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 주식 줄이고 글로벌 채권 확대
운용사 3곳에 배분…운용보수 2배로
한국은행이 국내 자산운용사의 외화자산 운용 역량을 높이기 위해 지원 방식의 무게중심을 '규모 확대'에서 '실력 강화'로 옮긴다. 민간의 해외 주식투자 시장이 충분히 성장했다고 보고 국내 운용사에 맡긴 선진국 주식 중 약 10억달러를 글로벌 채권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미국에 한정됐던 채권 투자 대상을 약 30개국으로 넓혀 국내 운용사의 글로벌 투자 경험을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한은은 16일 국내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외화자산 위탁운용 포트폴리오를 이같이 재편한다고 밝혔다. 국내 운용사가 운용하던 선진국 주식 패시브 펀드 일부를 줄이는 대신 채권 위탁 규모를 확대하고 기존 미국 종합채권 전략을 글로벌 종합채권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정훈 한은 외자운용원 위탁운용팀장은 이날 백브리핑에서 "3개사 정도를 대상으로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전체적으로 10억달러 안팎을 주식에서 채권으로 옮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이전 규모는 운용사들과의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다만 이번 조치로 한은 외화자산 전체의 주식·채권 비중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운용사에서 회수한 주식 자금은 해외 운용사 주식 펀드로 이전하고, 해외 운용사가 맡고 있던 채권 자금 일부를 국내 운용사에 배분하는 방식이다.
김 팀장은 "주식 부문에서는 해외 운용사 비중이 늘고 채권 부문에서는 국내 운용사 비중이 확대된다"며 "국내사와 해외사의 비중만 내부적으로 조정하는 것이어서 전체 주식·채권 규모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외화자산을 해외에서 직접 이전하기 때문에 원화 환전이나 별도의 외환 수요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번에 도입하는 글로벌 종합채권 전략은 미국 채권만 다루던 기존 전략보다 운용 난도가 크게 높다. 약 28개국, 3만개 안팎의 채권을 대상으로 각국의 경기 흐름과 중앙은행 통화정책, 환율 변동 등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 벤치마크를 따라가는 선진국 주식 패시브 운용과 달리 국가·통화·채권별 투자 비중을 능동적으로 결정해 초과수익을 내야 한다.
한은이 국내 운용사에 지급하는 운용보수도 크게 늘어난다. 김 팀장은 "난도가 높은 펀드를 맡기는 만큼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 한은이 지급하는 운용보수가 두 배 넘게 올라간다"며 "국내 운용사 지원을 축소하기 위한 조치는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2012년 중국 주식을 시작으로 2019년 선진국 주식, 2022년 미국 종합채권까지 국내 운용사에 맡기는 외화자산의 범위를 넓혀왔다. 국내 운용사 위탁 규모도 2012년 1억달러에서 2025년 32억1000만달러로 증가했다.
그 사이 민간의 해외 주식투자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국내 해외 주식펀드 순자산은 2020년 27조7000억원에서 올해 6월 163조원으로 불어났다. 이 가운데 상장지수펀드(ETF) 순자산은 같은 기간 1조6000억원에서 126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한은은 해외 주식 분야에서는 국내 운용사들이 독자적인 사업 기반을 갖춘 만큼 정책적 지원 필요성이 이전보다 낮아졌다고 판단했다.
반면 해외 채권은 국내 운용사들의 경험과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분야로 꼽힌다. 글로벌 채권을 운용하려면 해외 거래망과 리서치·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펀드 하나를 국제시장에서 운용하려면 최소 2억~3억달러가 필요하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은 국내 운용사가 글로벌 채권 운용 실적을 쌓으면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의 외환보유액을 해외 시장 진입을 위한 '마중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국내 운용사 위탁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10%까지 높이겠다는 기존 방침도 유지한다. 현재 국내사 위탁 비중은 외환보유액 감소 등의 영향으로 3%대 후반에 머물고 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이 안정적으로 증가하면 국내 운용사에 자금을 우선 배분할 계획이다.
조석방 한은 외자운용원 외자기획부장은 "단기간에 1~2년 안에 10%를 달성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외환보유액이 안정적으로 늘어나면 국내사에 우선 배분해 중장기적으로 10%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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