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핵심 역할 ‘m브릿지’서 지난해 5월 이미 이탈

美 금융망 안 거치는 다중 CBDC 플랫폼으로 주목

달러 패권 흔들림 속 사우디 ‘줄타기’…“실증 완료”

美 달러화 외 새로운 결제 인프라 병존 가능성 실험

중국 인민은행과 위안화.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 인민은행과 위안화.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이 핵심 참여국으로 있는 국제 디지털 결제 플랫폼 ‘m브릿지’(mBridge)에서 지난해 이미 탈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위안화를 중심으로 한 대안적 국제결제망 구축 움직임이 주목받는 가운데 나온 결정이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사우디가 미국의 압박 때문에 중국과의 금융협력을 중단했다거나 ‘탈달러’ 전략을 포기한 것으로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현지시간) 사우디 중앙은행(SAMA)이 2025년 5월 m브릿지의 실증사업 개념증명(PoC)을 마친 뒤 프로젝트에서 빠졌다고 보도했다. SAMA는 FT에 이번 결정이 당초 계획에 따른 것이라며 프로젝트 참여 범위가 제한적이었던 만큼 이를 다른 의미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부정확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m브릿지는 중국 인민은행 디지털화폐연구소와 홍콩금융관리국, 태국 중앙은행,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 등이 참여해 개발한 다중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기반 국경 간 결제 플랫폼​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자체 원장을 통해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이 중개은행을 거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결제·외환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m브릿지는 2024년 최소기능제품(MVP) 단계에 도달했다. 사우디 중앙은행도 같은 해 정식 참여자로 합류했다.

이 때문에 m브릿지는 기술적 효율성뿐 아니라 지정학적 의미에서도 주목받았다. 기존 국제결제망에서는 달러와 미국 금융기관, 글로벌 은행의 중개망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m브릿지와 같은 다중 CBDC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국가 간 결제를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에서 직접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융제재가 국제결제망을 통해 행사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달러 중심 금융질서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사우디의 참여는 특히 상징성이 컸다. 사우디는 미국의 전통적인 중동 동맹국이면서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수출국으로 미국 달러 결제를 원칙으로 하는 ‘페트로 달러’의 축을 형성한다. 그런가 하면 사우디는 중국의 핵심 교역 상대국이다. 사우디가 2024년 m브릿지의 정식 참여자로 들어갔을 당시에도 이를 단순한 기술 프로젝트 이상의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사우디는 약 1년 만에 프로젝트에서 빠진 것으로 이번에 확인됐다. SAMA는 미국의 압박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도 “더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FT는 사우디가 프로젝트의 기술적 실증 단계가 끝난 뒤 공개적으로 참여를 종료한 배경에 미국의 금융·외교적 시선을 의식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다만 이는 사우디가 밝힌 공식적인 설명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m브릿지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앞서 BIS는 2024년 10월 m브릿지에서 빠지고 프로젝트를 참여 중앙은행들에 넘겼다. 당시 BIS 측은 4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해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며 정치적 고려나 프로젝트 실패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BIS는 m브릿지가 BRICS의 달러 우회 시스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제재 회피를 위한 통로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사우디의 m브릿지 탈퇴는 국제통화 질서의 변화가 더 이상 달러와 위안화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한 구도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1970년대 이후 사우디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의 원유 거래와 달러 금융시스템의 결합은 미국 달러의 국제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구조적 기반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가 자국 통화 결제와 대체 결제망을 확대하고 있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와 토큰화 기술까지 새로운 국제결제 인프라 후보로 등장했다.

그렇다고 달러 패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4분기 56.77%였고, 2026년 1분기에는 57.13%로 오히려 상승했다. 위안화 비중은 2025년 4분기 1.95%에 그쳤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의 압도적인 유동성과 미국 국채시장 규모 등을 고려하면 위안화가 단기간에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사우디의 m브릿지 탈퇴를 ‘위안화의 패배’나 ‘달러 패권의 회복’으로 해석하는 것은 모두 과도하다. 오히려 이번 사례는 사우디가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의 금융질서에 완전히 편입되기보다 양쪽과의 관계를 활용하면서 선택지를 넓히려는 전략적 행보로 볼 여지가 있다.

사우디는 미국 중심의 기존 금융질서를 당장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무역·투자 관계를 확대하고 새로운 결제 기술을 시험한 것 자체가 최근 국제금융 질서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번 사안은 달러 중심 체제에서 미국 달러화 외에 새로운 결제 인프라가 병존하기 시작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규화 대기자(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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