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계 거주지 가버기로드 개신교 행진 허용

1990년대 유혈충돌의 상징…긴장 재점화 우려

가톨릭계 도로 점거…오렌지오더, 교회서 대기

수반도 현장 찾아…DUP “법원 결정 무시” 반발

개신교계 오렌지오더 행렬과 도로를 통제한 경찰. 로이터 연합뉴스
개신교계 오렌지오더 행렬과 도로를 통제한 경찰. 로이터 연합뉴스

북아일랜드에서 개신교계 연합주의자들의 상징인 ‘오렌지오더’의 행진을 둘러싸고 가톨릭계 민족주의자들과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90년대 심각한 충돌을 빚었던 포타다운의 가버기로드 행진이 약 30년 만에 허용되면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막아서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AP·AFP 통신 등에 따르면 북아일랜드 행진위원회는 지난 25일 포타다운의 드럼크리 교회에서 출발해 가톨릭계 민족주의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가버기로드를 지나는 오렌지오더 행진을 허용했다. 이후 주민 측의 법적 이의제기가 이어졌지만 벨파스트 법원은 행진을 막아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최종적으로 행진이 가능해졌다.

다만 행진에는 엄격한 조건이 붙었다. 참가자는 35명으로 제한됐으며 오전 8시에 시작해 오전 9시30분까지 끝내야 한다. 밴드와 일반 지지자들의 참여도 금지됐다. 오렌지오더가 가버기로드를 따라 행진할 수 있게 된 것은 1997년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이 경로는 1998년부터 공식적으로 금지돼 왔다.

오렌지오더는 1795년 창설된 개신교계 단체로, 17세기 가톨릭계 제임스 2세를 물리치고 영국 왕위에 오른 개신교도 윌리엄 3세를 기념하는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포타다운에서는 매년 드럼크리 교회에서 행사를 마친 뒤 돌아오는 행렬이 가톨릭계 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가버기로드를 통과하는 문제를 놓고 충돌이 반복됐다.

특히 1990년대 이 지역에서는 행진을 둘러싼 대치가 폭력 사태로 번지면서 북아일랜드 분쟁의 대표적인 충돌 지점이 됐다. 결국 1998년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이 체결된 해에 가버기로드 행진이 금지됐고, 이후 오렌지오더는 해당 구간을 우회해왔다.

이번에는 법원의 허용 결정에도 수천명의 가톨릭계 시위대가 폭우 속에서 가버기로드를 점거하며 행진을 막아섰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복면을 착용했으며, 경찰은 장갑차 등을 배치해 상황을 관리했다. 오렌지오더 참가자 35명은 드럼크리 교회 인근에서 도로가 확보되기를 기다렸다. 경찰은 양측에 평화적 대응과 법 준수를 촉구했다.

정치권도 갈라졌다. 북아일랜드 공동수반인 미셸 오닐은 현장을 찾아 지역 주민들의 반대 입장을 지지했다. 이에 민주연합당(DUP) 개빈 로빈슨 대표는 오닐 수반이 법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오닐 수반은 이번 결정으로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지역사회의 화해와 안정이 위협받고 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영국 정부도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크리스 브라이언트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은 이번 사태가 과거의 분열과 폭력으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자제를 호소했다. 아일랜드 정부 역시 성명을 통해 현재 상황을 매우 우려한다며 1998년 성금요일 협정 이후 어렵게 쌓아온 화해의 진전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 독립 이후에도 영국에 남았다. 대체로 가톨릭계가 중심인 민족주의 진영은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반면, 개신교계가 중심인 연합주의 진영은 영국 잔류를 주장한다. 이 같은 정체성의 대립은 1998년 성금요일 협정으로 대규모 폭력이 크게 줄어든 뒤에도 북아일랜드 정치와 사회에 남아 있다.

이번 사태는 과거 유혈충돌의 상징이었던 행진 경로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경찰은 이날 현재까지 심각한 폭력이나 대규모 소요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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