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미국 성인 시민 1인당 5000달러를 지급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1인당 5000달러 지급’이라는 파격 카드를 꺼냈다. 재원도, 지급 방법도 불분명하지만 미국 정치는 단숨에 논쟁에 빠져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림수는 과연 무엇일까.

◆천문학적 재원, 측근들도 조달 방안 제각각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에서 선거 승리를 호소하면서 느닷없이 ‘5000달러 카드’를 꺼냈다.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을 지키면 모든 미국 성인에게 50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돈으로 690만원이다. 이를 자신의 이름을 붙여 ‘트럼프 배당금(Trump Dividend)’이라고 불렀다. 행사장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5000달러 배당금’을 반드시 현실화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11일에도 트루스소셜에 ‘미국 국민들은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5000달러 배당금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썼다. 글 말미에 대문자로 ‘공화당에 투표하라(VOTE REPUBLICAN)’고 적었다.

미국 언론은 성인 1명당 5000달러를 지급하는 데 1조2000억달러(약 1661조6400억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미 연간 국방비 지출액보다 큰 것이자 웬만한 국가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을 뛰어넘는 규모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이미 위험 수위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돈을 추가로 풀 경우 재정적자를 더 늘리는 것은 물론 물가까지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1조달러가 넘는 돈을 어디서 마련할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급할지, 의회 동의를 어떻게 얻을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 대신 “공화당이 승리하면 5000달러를 받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만 반복했다.

측근들의 설명은 제각각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트럼프 플래티넘 카드’ 판매 수입과 정부 보유 인텔 지분을 재원으로 거론했다. 플래티넘 카드는 해외 부유층을 겨냥한 장기체류·세제우대 프로그램이다. 해외 부자들이 500만달러를 내면 이 카드를 발급해 준다. 미국 밖에서 올린 소득에 대해 미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더라도 최장 270일간 미국에 체류할 수 있다. 러트닉 장관은 “(세금 면제 조건으로) 미국에 오기를 원하는 10만명 넘는 사람들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며 “1인당 500만달러씩 10만명이면 5000억달러”라고 말했다. 그러나 플래티넘 카드로 거둘 수 있다고 제시한 5000억달러는 실제 확보된 재원이 아닌 잠재적 수입이다. 인텔 주식의 상승분 역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장부상 이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의회의 예산조정 절차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의회 승인이 필요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나 “납세자의 돈은 쓰지 않는다”는 러트닉 장관의 입장과 엇갈린다.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한 공약을 먼저 던진 뒤 측근들이 뒤늦게 해법을 찾는 모양새다.

여러 방안 가운데 그나마 무게가 실리는 것은 관세 수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재원으로 관세 수입을 지목했다. 그는 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부과하는 ‘아름다운 관세’로 거둔 돈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JD 밴스 부통령은 이 구상을 지지하면서 지급 대상에서 부유층을 제외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관세는 외국 기업이 미국 국민에게 보내주는 공짜 돈이 아니다. 상당 부분이 수입업체와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미국 수입업체가 세관에 관세를 내고, 수입업체는 늘어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판매가격을 올린다. 결국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관세를 걷어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구조라면 한쪽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다른 쪽 주머니에 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관세 수입만으로는 배당금 재원을 감당하기도 어렵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이번 회계연도 순관세수입은 현재까지 약 1673억달러로, 1조2000억달러로 추산되는 배당금의 7분의 1 수준이다. 부족한 재원을 국채 발행 등 차입으로 메울 경우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즉각 ‘표 매수’라며 공격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은 매표 정치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고, 데이비드 슈바이커트 하원의원도 대규모 현금 지급이 물가와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온 토머스 매시 하원의원은 “5000달러로 11월 선거에서 표를 사겠다니 모욕적”이라고 비꼬았다.

◆성사돼도 무산돼도 ‘남는 장사’

재원 논란과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이 겨냥하는 지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에게 5000달러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어쩌면 두 번째 문제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가진 정치적 파괴력이다. 5000달러라는 구체적인 액수는 ‘감세’나 ‘경제성장’ 같은 추상적 구호보다 유권자의 귀에 훨씬 강하게 꽂힌다.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이 커진 노동자와 중산층에게는 더욱 그렇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미국 주요 언론매체들은 일제히 ‘5000달러’를 헤드라인으로 올렸다. NBC 화면에는 커다란 ‘$5000’ 숫자가 등장했다. ABC와 CBS도 재원과 실현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트럼프에게 우호적인 폭스뉴스뿐 아니라 비판적인 언론들까지 ‘트럼프의 5000달러’를 앞다퉈 다뤘다. 찬성이든 반대든 미국 정치의 시선이 다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쏠린 것이다. 바로 여기에 첫 번째 노림수가 있다. 5000달러를 실제 지급하기 전에 ‘정치적 배당’부터 챙긴 것이다.

두 번째 계산은 더 치밀하다. 현금 지급에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혼자 결정할 수 없다. 공화당이 관련 법안을 내고 의회에서 통과시키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성과라고 주장할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이 반대해 무산되면 “민주당이 여러분의 5000달러를 빼앗았다”고 공격할 것이다. 성사되면 이기는 것이고, 무산돼도 정치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생기는 구조다.

‘5000달러 지급’ 공약 자체를 법적으로 문제 삼기도 쉽지 않다.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현금을 약속하는 것이 노골적인 매표 행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책 공약 자체를 곧바로 불법이나 뇌물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민주·공화 양당 모두 선거 과정에서 감세나 현금 지원 등 경제적 혜택을 공약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현금 지급 그 자체보다 ‘누가 당신에게 돈을 주고, 누가 그것을 막는가’라는 단순 명료한 정치 구도를 만드는 데 있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복잡한 정책을 짧고 강렬한 구호와 숫자로 바꾸는 데 능했다. 국경에는 장벽을, 무역에는 관세를 내세웠고 이번에는 유권자의 지갑 앞에 5000달러를 꺼내놓았다. 재원이 어디서 나오고 의회 문턱을 어떻게 넘을지는 복잡하지만, 유권자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트럼프가 5000달러를 준다’는 것이다.

이 공약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단 한 푼도 주지 않고도 미국 정치의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 끌어모았다는 점이다. 배당금은 지급되지 않았지만, 선거판은 이미 ‘5000달러’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영서 논설위원(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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