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펀드로 철도 등 대대적 확충

동부항만 육성 통해 우회로 구축

셰이크 칼리드 아부다비 왕세자와 트럼프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셰이크 칼리드 아부다비 왕세자와 트럼프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란 전쟁으로 세계 에너지·물류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취약성이 부각되면서 아랍에미리트(UAE)가 해협 의존도를 사실상 '제로'로 만드는 대규모 인프라 전략에 나섰다.

이 중심에는 약 3000억달러(약 407조원) 규모의 국부펀드 리마드 홀딩(L'imad Holding)과 셰이크 칼리드 빈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가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30일(현지시간)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가 리마드를 앞세워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항만·물류 인프라에 수십억달러를 투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UAE가 추진하는 이른바 '제로 호르무즈' 전략에서 리마드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제로 호르무즈'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개방되더라도 UAE의 교역과 에너지 수출이 이 해협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도록 대체 수송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UAE 외국무역부 장관 타니 알제유디는 지난 6월 "해협이 열려 있든 아니든 호르무즈 의존도를 제로로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UAE는 해협 바깥에 있는 동부 항만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푸자이라와 코르팍칸, 디바 등의 항만을 키우고 철도와 송유관을 연결해 원유와 석유제품, 각종 화물을 호르무즈를 통하지 않고 오만만으로 운송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오만의 소하르·두큼 항만과 연결되는 물류망도 추진되고 있다.

이 전략을 뒷받침하는 자금력은 막강하다. 지난 1월 아부다비는 기존 국부펀드 ADQ의 자산을 리마드 홀딩 아래로 통합했다. 리마드는 25개 투자회사와 플랫폼, 25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됐다. 에너지·전력·항공·철도·항만·의료 등 전략산업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가 회장을 맡고 있다.

리마드는 최근 아부다비항만공사(AD Ports Group)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완전한 지배권을 확보하는 절차에도 들어갔다. 리마드는 지난 8월 나머지 지분을 주당 6.25디르함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으며, 당시 회사 전체 가치는 약 318억디르함(약 86억6000만달러)으로 평가됐다.

글로벌 투자자들과의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리마드와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블랙록 산하 글로벌인프라파트너스(GIP),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에너지·교통·물류 등 인프라 분야에서 최대 300억달러를 투자하는 협력체를 출범시켰다.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의 역할은 투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외교와 안보 분야에서도 활동 폭을 넓혀왔다. 이란과의 관계 관리에도 직접 관여하면서 동시에 미국과 글로벌 금융·투자업계 주요 인사들과 접촉해 UAE의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 구상을 알리고 있다.

제로 호르무즈 전략이 성공하면 UAE는 원유와 석유화학제품은 물론 알루미늄 등 주요 상품을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수출할 수 있는 선택지를 확보하게 된다. UAE가 동부 해안의 물류 거점을 강화하고 있는 배경이다.

특히 푸자이라가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푸자이라는 호르무즈 해협 밖 오만만에 위치해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인도양으로 연결될 수 있다.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는 지난 5월 ADNOC 회의에서 푸자이라로 연결되는 두 번째 송유관 건설을 앞당기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UAE는 이를 통해 아부다비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의 동부 해안 수송 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제로 호르무즈'가 해협의 지정학적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항만과 송유관 역시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런던정경대(LSE)의 슈테펜 헤르토그 교수는 "핵심 인프라를 직접 관장하는 셰이크 칼리드 왕세자의 역할은 온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 "UAE 동부 항만들 역시 이란과 가까워 드론과 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권에 있다"고 지적했다.

사남 바킬 채텀하우스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국장도 "호르무즈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이 해협의 불안정에 대비하는 데 중요하지만, 이란과 그 대리세력의 공격 범위가 확대될 경우 해협 바깥의 인프라도 새로운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UAE의 전략은 호르무즈 운송을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호르무즈가 막히더라도 국가 경제가 멈추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계 에너지와 물류의 핵심 병목을 단순히 외교와 군사력으로 관리하는 대신 항만·송유관·철도·투자자산을 묶어 경제적 우회로를 만드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이 같은 인프라 투자는 UAE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들의 물류·에너지 수송망에도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다만 막대한 비용과 함께 새로운 인프라의 안보 취약성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제로 호르무즈' 전략의 핵심 과제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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