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환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외환 위기의 파도가 몰아치던 1998년 신속한 기업 구조조정과 자본 유치를 명분으로 폐지되었던 ‘의무공개매수제’가 28년 만에 다시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하면서 제도 부활을 위한 입법 절차가 본궤도에 올랐다. 최근 국회의 입법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넘길 때 일반 소액주주에게도 동일한 가격과 조건으로 지분을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이 제도의 재도입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지분 25% 이상을 취득해서 최대주주가 되려고 하는 인수자는 발행 주식의 ‘50%+1주’까지 공개매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그동안 제도의 장단점을 둘러싸고 학계와 재계에서 치열한 논쟁이 오갔으나, 지배주주가 자신의 지분을 넘기며 챙기는 ‘경영권 프리미엄’의 혜택을 소액주주들과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시대적 명분이 반대 논리들을 이겨낸 것으로 풀이된다. 주주 평등주의 실현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분명 환영할 만한 진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무공개매수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주식회사 제도를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인 ‘경영권(기업통제권) 시장’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경영권 시장은 단순히 기업을 사고파는 장터가 아니라, 때로는 무능하거나 이기적인 경영자를 교체하게 만들고, 때로는 신성장 동력을 위한 미래형 전략적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처럼 기업을 인수하려는 주체가 ‘50%+1주’ 혹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잔여 지분 전량’을 의무적으로 매수해야 한다면, 기존처럼 30% 안팎의 지분 취득만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던 때와 비교해 사실상 두 배 가까운 자금이 필요해진다. 이렇게 인수 비용이라는 허들이 급격히 높아지면,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중견기업이나 전략적 투자자들은 역동적인 사업 재편에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된다. 국내 기업 간의 건전한 인수합병을 통한 산업의 신진대사가 끊기고 막대한 유동성을 앞세운 글로벌 거대 사모펀드(PE)나 해외 국부펀드들에게만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의무공개매수제의 재도입이 기정사실화된 현실이라면, 제도의 연착륙을 위한 정교하고 세심한 예외 설계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획일적인 룰을 시장 전체에 적용하는 방식에 비해 법률적 운용과 사안별 판단의 복잡성은 꽤 올라가겠지만, 예외 조항을 폭넓게 인정하는 유연성이 절실하다. 예컨대 기업 구조조정, 재무구조 개선, 회생 및 워크아웃 기업 인수, 혹은 동일 계열 내 지배구조 개편 등 경영권 이전이 불가피하거나 긴급한 경우에는 의무공개매수 적용을 과감히 배제하는 탄력적인 운영이 요구된다.
사경을 헤매는 부실기업을 정상화하겠다고 나선 구원투수에게마저 잔여 지분 매수라는 족쇄를 채운다면, 기업 회생과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조차 인수 부담으로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될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M&A 국면에서 소액주주가 지배주주 못지않은 매도 프리미엄을 보장받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주주 권리의 진일보다. 하지만 M&A 시점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 못지 않게 대다수 소액주주들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건설적인 구조 재편을 거듭해 본질적인 기업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자본차익과 배당금이라는 높은 수익을 거두는 일이다.
움츠러든 경영권 시장은 기업 혁신의 혈맥을 막는 셈이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기업가치의 영구적인 ‘디스카운트’로 돌아온다. 의무공개매수제는 소액주주의 평등권을 향한 의미 있는 전진이어야지, 한국 기업들의 미래지향적 진화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규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액주주 보호 강화와 M&A 생태계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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