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장
"요즘 어디서 일하니?", "어디든 일단 취직은 해야지.", "일단 눈높이를 낮추고 경력부터 쌓아라."
취업준비생들은 명절이 무섭다. 오래간만에 만나 반가워야 할 삼촌, 이모들이 청문위원으로 돌변해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악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야 하는 잔혹한 청문회장을 피하기 위해 명절 내내 카페나 독서실, 게임방을 전전해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극심한 고용시장의 위기와 얼어붙은 민심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증이다. 실제로 20대 취업자 수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20대 취업자는 월평균 327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47만2000명)보다 19만3000명 줄었다.
인구 감소의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청년 일자리의 감소 영향이 더 크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1∼8월 20대 인구는 월평균 555만명으로 전년보다 3.5% 줄었다. 하지만, 취업자 수 감소율은 그보다 많은 5.6%였다.
이 같은 청년 일자리 감소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여러 구조적 문제점이 담겨 있다. 일단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들을 비롯해 다수의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기피하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아직 신입 공채를 유지하는 삼성을 제외한 다수의 기업들이 채용 방식을 수시로 바꿨고, 이 때문에 '좋은 첫 직장'을 얻을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중소기업 취업 길이 쉬운 것도 아니다.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 산업이 업황 악화로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 소위 '즉시 전력감'이 아닌 신입을 뽑을 여력이 없다. 신입을 교육시킬 여력은 더더욱 없다. 여기에 경직된 노동제도와 기득권의 이기심까지 더해지면서 청년 일자리의 문은 더 좁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인재 육성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한 번 뽑으면 돌이킬 수 없는 국내 노동제도의 현실을 고려하면 '가능성의 신입'보다는 '검증된 경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노조는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월급도 줄이지 못하게 하고 인력 배치 전환도 노조 허락 없이 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최근 사회를 흔들었던 기득권 노조의 'N% 성과급' 논란은 기업들의 채용의지를 더 위축시키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의 눈높이를 높이고 상대적 박탈감만 더 증폭시키는 사회 갈등을 만들어냈다.
경직된 노동제도만큼 큰 문제는 교육과 시스템이다. 쉬는 청년들이 늘고 있음에도 기업들은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를 단순히 요즘 청년들의 능력 부족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분명 과거에 비해 교육 수준은 높아졌고, 대부분의 청년들은 대졸 이상 고학력자다. 그럼에도 구직자와 기업 모두 '없다'고 한다면 이는 획일적인 성적지상주의와 현장과의 괴리 때문일 것이다.
청년 일자리는 단순히 수치만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사라지고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단기 아르바이트성 공공일자리 같은 숫자 채우기식 땜질 처방으로 눈 가리기를 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정부는 최근 최대 480만원의 청년 일자리 도약 장려금 지원과 비수도권 취업 청년 지원 확대 등 대대적인 예산 집행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단기 땜질식 처방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직장을 만들고 동시에 기업들이 안심하고 채용을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접점'을 찾는일이다. 일자리도 시장이고, 시장은 피가 돌듯 '선순환'이 돼야 한다. 필자는 대학 때 외환위기를 겪었고, 그로 인해 취업준비생들의 고통이 얼마나 뼈저린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더 이상 후배들이,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청문회'를 겪는 일 없이 가족들과 정을 나누고 덕담을 듣는 따뜻한 명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박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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