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호 영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겸임교수
한국관광공사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AI 여행비서’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여행 전에 비자와 환율, 날씨를 묻고 여행 중에는 교통편과 관광지를 추천받으며, 문제가 생기면 필요한 도움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AI 여행비서의 성패를 단순히 ‘얼마나 똑똑한 관광 챗봇인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관광 현장에서 외국인들을 만나보면 질문은 훨씬 구체적이다. “막차를 놓쳤는데 부산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을까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는데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요?”
관광지와 맛집 정보는 검색할 수 있고 이동 방법도 AI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여행 중에는 현지 상황을 확인하거나 직접 전화해야 하고, 실제 도움을 줄 사람과 연결돼야 하는 순간도 생긴다. 그래서 공공 AI 여행비서에는 세 축이 필요하다. 반복적인 질문은 AI가 해결하고, AI만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는 사람에게 연결하며,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질문은 다시 관광 서비스와 정책 개선에 활용하는 구조다.
첫째, 반복되는 관광정보 검색과 상담, 번역과 추천은 AI가 맡을 수 있다. 여행자는 여러 사이트와 앱을 찾아다니지 않고 하나의 창구에서 필요한 답을 얻는다.
둘째, AI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기존 현장 네트워크와 연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조직을 만들 필요는 없다. 1330 관광안내, 관광통역안내사, 지역 관광안내소, 지역관광조직(DMO), 관광사업체 등이 이미 존재한다. 질문의 내용과 위치에 따라 적절한 주체로 연결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전화번호나 홈페이지를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여행자가 처음부터 상황을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AI와 나눈 대화의 맥락을 바탕으로 상담과 위치 안내, 문의와 예약까지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보 제공’이 ‘문제 해결’로 넘어간다.
이 문제를 필자는 8년 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경험했다. 2018년 1월 ‘온라인 여행비서’라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여행자가 낯선 곳에서 언제든 묻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실시간 상담’, ‘맞춤형 관광정보’, ‘예약과 이동 지원’ 등을 담았고 한국관광공사 사내벤처 1호로 선정됐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람의 실시간 상담에 의존해야 했다. 24시간 서비스를 운영하기 어려웠고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인력과 비용도 함께 증가했다. 아이디어가 틀렸다기보다 너무 일찍 나온 셈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사람이 해야 했던 상담과 정보 탐색, 번역과 추천의 상당 부분을 생성형 AI가 맡을 수 있게 됐다. 기술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과거에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아이디어에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셋째, 여행자의 질문을 다시 관광 정책으로 돌려줘야 한다. AI에는 여행자의 실제 불편이 질문의 형태로 축적된다. 어느 지역에서 이동을 어려워하는지, 무엇을 반복해서 찾는지, 어디에서 예약이나 언어 문제를 겪는지가 드러난다. 이를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지역·시간·주제별로 익명화해 분석하면 현장의 문제가 보인다.
특정 지역의 대중교통 연결 방법을 묻는 질문이 반복된다면 관광지 홍보보다 접근성 개선이 먼저일 수 있다. 당일 체험 예약이나 외국어 문의가 계속 나온다면 예약 시스템이나 운영 방식을 손봐야 한다는 신호다.
이 데이터는 월별이나 분기별로 지자체와 지역관광조직에 환류할 수 있다. 교통 질문은 접근성 개선으로, 언어 질문은 다국어 안내 개선으로, 체험과 예약 질문은 상품과 운영 개선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국에 모든 기능을 적용할 필요도 없다. 외국인 방문이 많고 1330, 관광안내소, DMO 등 현장 연결망이 갖춰진 2~3개 지역에서 먼저 실증해 볼 수 있다.
성과 지표도 분명하다. AI 자체 해결률, 사람 연결 후 문제 해결률, 이용자 만족도, 반복 질문이 실제 지역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를 측정하면 된다. 효과가 확인된 기능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면 된다.
결국 핵심은 기술 하나가 아닐 것이다. AI가 답하고, 사람이 돕고, 여행자의 질문이 다시 정책을 움직이는 구조, 이 세 축이 맞물릴 때 AI 여행비서는 정보 제공을 넘어 여행자의 이동과 경험, 사람과 지역을 이어주는 공공 관광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가 여행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가 낯선 곳에서 덜 불안하고, 더 편리하게 이동하며, 더 좋은 경험과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넓혀주는 것이다.
8년 전 ‘온라인 여행비서’를 구상했을 때도 결국 바랐던 것은 같은 것이었다. 여행자가 낯선 곳에서 혼자 남겨지지 않게 하는 것. 당시에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아야 했고, 지금은 AI가 그 일을 훨씬 더 잘 도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여행자의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필요한 것은 결국, 길을 알려주는 답 하나와 그 길 끝에서 만날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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