후순위에 둔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형식적인 서류를 갖추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역량, 재원이 투입되는 아이러니가 나타날 수 있다"며 "산업안전 조직과 예산을 만들었다고 해서 실제 현장의 예방 효과가 높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안전 관련 예산이 현장에서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품 제조 현장의 인력 구조에 맞는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생산 현장에는 여성 노동자와 사회 초년생 등 현장 경험이 적거나 안전사고에 취약한 인력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률적인 교육이 아니라 작업자의 특성과 공정별 위험을 반영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식품 생산 현장에서 어떤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그 특성에 맞는 맞춤형 안전 예방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제도와 실제 현장 사이의 괴리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산업재해 대책이 작업자의 부주의를 강조하는 데 머물러서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사고 이후 근로자 과실에 집중한 안전교육을 실시하거나 작업 수칙 준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기계와 노동자가 맞닿는 생산 현장의 구조적 위험을 없애기 어렵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 산재심사위원과 질병판정위원을 지낸 문웅 노무사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개인의 부주의나 과실에 원인을 돌리는 경향이 있지만 생산 라인의 근로시간과 야간·연장근무, 비정규직·하도급 구조 등 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도급이 여러 단계로 내려가면 실제 현장에서 안전을 총괄하고 책임질 주체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 이후 책임을 묻는 성격이 강한 만큼 사전에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도 작업자의 주의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는 사고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일한 사고가 반복되는 사업장이라면 사고 당시 작업자의 행동뿐 아니라 생산공정 설계, 설비 배치, 인력 운용과 작업속도 등 사고를 유발한 구조적 요인까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도 강했다.
하 교수는 "안전은 노동자가 부주의한 상황에서도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여러 차례 문제가 없었다가도 한 번의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장시간 노동 등 노동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기업들이 안전보다 생산성을 우선시해왔기 때문에 누적된 위험 요소를 한꺼번에 개선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며 "안전의식 고취나 교육에만 치우치기보다 비용을 들여 시설과 설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나경연 기자 contes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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