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축유 스와프 등 정책 역량 총동원
중동 전쟁 격화에 따른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출 차질로 국제유가가 다시 불붙으면서,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깊은 난제에 빠졌다.
제도를 종료하자니 물가 폭탄이 우려되고, 유지하자니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9∼10월 원유 도입분은 상당 부분 확보돼 당장의 수급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11월 이후 새로 확보해야 할 물량부터는 수급 불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우디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지르는 총 1200㎞의 동서 송유관을 통해 하루 최대 700만 배럴의 원유를 홍해 얀부항으로 보내 수출해왔다.
하지만 지난 11일 최소 두 곳이 드론 공격을 받은 뒤 가동이 중단됐다. AP통신은 지역 관계자를 인용해 송유관이 다시 가동되기까지 몇 주가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급등하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6개월 한시 운영을 목표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했다. 당초 구상은 6개월간 추경 예산을 투입해 물가 충격을 완화한 뒤 제도를 연동 해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우디 동서 송유관 중단 악재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5달러를 돌파하고 두바이유가 일주일 새 20% 넘게 급등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11월 이후 원유 수급 불안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최고가격제도 연장을 사실상 확정 지었다.정부는 지난 14일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 주재로 정유업계와 함께 ‘원유 수급상황 긴급 점검 회의’를 열고 국내 원유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서 정유업계는 9∼10월 원유 도입 물량을 평시 대비 90% 이상 확보한 상태라 단기적인 수급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원유는 통상 2∼3개월 전에 계약·선적해 들여오는 만큼 당장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문제는 11월 이후다. 이달 선적 예정 물량부터 차질이 발생할 경우 그 영향이 11월 국내 도입분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수입 원유 가운데 사우디산 비중은 7월 기준 34.1%에 달해 동서 송유관 정상화가 지연되면 대체 원유 확보에 따른 운송비와 보험료 상승으로 조달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4일 재시행한 비축유 스와프(SWAP) 제도를 비롯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로 했다. 비축유 스와프는 정유사가 해외에서 원유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정부가 먼저 비축유를 빌려준 뒤 추후 대체 물량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 돌려받는 제도다.
또한 정부는 중동발 원유 수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100%까지 올렸다가 다시 25%로 낮췄던 비중동산 원유 운임 차액 지원 비율을 다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다시 치솟으면서 정부의 물가 관리 부담도 커졌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어느덧 시행 6개월이 지났지만 제도 연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조만간 10차 석유 최고가격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의 국제유가 급등을 고려하면 기준가를 인상해야 하지만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최고가격을 다시 고시할 예정”이라며, 최고가격제는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고가격제 제도를 이어가려는 건 물가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정유사 손실보전을 위해 추경에 4조2000억원의 예비비를 편성한 데 이어, 내년 예산안에 올해 4분기 손실보전 용도로 약 1조4000억원을 편성했다. 한편 최고가격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현실화하고, 지원이 시급한 계층에 혜택을 집중하는 선별적 지원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가격 통제 방식이 장기화될수록 시장 왜곡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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