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농촌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과 부동산 투기 근절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농촌에서는 “농지를 소유한 것 자체가 투기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농지 전수조사 이후 농지 거래가 위축되고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언젠가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도 잠재적 투기꾼으로 바라보는 정부 시선이 영 마뜩찮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월 농지관리의 부실을 지적하며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법률 위반 실태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5월에는 “농사를 안 짓는 사람은 농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농지법 위반에 대한 처분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5월부터 1996년 이후 거래된 전국 1013만 필지의 농지를 조사하고, 이 가운데 284만 필지(27%)를 불법 임대차·무단 휴경·불법 전용 등의 ‘의심 농지’로 분류했다. 8월부터는 약 55만 필지에 조사원을 직접 보내 실제 경작 여부 등 심층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농지법 개정을 통해 법령위반 토지에 대한 농지처분명령을 지방정부의 의무 규정으로 바꿨다.
정부는 경자유전을 명분으로 앞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처럼 농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농지를 소유했다고 투기 목적이 있다고 몰아세워서도 안 된다. 직접 경작하지 않는다고 농지 매각을 강요하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농지, 고령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 토지, 귀농을 준비하며 미리 마련한 농지 등 저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120년간 농지에 대한 대규모 조사는 크게 3차례 있었다. 1910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은 토지 소유권과 경계를 확정하고 근대적 지적제도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일제는 이 과정에서 일본인의 토지 소유를 합법화했다. 1949년 농지개혁을 앞두고 실시된 농촌·농지 실태조사는 실제 누가 농사를 짓고 있는지를 파악해 지주의 농지를 경작 농민에게 분배하였다. 당시 만연한 소작농 제도를 청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26년의 조사는 변화된 농지의 소유 및 이용 실태를 77년 만에 파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조사는 어디까지나 농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조사 결과를 기계적인 농지 처분명령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농촌실태를 무시하고, 새로운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2026년 대한민국은 경자유전 원칙을 도입한 1949년과는 너무나 다르다. 당시 농업 인구는 남한 인구 2000만명 중 약 1375만명(68.8%)에 달했다. 그때는 농업국가였지만 지금은 산업 중심이 제조업, 서비스업으로 옮겨왔다. 농업 인구가 약 2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에도 미치지 못한다.
농촌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4년 농가인구 가운데 65세 이상은 55.8%, 70세 이상만 해도 78만5000명(39.2%)에 이른다. 청년이 떠난 농촌의 일손을 외국인 노동자가 메우고 있다. 지금은 농촌 이주를 적극 장려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그렇기에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하라는 강제가 공허한 이유이다.
전국의 농지 소유자를 잠재적 투기자로 바라보는 것 역시 위험하다. 농지 투기가 염려된다면 농지 매매에 따른 개발이익 환수와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면 된다. 단기간 반복 거래나 개발예정지 주변의 비정상적인 농지 취득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모든 토지 거래가 전산화된 상황에서 투기 가능성이 높은 거래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농지 역시 지역과 용도에 따라 차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도권 개발예정지 주변 농지와 인구가 사라지는 지역의 논과 밭을 같은 잣대로 바라봐서도 안된다. 흔히 ‘절대농지’라고 부르는 농업진흥구역의 농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철저하게 보호하되, 농업진흥지역 밖의 토지는 지역과 이용 상태에 따라 소유·임대·활용 규제를 보다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헌법 121조는 ‘국가는 경자유전 원칙이 달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국가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동안 경자유전 원칙은 농민의 농토 접근성을 높여서 자작농을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농민이 전체 인구의 4% 미만인 상황에서 경자유전의 문구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경자유전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변화된 농촌 현실에 반영하는 탄력적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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