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선 지식재산처장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을 모아 못을 이루면 용이 생긴다.”
중국 고전 ‘순자’(荀子) 권학편에 나오는 ‘적토성산’(積土成山)은 작은 노력의 축적이 결국 큰 변화를 이룬다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이 고사성어의 뜻처럼 첨단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연구자의 도전과 기업의 투자, 연구개발의 성과, 그리고 이를 보호하는 지식재산이 차곡차곡 축적될 때 비로소 국가의 미래를 이끌 혁신이 완성된다.
최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과 기술패권 경쟁의 심화로 첨단 반도체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반도체는 이제 산업 경쟁력을 넘어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EUV(Extreme Ultraviolet, 극자외선) 기술이 있다. EUV는 반도체 회로를 더욱 정교하게 구현해 AI 반도체와 고성능 반도체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다. 오늘날 EUV 경쟁력은 국가의 기술 주권과 미래 산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EUV는 어느 한 기업의 역량만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첨단 기술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기계’로 불리는 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네덜란드의 ASML이라는 회사의 성공사례는 첨단기술 경쟁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ASML은 초정밀 광학과 광원, 고객사와의 긴밀한 공동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친 협력과 견고한 공급망, 그리고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EUV 생태계를 함께 구축해 왔다.
그러나 첨단기술 경쟁력은 공급망과 협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연구개발 성과를 보호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재산이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EUV 생태계의 구성요소인 노광장비와 포토레지스트, 포토마스크 등 다양한 핵심 기술에는 오랜 연구개발을 통해 축적된 방대한 특허 빅데이터가 자리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산업에서 특허는 연구 성과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기술혁신과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이다. 이러한 혁신이 적시에 권리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역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과제이다.
지식재산처는 첨단 반도체 기술이 신속하게 권리화될 수 있도록 심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전담 특허심사 조직인 ‘반도체심사추진단’을 출범시켜 17개월 이상이던 심사 대기기간을 10개월 이내로 단축했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 출원 중 외국에서도 권리 확보를 동시에 하려는 경우에는 1개월 이내 심사에 착수하는 초고속 심사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AI·바이오 창업기업들은 특허 심사 대기 기간이 20개월에서 1개월로 95% 단축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오는 11월부터는 청년 창업가들까지 제도를 확대해 신속한 권리확보를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산업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반도체 핵심기술의 특허 동향을 공유하고, 현장의 애로 사항은 심사에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술패권 전쟁 시대에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의 운명은 적토성산의 지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재산처의 역할도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기술 개발의 속도 경쟁 속에서 연구개발의 성과물에 대한 신속한 권리화를 통해 수 많은 관련 특허들이 모여 적토성산의 지혜가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기술이 대한민국의 새 로운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든든한 지식재산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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