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영화 ‘가능한 사랑’의 제작이 자칫 불가능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지원금을 15억원이나 받았다. 이 지원금을 마중물로 해서 제작투자를 더 받아 제작을 완료하면 됐었다. 하지만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제작에 난항을 겪다가 지원금 15억원을 반납했다고 한다.
당초 기획된 총제작비는 60억~80억원 정도였다. 그러니까 겨우 45억~65억원 정도의 투자를 받지 못해 이렇게 됐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게 ‘겨우’라고 할 정도로 적은 액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45억~65억원’ 정도라고 한 건 이 영화가 무려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신작이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은 국가의 살아있는 중요문화자산 같은 존재다. 우리나라 소프트파워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해외 평단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는 데뷔작 ‘초록물고기’에 이어 ‘박하사탕’까지, 단 두 편으로 한국영화 대표 감독 중의 한 명이 되었다. ‘초록물고기’로 송강호, ‘박하사탕’으로 설경구와 문소리 등 한국 대표 연기파 배우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이어진 ‘오아시스’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면서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밀양’과 ‘시’는 각각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다음 작품인 ‘버닝’은 비록 칸 영화제 수상은 불발됐지만 해외 매체들로부터 격찬을 받았고 그후 오랫동안 서구권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이렇게 단 6편의 영화로 세계적인 작가가 됐을 정도로 모든 작품이 고루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 이 감독이 8년 만에 7번째 작품을 제작한다고 하니 당연히 기대가 모일 수밖에 없었다. 해외 영화제들은 자신들이 발굴한 작가에게 계속해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 감독은 칸과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했었기 때문에 신작이 그 영화제들에 초청돼서 수상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의 신작은 한국을 빛내는 문화 자산이 될 것이 확실시됐다.
그래서 45억~65억원 정도의 투자금을 ‘겨우’라고 표현한 것이다. 자국의 명성을 세계에 드높이는 문화자산을 이 정도 금액에 확보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그 정도 돈을 구하지 못해 제작이 무산될 뻔했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이러고도 문화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투자자로 나선 것은 미국 OTT 자본인 넷플릭스였다. 그들은 120억~130억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다고 한다. 당초 예산을 뛰어넘는 투자금이 작품의 완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선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저렴하게 확보하는 것이니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넷플릭스 콘텐츠가 됐기 때문에 이 작품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출품됐다. 과거엔 세계 3대 영화제라고 해서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가 모두 비슷한 위상이었지만 최근 들어선 칸의 주목도가 점점 올라갔다. 칸 영화제는 OTT 영화의 경쟁 부문 출품을 제한하는데 베니스 영화제는 그렇지 않다. ‘가능한 사랑’은 얼마든지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돼 수상할 수 있었지만, OTT 영화라서 베니스 영화제로 간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선 당연히 격찬을 받았고, 기자회견장에서 서구권 기자들이 이 감독과 출연진에게 사인 공세를 펼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시사회 의 뜨거운 반응에 설경구와 조인성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결국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받았고 현재 아카데미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유럽에 이어 미국의 매체에서도 높은 평가가 이어진다.
대부분의 영화는 성공 보다 실패 가능성이 훨씬 높아서 영화 투자는 위험하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신작이라면 국가를 빛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90% 이상이라고 기대되는 확실한 작품이었다. 이런 작품조차 제작이 어려운 풍토라면 실패가능성이 높은 일반 영화들은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가능한 사랑’ 측은 “한국 영화 투자 체력이 거의 바닥이어서 아주 상업적인 장르 영화조차도 투자를 못 받는 시장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속에서 해외 OTT 자본에 종속돼가는 것이다. 문화강국의 내실화를 위해선 더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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