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교착 상태다. 대법관 후보 제청을 놓고 청와대와 대법원의 대치가 이어진다. 청와대는 지난 8월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인 서면 제청”이라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지난주 다시 “대법원장은 대법관의 오랜 장기 공석으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대법관 후보추천위의 추천 내용을 존중해 최대한 신속히 재제청 절차를 진행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기존에 추천된 이들 가운데 재제청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법부 안팍에선 새로운 추천위를 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란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추천위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제청에 대해 재제청을 요구한 것은 1987년 체제의 현행 헌법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대법원은 헌법 제104조 제2항에 따른 ‘절차를 이행했다’는 입장이지만 청와대는 기존의 협의 관행을 무시한 “일방 통보”이자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청와대는 헌법상 최종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조한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에 무조건 기속될 경우 임명권이 단순 ‘날인권’으로 전락한다고 본다. 따라서 부적격자 거부와 사전 인사 협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실질적 협의 없는 일방적인 서면 제청’과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 강조’는 선출 권력 우위론에서 출발한다.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총리의 제청권을 동일시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총리의 제청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다르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총리의 제청권은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행정권 분산 및 책임행정을 위한 행정부 내부의 헌법상 절차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총리에게 제청권이 있어도 대통령의 임명권과 동일한 권한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보좌기관장이 아니라 독립된 사법부의 수장이다. 국무총리의 제청권은 현실적으로 거의 유명무실화된 ‘형식적 서명’이지만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총리 제청권보다 강한 독립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견제와 균형 원리의 구체화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입장은 다르다. 대법원장의 후보 제청권은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독립적 헌법 권한으로 본다. 대통령의 자의적 거부나 사전 조율은 헌법상 제청권 침해이자 사법권 장악 시도로 이해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사법부 독립은 정치적 중립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사법부 독립이 정치적 편향성을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는 말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른바 ‘사법적 대선 개입 의도’다. 작년 대선 때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 2부에 배당된 직후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를 이례적으로 빠르게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불과 9일 만에 2심 판결을 깨고 고법으로 파기 환송했으며 당일 공중파 생중계를 허용하는 등 전례 없는 과속 처리였다고 평가된다. 대법원장의 전원합의체 회부권과 기일 지정권은 법적 고유 권한이지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대선 시기에 이례적인 속도로 행사된 점을 정치적 중립의 차원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당장 쟁점은 분명하다. ‘재제청 요구와 반려의 합헌성’이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안을 거부하고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 명시적 헌법·법률 조항은 없다. 따라서 재제청 요구를 대통령의 당연한 임명권 행사로 볼 것인지 헌법상 제청권 침해로 볼 것인지 대립한다. ‘사전 협의가 헌법상 의무인가’도 쟁점이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 임명 절차를 규정하지만,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고 명시하지는 않는다. 그 동안의 대면 제청과 사전 조율은 정치적 관행의 제도화에 가깝다.

결국 임명권과 제청권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다. 독립적 전권이자 실질적 후보 선정의 독점권 vs. 단순 추천권이자 형식적 자문적 추천권의 대립이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선택을 강제할 수 있는 구속적 권한인지 아니면 대통령의 최종 인선권 범주 내의 일종의 추천 행위에 불과한지가 쟁점이다.경우에 따라 형식적 사전 절차일 수 있고 실제 구속력 있는 절차일 수 있다. 핵심은 사법권 독립과 민주적 정통성 중 어떤 것을 우위에 둘 것이냐의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대법관 건이 현실적으로 삼중 딜레마라는 점이다. 대법원장이 제청하지 않으면 절차를 진행시킬 수 없고 대통령은 제청 없이 대법관을 임명할 수 없다. 국회는 대통령에게 후보자가 제출되지 않으면 동의 여부를 심사할 수 없다.

누구도 상대의 선택과 행동을 강제하거나 교착 상태를 해소할 명확한 제도적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제청권과 임명권을 서로 견제하도록 설계한 정치적 결과이자 기관 간 신뢰와 존중 그리고 소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대법관 공석의 장기화는 최종적으로 국민 피해다. 사건 심리와 판결 등에 영향이 불가피하다.국민의 재판청구권과 신속한 재판 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 우려하는 부분이다.

결국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인사권 다툼이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 및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과 인사권 그리고 국민 사법 서비스의 연속성 확보’라는 세 가지 가치를 어떻게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제청권과 임명권이 충돌할 때 헌법이 정한 절차를 어떻게 해석하고 작동시킬 것이냐가 포인트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대통령 인사권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와 함께 사법부 독립이 강화되었는지도 중요하다.

이번 건은 법적 절차의 제도화와 관행의 축적을 통한 견제와 균형 원리의 실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위로부터의 한국 민주주의 위기가 계속되느냐 아니냐의 분기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치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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