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등 8개국에도 50억달러 출자 요청

총 100억달러 구상, 송유관·정유시설 복구

호르무즈 의존도 낮추는 방안도 적극 검토

종전 전 재건에 신중론…각국 이해관계 달라

트럼프 대통령과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트럼프 대통령과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UAE 대통령.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의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중동 에너지 기반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50억달러(약 6조8000억원)를 출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이 입수한 관련 문건과 미국·중동 관계자들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8개국에도 미국과 같은 규모인 50억달러를 출자하도록 요청해 총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 규모의 재건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출자 요청 대상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이라크, 요르단이다. 기금 명칭은 ‘동맹 신뢰·건설 파트너십’(Partnership for Allied Trust and Construction·PACT)으로,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가 운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기금은 약 7개월간 이어진 이란전으로 파괴된 송유관과 정유시설 등 에너지 기반시설을 복구하는 데 우선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원유와 가스 수송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체 수송망 구축도 지원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다만 아직 관련국들과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기금의 규모와 운용 방식 등 세부 내용은 변경될 수 있다. 실제 각국의 참여 여부와 출자 시점 역시 확정되지 않았다고 미국 당국자들은 전했다.

이번 구상은 이란전이 중동의 에너지 공급망에 남긴 충격이 상당하다는 미국 행정부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WSJ은 전쟁 과정에서 역내 송유관과 정유시설 등이 광범위하게 파괴되면서 에너지 인프라 복구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졌다는 점을 미국 정부가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월 말 시작된 이란전에서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중동 지역의 정유시설과 유전, 천연가스 수출 터미널 수십 곳이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적으로 다시 개방되더라도 에너지 공급망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에너지 전문가와 당국자들은 역내 에너지 기반시설을 복구하는 데 수백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재건의 시점이다. 중동 일각에서는 이란과의 완전한 평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에너지시설 복구에 나서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복구된 시설이 다시 이란의 미사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을 경우 재건 비용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금에 대한 각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점도 변수다. 사우디와 UAE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원유와 에너지를 수송할 수 있는 대체 인프라를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하고 있다. 반면 쿠웨이트와 카타르 등은 에너지 수출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결국 미국이 제안한 재건 기금은 단순한 전후 복구를 넘어 중동 에너지 공급망 자체를 재편하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각국의 안보·에너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데다 이란과의 관계가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실제 기금 조성과 사업 추진까지는 적지 않은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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