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군 구금시설에서 풀려난 후티 반군 전투원들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멘 남서부에서 정부군에 붙잡혀 수감돼 있다가 후티가 모카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구금시설을 접수하면서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EPA 연합뉴스
정부군 구금시설에서 풀려난 후티 반군 전투원들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멘 남서부에서 정부군에 붙잡혀 수감돼 있다가 후티가 모카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구금시설을 접수하면서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EPA 연합뉴스

예멘 내전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친이란 후티 반군이 대규모 공세로 홍해의 전략적 요충지를 잇달아 장악하자 예멘 정부군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반격에 나섰습니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둘러싼 전투가 거세지자 주민들은 또다시 삶의 터전을 버리고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후티는 최근 예멘 서남부에서 공세를 강화해 정부군을 밀어내고 홍해의 전략적 항구도시 모카를 장악했습니다. 모카는 예멘 서부 해안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물류 거점이자 세계적인 해상 교통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으로 이어지는 길목입니다. 후티의 진격은 모카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가 공개한 전황 지도에 따르면 후티는 홍해 연안 최남단 도시 알아라디까지 점령한 데 이어 병력을 보트에 태워 바브엘만데브 해협 한가운데 있는 페림섬(마윤섬)과 홍해의 하니쉬제도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페림섬은 해협을 두 갈래 수로로 나누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후티가 모카와 페림섬을 동시에 장악하면서 홍해 남쪽 관문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크게 높였습니다.

예멘 정부군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반격에 나섰습니다. AFP통신에 따르면 예멘 관영 사바 통신은 정부군이 지난 12일 모카 항구 인근에서 후티 반군의 차량과 무기를 파괴하고 조직원들을 사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모카 주변의 후티 거점에도 공격을 가했습니다. 후티 측은 지난 48시간 동안 사우디 항공기가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 129차례 공습을 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우디가 직접 군사행동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우디의 원유 수송로는 동쪽의 호르무즈 해협과 서쪽의 홍해·바브엘만데브 해협입니다.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까지 장악하면 사우디는 동서 양쪽의 원유 수송로가 동시에 위협받게 됩니다.

양측의 교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우디가 미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어 후티 공격에 미국이 나서 달라고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아일랜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후티 측이 자신에게 연락해 미국과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후티를 상대로 한 군사작전에 미국이 직접 나서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입니다.

이렇게 미국이 거리를 두는 사이 예멘 내전은 격화하고 있습니다. 정부군과 후티 간 휴전은 지난 7월 예멘군이 후티의 핵심 거점인 사나 국제공항을 공습하면서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이달 1일께 지상군이 본격 투입되면서 전면전으로 확대됐습니다. 예멘 내전이 다시 사우디와 이란을 축으로 한 중동의 대리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사이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예멘 주민들입니다. 후티 반군이 예멘 정부군이 장악해온 홍해 해안지대를 휩쓸면서 주민들의 피란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피난민 알라 알리 살렘은 AP통신에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가족과 함께 오토바이 한 대에 몸을 싣고 집을 빠져나왔다"면서 "피란민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빚었고, 결국 오토바이가 넘어져 나와 아내, 아이들까지 모두 다쳤다"고 토로했습니다. 임시수도 아덴의 피란민 대피소도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예멘인들에게 이번 사태는 공포로 다가옵니다. 유엔 중재로 2022년 휴전이 이뤄지기까지 오랜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극심한 기아에 시달렸던 참상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전 확대를 막지 못한다면 홍해의 항로뿐 아니라 수많은 예멘인의 삶도 다시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휴전과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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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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