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서울시 서울의료원장

심장병은 암에 이어 우리나라 사망 원인 2위이다. 2024년 심장과 혈관 질환의 진료비는 14조원으로 전체 암 진료비 10조70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사회적 부담이 되고 있다. 의학계는 그 동안 심장병의 주범으로 고지방 식이, 흡연, 운동 부족, 비만 등을 지목해왔다. 그런데 여러 연구 결과가 누적되면서 또 하나의 주요한 요인이 밝혀졌다. 바로 외로움이다.

연구는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작은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세운 로제토 마을의 심장병 사망률은 수십 년간 미국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두 명의 의사가 현장을 조사하면서 처음엔 지중해식 식단이 비결일 거라고 추측했지만, 주민들은 돼지기름으로 고기를 볶고 운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흡연과 음주도 여느 미국인과 다르지 않았다.

오랜 조사 끝에 의사들이 발견한 비밀은 ‘끈끈한 공동체’였다.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구조, 인구 2000명 마을에 22개의 취미 모임, 수시로 열리는 마을 잔치 등을 통해 마을 사람 모두가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를 챙겼다. 이후 젊은 세대가 도시로 빠져나가고 공동체가 해체되자, 심장병 사망률도 다른 도시와 같아졌다.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심장병이 들어선 것이다.

특히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연구진이 심혈관질환 이력이 없는 폐경기 여성(평균 79세) 5만7825명을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관찰한 결과 사회적 고립이 높은 그룹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8~18%포인트(p) 높았으며, 주관적인 외로움을 느낀 경우는 5~14%p 높았다. 그리고 두 요인이 모두 있을 때는 위험이 13~27%p까지 증가했다.

지난 2024년 발표된 영국 바이오뱅크 연구는 더 광범위하다. 심혈관질환이 없는 약 44만명을 15년간 관찰하여 분석한 결과,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각각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15%p씩 증가시켰다.

이런 최신 연구들은 외로움을 심각한 위험인자로 보고 있다. 외로움은 신체적 비활동, 염증, 스트레스 반응, 우울증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심장병을 유발한다. 실제로 미국심장학회(AHA)는 2022년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심장과 뇌 건강을 위협하는 독립인자로 규정했다. 이어 의료계와 사회 전반이 협력하여 환자의 사회적 연결성을 평가하고 개선하도록 촉구했다.

외로움이 심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뇌가 사회적 고립을 인식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심박수와 혈압이 오른다. 이 상태가 만성화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혈관 내피 세포에 염증을 일으키고, 거기에 콜레스테롤이 달라붙어 동맥경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별이나 사별 때 ‘가슴이 아프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뇌에서 통증 반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외로움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전체 1인가구 비율은 36.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 중에서 외로움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62.1%에 달했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중 46%가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매년 전 세계에서 87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직을 신설했고, 일본 역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심장학회는 “운동하세요” 대신 “자원봉사를 하세요”, “이웃과 정기 모임을 가지세요”를 권고하고 있다.

이웃과 나누는 짧은 대화, 엘리베이터에서 건네는 미소, 동네 모임에 한 번 더 나가는 것과 같은 소소한 일상이 쌓이면 혈관은 유연해지고 심장은 안정된다. 심장을 지키는 가장 오래된 약은 어쩌면 처음부터 인간관계 속에 있었는지 모른다. 로제토 마을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알고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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