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쌈짓돈' 돼가는 200조 미래기금. [연합뉴스]
'정부 쌈짓돈' 돼가는 200조 미래기금. [연합뉴스]

반도체 경기 호조와 증시 활황 덕에 올해 국세 초과세수가 최소 5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년 신설을 추진 중인 '미래대응기금'의 전체 운용 규모도 당초 162조원에서 20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나라 곳간이 채워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부의 재정 운용 계획을 들여다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국민이 낸 혈세(血稅)를 감시의 사각지대에 밀어 넣고 정부 마음대로 쓰겠다는 재정 편의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예산 통제권을 대놓고 우회하려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미래기금의 운용 계획을 국회 심의 없이 최대 30%까지 자체 변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금 규모가 200조원을 넘어서면 정부가 국회 승인 없이 주무를 수 있는 돈만 무려 60조원에 달하게 된다. 헌법이 명시한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무력화하고, 정부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거대한 쌈짓돈'을 마련해 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예산 낭비를 막고 나라살림을 엄격하게 감시해야 할 기획예산처는 제 역할을 포기한 채 부처들의 방만 재정에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기금 지출 정부안에 따르면 내년도 미래기금 순수 지출사업 131건 가운데 건수 기준 약 95%에 해당하는 125건이 부처 요구 원안대로 예산안에 반영되거나 추가 혹은 증액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처의 예산 요구보다 감액된 사업은 6건에 불과했다. 119건은 단 1원도 깎이지 않았다. 검증되지 않은 사업들까지 세수 호황을 틈타 무더기로 밀어 넣었는데도, 현미경 심사는커녕 무조건 통과를 시켜준 것이다. 재정의 '최후 보루'가 제 기능을 상실하고 부처들의 '세금 잔치'를 방조한 꼴이다.

지금 대한민국 재정은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국가채무 증가로 인해 몇 년 뒤에는 한 해에만 50조원이 넘는 혈세를 국채 이자비용으로 써야할 판이다.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미래 세대의 등골을 휘게 만들고 있다면, 초과세수가 발생했을 때 먼저 빚을 갚아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정석이다.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와 낮은 수익률의 기금에 쌓아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 이 기금이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표(票)퓰리즘 실탄'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도 자초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미래기금의 지방계정에 반영한 국고 보조사업비를 다음다음 회계연도까지 최장 3년간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과 '미래대응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 보조사업비 집행 기간을 3년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선거를 앞두고 여당 성향 지역이나 격전지에 선심성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 생색을 내기 위한 판을 깐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선거철 표심을 잡기 위한 퍼주기식 현금성 사업에 이 돈이 악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정부는 정책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민주주의 재정의 기본 원칙은 투명성과 견제다. 감시 없는 돈은 반드시 낭비되기 마련이다. 정부는 초과세수를 나랏빚 상환에 우선적으로 투입하고, 기금의 자율 변경 한도를 대폭 낮춰 국회의 철저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국회 역시 이번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의 독주를 막을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는 정권의 쌈짓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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